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 쑤빙치(소병기·蘇秉琦)는
“은(상)의 조상은 남으로는 옌산(연산·燕山)에서 북으로는 백산흑수(백두산과 헤이룽강)까지 이른다”고 단언했다.
또한 그 유명한 안양 인쉬(殷墟) 유적 발굴을 총지휘했던 푸쓰녠(부사년·傅斯年)은
일찍이 “상나라는 동북쪽에서 와서 흥했으며, 상이 망하자 동북으로 갔다”고 단정했다.
중국 학계도 이런 쑤빙치와 푸쓰녠의 관점이 가장 정확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상나라 사람들과 발해 연안의 친연관계는 인종학의 지지까지 받고 있다.
인골전문가인 판지펑(반기풍·潘其風)은 인쉬(은허) 유적에서 출토된 인골들을 분석했는데 아주 의미심장한 결과를 얻어냈다.
“인쉬 유적에서는 상나라 귀족들의 묘가 발견되었는데, 발굴된 대다수의 시신들이 동북방 인종의 특징을 갖추고 있었어요.
인골들의 정수리를 검토해보니 북아시아와 동아시아인이 서로 혼합된 형태가 나타난 거지.
이것은 황허 중하류의 토착세력, 즉 한족(漢族)의 특징과는 판이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어요.”
또하나, 인쉬(은허) 발굴자들이 인정했듯 상나라 사람들이 동북방의 신앙을 존숭했다는 것이다.
즉 상나라 왕실에서 고위층 귀족들에 이르기까지 동북방향을 받들었는데, 이는 고향에 대한 짙은 향수와 숭배를 나타난 것이라는 해석이다.
서쪽이라든가 코카서스 이야기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냐?
그리고 상나라의 건국신화..... 신화 같은 건 별로 논하기 싫은데, 그냥 풀어 봄.
유웅(有娀,戎)과 간적(簡狄)...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귀방, 토방, 북적, 융적이라 불리던, 당시의 사람들은
은허를 기준, 북쪽과 서쪽에서 반농반목을 하던 사람들로서,
Q나 R 이었을 흉노와는 전혀 닮지 않은 집단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아마도 북쪽, 서쪽에 살면서, Proto Sino-Tibetan 언어를 구사하던, 부계 O2 타입이 주류인 집단이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유웅 & 간적 = O2-M134
그리고 商의 시조인 설(契)의 부계혈통... 이건 그냥 간단하다.
天命玄鳥, 降而生商 - 詩經 商頌 玄鳥篇
하늘이 현조에게 명하여 지상세계로 내려가 상을 낳았다.
殷契 母曰簡狄 有娀氏之女 爲帝嚳次妃 三人行浴 見玄鳥墮氣卵 簡狄取呑之 因孕生契 - 史記 殷本記
은나라의 시조 설(契)의 어머니는 간적(簡狄)인데 유웅씨의 딸이다. 제곡 황제의 둘째 황비가 되었다. 으음?? 가계도가...ㄷㄷ
세 사람이 목욕을 갔는데 현조(玄鳥)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그것을 가져다 삼켰다.
이로 인하여 임신을 하였고 설을 낳았다
契母簡狄者. 有娀氏之長女也. 浴于玄邱之水, 有玄鳥銜卵. 過而墜之 五色甚好. 簡狄得而含之 遂生契焉 - 烈女傳
설의 어머니는 간적이라는 사람으로 유웅씨의 장녀다.
현구(玄邱)의 물가에서 목욕을 하는데, 현조가 알을 머금고 지나가다가 떨어뜨렸다. 오색이 아주 찬란했다.
간적이 이것을 집어서 삼켰고 설을 낳기에 이르렀다.
참고로, C2b-F1067 (구C2c, C2e) 부계집단은 (일설에 의하면, 요령~산서와 더불어 동이 지역에 많이 거주 중이랜다.)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발해만, 중원의 화북 ~ 화중평원에 말뚝박고 살아 왔었고, 동이 및 동북방과 관련이 깊었을 것이므로,
상 왕조 = 동북, 동쪽에 있던 부계 F1067 + 서,북쪽에 있던 M134 집단의 모계가 결합.
