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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섭니다

(창세기 22장).

입다는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자신의 외동딸을 제물로 바칩니다

(사사기 11–12장).


아브라함과 입다는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존중과 신뢰를 삶으로 증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단순한 신앙인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중요한 사건들은 우연히 발생한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입다가 서원하게 된 일과 그 서원의 결과로 외동딸이 바쳐진 사건 또한, 하나님의 섭리로 인한 필연적인 사건들이었습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제물로 내어주실 사건을 예표합니다.

아버지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셨던 그리스도처럼, 그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열거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

(히브리서 11:32)


입다는 분명히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언급됩니다.

만일 그의 행위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비난받아야 할 죄악이었다면, 그는 이 믿음의 계보 속에 포함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종종 인간의 이성으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거나, 심지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왜곡된 것이 아니라, 인간 인식의 한계 때문입니다. 이 한계를 인정하지 못할 때, 사람은 쉽게 자기 판단에 사로잡혀 미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제한적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 (히브리서 11:19)


아브라함은 가장 소중한 아들을 바치는 시험을 받음으로, 훗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독생자를 제물로 내어주실 때의 그 마음을 깊이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이 아브라함을 가리켜 하나님의 “벗”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가 대등한 위치의 친구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단 한 번도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서 대화한 적이 없습니다.


" 이에 경에 이른바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

(야고보서 2:23)


히브리어 성경에서 ‘벗’으로 번역된 표현은 사랑받는 자, 마음을 나누는 자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께 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자 하며, 깨닫고자 겸손히 나아오는 사람들을 지금도 사랑하십니다.


"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

(마태복음 19:2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단순히 지식으로 아는 자가 아니라, 그 마음의 무게를 함께 느끼고 깨닫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입다처럼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내어놓는 순종을 통해, 우리 또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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