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나서면 걱정거리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나는 그것을 충족하려고 비타민 음료를 마시곤 했는데, 아침에 깨어보면 여전히 중력의 힘을
쎄게 느끼고 있다는걸 느끼고 회의감이 들었다. 사람들은 밖에 나가서 놀길 좋아하지만 나는 방안에서 있는걸 좋아하다보니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빕스같은데에선 어떻게 먹는지 여자친구라는 것을 가져보지 못한 나한테는 새로운 경험조차 허락되지 않는 솔로였다.
그렇게 나는 조용한 외로움을 달래려 비타민 음료를 마시곤 했는데, 내 창조적 갈등보단 내 안의 내적 갈등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 관건이 되었다.
슬픔 속에서 나는 조용한 패배자가 되었고, 슬픔은 그걸 어루만져 주었다. 내 손가락들은 내 뇌랑 비슷해서, 아무리 건드려도 복수하지 않고 있었다.
종종 규칙에 어긋나는 때가 있다하면 조용히 깃발을 내리고 눈물을 내보이면 모두들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미안해" 하면서.
돌을 던질때 주의할 점은 내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거였는데, 하나님께서도 헷갈려하시는걸 보니 이미 60갑자의 2갑자밖에 안지난 상태인데도 친절이 서툴러서, 예절이 서툴러서, 기다려온 기쁨이 서툴러서 그런 것일 것 같다고 확신짓는 나였다.
친절하게 택시기사가 정지하면, 나는 얼른 탄 다음 계량기를 주의해 보곤 했다.
상념이 많은 사회 속으로 흘러들어갈 때면
몽테 크리스도의 작품이 떠올리곤 해서 자꾸 부끄러움을 입었다.
하여튼 택시안은 안정되었고 편안했었는데, 질주하는 고속도로보단 안전띠를 안매곤 하는 주의였다,아니, 안전띠를 매는 방법도 서툴렀다.
규칙에 어긋난다는 것은 차들의 세계에서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주의하지 못하는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거나 운전중 DMB시청을 한다는 것에 있었다.
술을 좋아한다던 어떤 여자애가 나한테 고백한것처럼, 나는 괘념치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거부를 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외모지상주의에 빠질만도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 대학을 다니는 서투름이 작용했기 때문이렷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