고고학적으로 봐도, 저 둘은 교류를 했고, 특히, 북쪽의 귀방은 아마 상 왕실의 외척이었을 걸?
참고 : 소공석의 연나라를 북연(北燕)이라고 호칭하였다. 당시에는 연(燕)이 아닌 언(匽, 郾)이라는 한자로 표기하였다.
소공석의 후손들은 산동성(山東省) 지역의 제후로 봉해졌지만, 주 성왕의 치세에 현재의 북경 부근으로 옮겼다.
공교롭게도 발해만 일대의 지역을, 훗날, 연(燕)이라 하였는데,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
너희들과는 달리, 나는 원문 그대로 해석했다.
즉, (玄)鳥 토템이 商의 부계이고 서북쪽의 융과 적이 商의 모계라고 말야.
기원전 2000년대 초반은 신석기 문화인 룽산 문화(龍山文化)의 말기에 해당되는데, 기후 변화로 추측되는 원인으로 인구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급격히 감소했으며, 룽산 문화 중심지의 대부분은 버려졌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청동기 문화인 얼리터우 문화(二里頭文化)의 중심지로 볼 수 있는 허난성河南省의 이뤄 분지로 인구와 사회적 복잡성이 급격히 증가하였고, 이러한 변화는 이전의 어느 때보다 경제적으로 통합되고 정치적으로 집권화된 새로운 사회, 즉 국가의 출현을 의미한다. 치우 모티브가 동북방에서 유래했을 어떤 집단으로부터 유래하였다면, 夏 혹은 이리두문화 이전부터 C-F1067와 N1a에 의해 중원 청동기문화가 탄생-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말희는 산동 유시씨의 딸이었는데 걸이 유시씨를 토벌할 때 항복을 하며 헌상되었다. 일설로는 당초부터 걸은 말희를 요구하였다고 전해진다. 절세미녀라는 말희를 걸이 비로 삼아 사랑하였다. 말희가 원하는 대로 걸은 경궁(傾宮)이라는 거대한 궁전을 세우고 연회를 개최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雲南省·湖南省 등의 중국 남부와 말레이시아가 최대의 주석 산지로 알려져 있다. 중국 동북 지방과 한반도에서는 주석 자원이 소량밖에 존재하지 않은 듯하다. 현재 吉林省 盤石市 石阻子광산에서 銅鑛石과 함께 미량의 硫石鑛이 검출된 이외는, 중국 동북 지방에서는 주석 광산의 존재는 보고된 바가 없다. E. N. 쵸르느이흐와 S. V. 쿠즈미느이흐는 세이마-투르비노 문화에서 최초로 청동을 생산한 곳으로 구리와 주석 등의 원광석이 풍부한 루드느이 알타이와 이르티시 강 상류 지역을 꼽았다.
Q-M120이 있었을, 용산문화는 신석기 문명에 가까운데, 그 옆의 이리두문화는 청동기 문명이었다...? 고대 중원지역에 있던 구리광산, 주석광산의 위치들... 이리두 문화의 탄생... 주석(Sn)을 필요로 했을, 동북방에서 내려온 청동기 집단... 우(禹)는 뱀, 도마뱀, 악어, 용, 사나운 황하의 물길...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 중앙정부의 등장과 치수 모티브... 구C2e2, C2b-F845...
몽골-알타이가 아니라면, 양자강 이남의 열대지방, 딱 둘밖엔 없는데... 둘 중 어디일까?
岳石文化, 下七垣文化, 輝衛文化
but as the Erligang state (commonly identified with the early Shang dynasty) expanded, Yueshi declined and retreated to the Shandong Peninsula in the east.
그러므로 상 왕조 밍 지 슈이 (Ming Zhishui)의 지도자는 실패했으며, 심지어 그 자신도 홍수에 사로 잡혔습니다. 샹 부족들은 지도자의 교훈을 잃어 새로운 영토를 열려면 남쪽으로 확장해야한다는 것을 이해하게되었습니다.
