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글씨체 부터 생각해야 한다,
글 꼴의 크기와 서체가 이 문장과 저 문장이 닿는듯 하여야
문장의 기조가 닿아있듯이 결부하여야 한다
이렇게
시발놈아 너라면 시를 쓰고 싶겠냐?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만
잘 쓰인 시는 잘 결부 시킨 시와 상응한다
이렇게 지혜 보전의 창고에 가게 된다
'욕망의 이름' '분별의 이름' '취함의 이름'
같은 것은 아름다울수록 '욕망' 내지 '고통' 으로 탈바꿈 한다
잘 쓰인다 '라는' 것에서 미리 쓰레기통에 와 있는 작품
그런 한 작품에 대해 '여생'이 흔들려야 한다
'가오'나 '곤조' 말고, '가오'나 '곤조' 말고 ``;
철학은 깊이 끌리는 것일수록 말의 자성을 이끌어 낸다
감관과 직감은 그런 차원에서 자성을 띄고 응집력을 갖는다
지혜에 대한 보편이 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구라는 차원에 있다는 점을 나는 상기시킨다, 왜냐 물었듯 물은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체는 이미 완성이 된다 그것에게 기전을 불리었거나 극작을 완성했다고 해도 다른 극이 그 극에 침투한다는 것을 '순간'과 '매순간'이라고 한다,
과연 그런 의미로서의 감각은 다른 배뇨 기관으로서의 착각과 이해를 달리 하며 같은 듯이 하는 것을 나는 '진리'라 부른다°
맞다/ 틀리다의 논변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올바른 틀에 놓을 수 있는가?
영화 '큐브'라는 해석을 유튜브로 잠깐 보았는데
'큐브'라는 뇌를 두고 왔다면
나는 거기서 맞추어야 하는 양자택일의 진실을 인간으로서 묻지만
신으로서의 초점과 그 압력에 의한 힘의 팽배함에 질식함도 있겠다
여기서 나는 옳은 길 만세 / 하며는 양자택일 번죗값이 완성되는 것이다, 올바른 길의 찰나 나는 술 취해 있다,
'철학', '시', '수학'을 읽거나 씌임이 없는 것은 이미 그러한 만족에 드러난 상태라는 것 이전에 암산이 끝났다는 것도 되며, 그와 마찬가지로 상응하는 만족과 불만족이 생산과 재생산을 촉진하게 되는 '순간' 매집에 영영하는 여여하고 결부하고 결부하는 까닭일 다름에 있어서 '순간' 무엇을 보듯 '촉진'하는 무엇인가의 기전에는 항상 같은 것과 다른 것이 순전히, 영영히 서로 보이게 된다. (여기서 자신은 또 문장을 갈무리 할 처지에 있다.)
착각 속에 있으면서 순연히 질식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갖는 창조란 매력 상상력에 늘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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