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인데 평가 좀


쥐고 있던 가위를 떨어뜨린다. 방금까지 몸에서 흐르던 피가 묻은 가윗날이, 빨갛다. 예진이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잠들었다. 내가 그토록 바랬던 잠을 이제서야 잔다.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잠.
손으로 얼굴에 묻어있는 피를 닦는다. 비릿한 냄새를 한 번 맡아보고는 티셔츠에 문지른다. 안 그래도 더러웠던 이 티셔츠는 다시 입을 수 없을 것이다. 욕조에 입욕제를 풀어 목욕을 한다.
목욕을 끝내고 수건으로 몸을 닦는다. 젖은 머리는 드라이기로 말린다. 옷장에서 블라우스와 진을 꺼내 입는다. 향수를 뿌리고, 화장대 앞에 앉아 메이크업 베이스를 바른다. 정말, 오랜만에 하는 화장.

간신히 아이를 재우고 밥을 먹었다. 며칠 전에 끓여둔 국에 밥을 말아서 먹었는데, 국에선 이상한 냄새가 났다. 일주일도 넘게 데워 먹어서 진해졌고, 그만큼 상했을 것이다. 몇 숟갈을 떴을 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남편이었다.
\"왔어? 저녁은?\"
식탁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먹었어... 아 근데, 너 그 티셔츠 뭐야? 게다가 머리는 오늘도 안 감았어?\"
나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하고 펑퍼짐한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하나로 묶긴 했지만 머리카락이 몇 가닥이 튀어 나와 있었다.
\"이게 젖 물리기 편하단 말야. 그리고 머리 감을 시간이 어딨어......\"
\"그래도 여자가...... 어휴, 나 잘 거야.\"
남편이 중간에 생략한 말은 알 수 있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건지는 생각도 안 하고 하는 말들. 짜증이 머리 끝까지 올라왔다. 누구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인데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는 걸까.

아이 울음 소리가 났다.
지 애비를 꼭 닮은 아이. 불만스럽다는 듯이 툭 튀어나온 입과, 반쯤 감긴 눈. 남편이 떠올랐다. 젖은 먹은지 얼마 안 됐고 기저귀는 깨끗한 게 말하는
소리에 깬 듯 했다. 예진이를 앉고 등을 두드려줬다.
\"예진아, 응? 왜 우는 지 말해줘야 알지...\"
예진이는 그저 우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응? 예진아... 제발......\"
내가 원한 삶은 이거와 같았지만 이게 아니었다.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도덕 교과서와 육아 교육서 같은 데 나오는, 그런 가정을 원했다. 그렇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열 살 연상의 남편과 결혼했고, 피임이 우습다는 듯 위험한 날에도 관계를 가졌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임신했다. 십 개월 동안 우리들의 사랑을 받으며 큰 예진이는 3.5kg로 건강하게 이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 부부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때부터 행복은 무너졌다. 아이는 처음부터 내가 마음에 안 들었다는 듯 울어댔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밖에 안 나가도 샤워를 하고 맘에 드는 옷을 입던 나는 점점 머리 감는 것조차 귀찮아했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남편이 작업실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화장을 다 하고 파스타를 만든다. 냄비 두 개를 꺼내 남편이 좋아하는 크림 파스타와 내가 좋아하는 올리브 파스타를. 밖에서 사온 하드롤 두 개의 속을 긁어 그릇으로 삼는다. 남은 재료로는 스프를 만든다. 주말마다 만들어 먹던 메뉴. 예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하드롤은커녕 파스타 면을 끓인 적도 없다. 가장 큰 냄비에 국을 끓여놓고 다 떨어질 때까지 그것만 먹었다.
남편한테 전화를 걸어 빨리 오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파스타하고 스프를 만들었으니까 절대로 저녁 먹고 오지 말라고. 그리고 화장까지 했다고. 남편은 신이 나 알았다고는 지금 당장 출발하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남편이 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파스타 한 가닥을 집어 먹는다.
예진이는 어떻게 해야 될까. 남편이 오기 전에 치워놓고 발뺌해도 된다. 밖에 나갔다 왔는데 없어졌다고 말하면 믿을 수도 있다. 주위에 시시티비도 없어서 사람이 잘 안 가는 곳에 묻으면 영원히 덮어둘 일이 될 것이다. 만약 내가 죽였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늘어나는 생활비에 남편도 지쳤다. 어쩌면, 아이의 시체를 토막내 변기에 버려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모든 게 쓸모없다는 걸 안다. 하늘이 맺어준 부부. 그 둘을 쏙 빼닮은 귀여운 아기. 웃음이 넘치는 화목한 가정. 이 모든 건 내가 예진이를 찌르고 끝난 게 아니라 이미 그 전에 끝났다.
파스타를 집어 먹으며 남편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