연구를 통해 예북 지방의 장허형 선상문화(漳河型先商文化)와 얼리터우 문화의 인접 지대인 것이 나타나 얼리터우 문화기에는 장허형 선상문화, 예시 문화(岳石文化), 얼리터우 문화의 세 개 세력이 황하 중류 유역에서 정립하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또 얼리강 하층기에는 장허형 선상 문화가 남하하여, 서쪽의 얼리터우 문화를 받아들였고, 얼리강 하층기에는 동쪽의 예시 문화에 받아들였다. 이러한 추이 상황은 사서에서의 하나라와 은나라에 관한 기술과 맞추어 추정되곤 한다.
베이징 대학의 류서와 서천진은 얼리강 문화(二里岡文化)가 조 상문화이며, 얼리터우 문화(二里頭文化)가 하나라 문화라고 추정한다. 출처: https://oldconan.tistory.com/31434
얼리강 문화는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한 문화이다. 얼리강 문화는 청동기를 대대적으로 사용하는 중국 최초의 문화이며, 그 초기에는 급속히 세력을 확대해 장강 유역에까지 도달해, 후베이성 황피현(현재의 우한 시 황피 구)의 판룽청 유적(盤龍城遺跡, 장강 유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유일한 상대의 도시 유적)에서는 많은 청동기가 출토되었다. 얼리강이 있는 정주 부근은 동의 출토가 적고, 판룽성은 동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전초기지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The large site at Panlongcheng, on the Yangtze River in Hubei, is currently the largest excavated site of Erligang culture. 호북성 무한시는... 고대 주석광산...
下七垣文化 → 二里岡文化 = Proto-상왕조 (3680~3500 ybp → 3600~3400 ybp) 漳河文化 → 輝衛文化 하남성에 위치한 유형으로, 선-상문화 악석문화 岳石文化 3900 ~3500 ybp = 산동지역 동이족
하북성 한단시(邯郸市) 간구(涧沟)와 자현(磁县)의 하칠원(下七垣) 유형으로 대표되는 일종의 유물은 선-상문화이다 휘위(輝衛) 유형은 또한 장하(漳河:하북성 남부) 유형에서 발전한 것인데, 즉 상문화는 고-황하 서쪽에서 왔고 태행산의 동쪽 기슭을 따라 점차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다.
하(夏)왕조로 추정되는, 얼리터우(二里頭文化) 문화 2, 3기 경에는, 허베이의 휘훼이 문화(輝衛文化), 샤치유안 문화(下七垣文化), 산둥의 웨이시 문화(岳石文化) 등과의 충돌의 흔적이 보인다.
반면, 이리두 문화가 악석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지역이 예동 일대에 한정되어, 노중남 등 악석문화의 오지에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아, 영향의 향배에 있어서 부차적인 위치에 있다.
전형적인 악석문화적 요인은 이리두 문화분포구의 오지에 깊숙이 들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묘장 안에 나타나는데, 그 깊은 원인이 있다.
이리두문화와의 관계 : 악석문화가 이리두문화에 미치는 영향 위주
湖熟文化的关系
악석문화 (岳石文化) In the Shandong area, Daxinzhuang in Jinan and Qianzhangda in Tengzhou were the first regional centers established by the Erligang culture. The ruling elites apparently consisted of the Erligang peoples, which eventually came to dominate the area culturally.
In the Daxinzhuang area, the early Shang and Yueshi pottery traditions coexisted in the same archaeological contexts, suggesting that these two cultures were living side-by-side.
The Panmiao (潘庙) site in Shangqiu, eastern Henan has a Yueshi culture component dating to the early Bronze Age period (c. 1900–1450 BC). Prior to that, there was Longshan period occupation in this area.
Yueshi culture saw a relative decline of cultural development. Groups of settlements were dissolved and the highly developed pottery technology of the Shandong Longshan culture was lost. Yueshi style of ding-dou type vessels were also present in the Longshan culture, but many other vessel types of these cultures are different.
The bronze finds of the Yueshi mostly consist of small, portable items. Bronze vessels are not found. Thus, the deterioration of Yueshi ceramics cannot be explained by the wider use of bronze. Yueshi culture could be compared to the contemporaneous Lower Xiajiadian culture in Liaoning, the Shuangtuozi culture of the Liaodong Peninsula, and the Dianjiangtai culture in Rongyang, Henan Province.
굳. 근데 C2b-F1067가 아니라 C2c-F1067이제
바뀜... C2a가 L1373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