"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가 어느 정도는 타당성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사례로써, 지구가 둥근지, 아니면 평평한지에 대한 문제를 살펴봅시다. 분명한 것은 지구가 둥글든지, 아니면 평평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둥글면서, 평평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구의 모양을 설명하는 데 있어, 둥근지 아니면 평평한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옵션들인가요? 아시는 바와 같이, 지구는 둥글지가 않습니다. 이 말은 지구가 완벽한 형태의 원이 아니라, 보다 더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지구가 반드시 둥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떻게 우리가 더 깊은 이해를 찾아낼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날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세의 교회가 지구를 우주의 중심이라고 지나치게 단순하게 설명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적 유물론조차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에 기초해서, 지나치게 단순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가 많은 문제들에 실제로 적용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여기에 앉아서, 이 책을 쓰고 있든지, 아니면 여기에 앉아 있지 않든지 해야 합니다(비록 “나”와 “여기”가 무엇을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상황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형태의 논리가 모든 것들에 적용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신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문제 혹은 도덕적인 쟁점을 포함하여, 여기에는 삶에 대한 가장 깊은 의문들도 포함이 됩니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을 “참-거짓(true-untrue)”이라는 문제로 축소시키려고 하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단순한 사고로 이어지게 됩니다.
사례로써, 구약성서를 살펴봅시다. 모세는 상승 마스터들의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의 본보기였으며, 순수한 계시로서 10계명을 받았습니다(비록 이러한 계명들이 사람들의 낮은 의식 상태에 맞추어졌지만). 10계명 중에서 하나의 계율은 “살인하지 말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속에 해석해야 할 여지가 있나요? 이 말이 살인이 용납되거나, 정당화될 수 있는 어떤 조건들을 정의하고 있나요? 이 계율을 받은 이후, 왜 유대인들은 약속의 땅이라고 생각했던 곳으로 들어가, 그곳에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을 대량으로 학살했을까요? 유대인들이 이러한 사람들을 모두 죽였던 것이 자신들에게 십계명을 내려주었던 동일한 신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느꼈던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설명을 하자면, 유대인들은 적합하지 않은 계율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문장(sentence)(비록 이러한 종류의 논리가 아직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을 만들기 위해서 이원론적인 마음을 사용했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이 명제는 참이든지, 아니면 거짓이어야 하며, 그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참이었으며,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위해 신이 선택했던 땅을 가질 자격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그곳에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을 말살하는 것이 정당화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명제는 의심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이들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일반적으로 신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하는 10계율을 직접적으로 위반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신의 허락을 받지 않은 행동을 저지르고도,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으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내가 유대인들이 사악하다거나,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이원성 의식으로 인해, 그들은 단지 눈이 멀어 있었으므로, 오늘날에는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물질 우주가 거울의 기능을 하며, 따라서 여러분이 보낸 것을 우주가 다시 여러분에게 되돌려준다는 더 깊은 진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추락한 존재들의 논리로 인해 영향을 받음으로써,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해도, 정당화될 수가 있으며, 이에 따른 책임도 질 필요가 없으며, 어떠한 결과(카르마)도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주는 피드백 해주는 기계장치로서, 여러분이 우주에게 체험하고 싶다고 말하는 상황을 여러분에게 정확하게 제공해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정확하게 우주에게 홀로코스트(Holocaust)를 체험하고 싶다고 말했다”라고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48번째 수준 아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우주에게 말하는 방식으로, 즉 타인들에 대한 그들의 행동을 통해, 그렇게 했었습니다. 여러분이 타인들에게 행하는 것은 여러분이 그러한 행동들을 할 수 있고, 정당화될 수 있는 세상 속에 살고 싶다고 우주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심오한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타인들이 너에게 해주기 바라는 대로, 타인들에게 행하라”라는 예수의 말 뒤에 숨어 있는 더 깊은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종교들에서 이와 유사한 문구들을 찾아볼 수가 있으며, 그 이유는 이러한 말이 상승 마스터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타인들에게 행하는 것은 여러분이 어떤 종류의 세상 속에서 살고 싶은 지를 우주 거울에게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거울은 단지 투사된 것을 반사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우주 거울에게 이원성 의식에 기초한 자극을 보낼 때, 그것은 여러분이 두 개의 극성들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 속에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48번째 수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며, 이 말은 그들이 상승 마스터들로부터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들이 그러한 의식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이원성을 충분히 체험하게 되는 상태에 이르러야 벗어날 수가 있으며, 이 말은 이들이 두 개의 극성들을 지겹도록 체험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타인들의 의사에 반하는 뭔가를 행할 때, 여러분은 언제나 의식적으로 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극성만을 체험해서는 이원성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두 개의 극성들을 모두 다 체험해야 하며, 이 말은 여러분이 타인들에게 행했던 것(과거 생에서 했을 가능성이 높음)을 타인들이 여러분에게 행하는 것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행위로 인해, 타인들이 피해자가 될 때, 여러분은 미래의 어느 시기에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그 사이에, 여러분의 의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대량으로 학살했을 때(남성, 여성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했을 때), 이들은 우주 거울에게 그러한 행동을 저지르는 것이 정당화된다고 느낄 수 있는 세상 속에 살고 싶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주 속에 내재되어 있는 지체 요인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아주 오랫동안 이러한 행위에 따르는 카르마적인 과보를 체험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은총으로서, 사람들은 과보가 돌아오기 전에 자신들의 의식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이원성 의식 위로(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을 버림으로써) 자기 자신들을 끌어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우주 거울로부터 돌아오는 과보(return current)를 받았습니다. 그러한 과보는 자신들은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며, 자신들의 일에 방해가 되는 모든 사람들을 말살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개념에 눈이 멀게 된, 또 다른 형태의 사람들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자기 스스로를 선민(選民)이라고 여기는 의식 위로 끌어올려, 자신들도 모든 다른 사람들과 같으며, 특별한 지위나 특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많은 유대인들을 모욕하는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것은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신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식 상태라는 사실에 대해, 유대인들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곧바로 나에게 반-유대주의(anti-semitic)라고 딱지를 붙이겠지만, 모든 인간들 안에 살고 그리고 외적인 특징들과 동일시함으로써 갇혀 있는 영적인 존재를 자유롭게 해주기를 원하는 이 어떻게 뭔가에 반하는 것(anti-anything)입니까?
그나저나, 카르마의 법칙이 작용하는 방식으로 인해, 누구든지 이원론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반드시 반대되는 것을 체험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유대인으로 윤회했던 많은 영혼들이 지금은 독일에 육화해 있습니다. 나치(Nazis) 당원이었던 많은 영혼들이 지금은 이스라엘에 육화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중에서 보다 더 호전적인 일부의 지도자들이 한 생 이전에 자신들이 나치였을 때와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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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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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걸훈이내훈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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