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오케이, 또다시 옆길로 샜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요지는 48번째 의식 수준 아래에 있거나, 근접해 있는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와 이에 따르는 지나치게 단순한 흑백 사고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 운동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처음 약 200년에 걸쳐, 기독교 운동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가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사소통의 부재로 인해, 이러한 사실이 어느 정도는 가려져 있었지만, 만약 오늘날의 통신 수단으로 그것을 볼 수 있었다면, 초기 기독교 운동이 - 직선적인 관점에서 보면 - 대단히 혼란스러웠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일부 그룹들은 예수의 외적인 가르침들을 받아들여, 그러한 가르침들을 48번째 의식 수준 아래 수준에서 해석했습니다. 이러한 그룹들 가운데 일부는 다양한 경전들을 이용했으며, 이러한 경전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결국, 공식적인 성서의 정전(canon: 正典) 속에 포함되었습니다(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경전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그룹들은 예수, 혹은 다른 상승 마스터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이들로부터 구술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이러한 메시지들이 동일한 근원으로부터 나왔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의식수준과 문화적인 배경에 맞추어져야 했으므로, 이러한 메시지들조차 다소 달랐습니다.


게다가, 일부 그룹들은 상승 마스터들과 연결될 수가 없었으며, 이들은 오히려 멘탈 및 정체성 영역에 존재했던 추락한 존재들과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추락한 존재들은 우리가 사기꾼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예수 및 기타 상승 마스터들을 사칭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은 일부 그룹들이 거짓된 계층구조의 사기꾼들로부터 메시지들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혹은 상승 마스터들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소위 영지주의의 많은 복음서(Gnostic Gospels)들이 여기에 해당되며, 그중에서 오직 소수의 일부만이 보존되어 왔습니다. 당연히 추락한 존재들이 내놓은 메시지들은 어느 정도의 진실을 지니고 있었지만, 고의적으로 왜곡해 놓은 오류들이 내포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메시지들은 실제로 상승 마스터들과 연결되어 있던 그룹들을 통해 전해졌던 내용과는 모순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그러한 메시지들은 다른 그룹들이 해석해 놓은 것과도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사례로써, 이 세상이 신(神)에 반대될 수밖에 없는 조물주(demiurge: 데미우르고스 - 플라톤의 철학에서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존재)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하는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신조차도 이원론적인 시스템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운동이 처음 200년에 어떠했는지에 대해, 비교될 수 있을 만한 이미지를 보고자 한다면, 오늘날의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과 채널링이라는 현상을 살펴보면 됩니다. 이러한 운동과 현상들은 매우 혼란스러우며, 많은 채널러들이 진짜 영적인 존재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메시지들이 대개는 모순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지켜보며, 많은 사람들이 나타내는 자연스러운 반응은 모든 것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정확하게 말하면, 이러한 반응은 추락한 존재들이 사람들이 해주기를 바라는 반응입니다. 추락한 존재들은 사람들을 다른 극단으로 몰아넣기 위해, 한쪽의 극단에 혼란스러운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고 있으며, 반대쪽의 극단 역시도 이들이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대안 영성의 혼란스러운 상태를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처음 200년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그렇게 했습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을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실제로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 분별력, 즉 뭔가의 진동을 읽고, 그것이 타당한 것인지를 식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개발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추락한 존재들은 우리가 분별력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보면 깜짝 놀라게 되며, 그 대신 우리가 선형적이고, 분석적인 마음을 사용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마음은 겉으로 보기에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어떤 주제에 찬성하거나 혹은 반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일부 사람들이 추락한 존재들의 정의를 믿도록 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권위가 있어 보이는 하나의 해석을 고수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많은 반대되는 주장과 혼란에 겁을 먹도록 야기할 것이다. 이것은 또한 선형적인 마음이 ... 에 능숙한 것입니다, 즉 유일한 하나의 참된 가르침 혹은 교회가 있을 수 있다는 인상을 만드는.


이것은 기독교 운동에서, 모든 다양성은 위험하며, 공식적이고 통합된 교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운동의 출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사람들은 베드로가 설립한 기독교의 지부를 만들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베드로라는 생명 흐름도 그 시기에 육화하여, 운동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운동은 점차적으로 점점 더 강해져, 기독교의 경전과 교리들을 정의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것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48번째 의식 수준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해석한 것에 그 토대를 두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운동(Peter movement)”에 참여하고 있던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에 쉽게 영향을 받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며,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게 되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그리스도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 운동이 지녔던 목표는 공식적인 종교를 만드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운동이 특별히 통합되어야 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이끌었던 운동의 지도자들이 대부분 추락한 존재들이었다는 사실에 기인하고 있으며, 통합이란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루시퍼와 사탄은 어둠의 마스터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당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취한 “업적(attainment)”이 별로 없는 추락한 존재들 중에서 많은 숫자의 존재들은 보다 높은 영역에 존재하는 추락한 존재들에게 완전하게 통제 당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매우 이기적이므로, 누군가가 자신들을 통제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비전은 루시퍼의 비전만큼 그렇게 폭넓지 못하며, 이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이들이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을 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권력욕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이들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곳에 마음이 끌리게 됩니다.


이들은 성취한 것이 별로 없기(lower "attainment,") 때문에, 기존의 제도권 내에서는 권력을 잡을 수가 없으므로, 대개는 이제 막 출현하고 있는 새로운 제도권에서 권력을 잡으려고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높은 계층의 추락한 존재들은 로마제국에서 힘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베드로 운동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을 때, 낮은 순위에 있던 추락한 존재들은 이 운동에 마음이 끌리게 되었습니다.


엄연한 사실은 이원성에 갇혀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기독교 운동의 신비적인 지류(branches)에 마음이 끌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원성에 갇혀 있던 존재들과 추락한 존재들은 베드로가 이끄는 운동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이 두 개의 부류 간의 논쟁을 소위 아리우스의 논쟁(Arian controversy), 즉 아리우스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신학자였던 아타나시오스(Athanasius) 사이의 신학적인 논쟁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물리적인 폭력과 교회들이 불타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대치로 이어졌으며, 그 방법에 있어, 기이할 정도로 오늘날의 마피아 조직들, 혹은 마약 조직들 간의 싸움과 흡사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the Eastern Orthodox Church) 간의 분리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또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요점은 통합된 기독교를 창시하고자 하는 노력이 어떠한 메커니즘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 메커니즘이 바로 추락한 존재들이 이 행성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문제는 간단합니다. 인간사(人間事: human affairs)를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통합된 전체로 키우려는 야망을 가진 자들이 과연 누구일까요? 오로지 추락한 존재들만이 그러한 야망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원성에 갇혀 있으므로, 언제나 나누어지기 마련입니다. 일부는 어느 한쪽의 이원론적인 극성을 지니게 되고, 다른 일부는 반대되는 극성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이 통합된 운동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사실, 통합된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어느 하나의 그룹이 다른 모든 그룹을 억누를 수 있는 강력한 통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초기 기독교 운동의 역사를 조사해 보면, 서로 다른 많은 교회들 혹은 통합체들이 출현했으며, 이들 가운데 많은 숫자가 자신들이 유일한 참된 기독교 교회라고 여겼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 간에 의견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운동은 보다 더 공개적이고, 가시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로마제국을 이끌고 있던 기존의 추락한 존재들은 이러한 기독교가 제국의 질서와 통합에 위협이 된다고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강력한 제국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데 있어, 추락한 존재들에게는 자신들의 통제에 위협이 되는 뭔가가 나타나는 것보다, 더 싫어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하는 시대로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