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길었던 나의 군시절.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2년 동안 난 언제나 욕구불만에 시달려야 했다.(모두가 그렇듯이 말이다)

수면욕, 식욕, 성욕 그리고 음악욕. 하루에 열 두 시간을 디벼자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 2년간의 밤샘 교대근무는 고문 그 자체였다.

단잠에서 깨어나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탄띠와 하이바를 챙겨야 했던 수 백번의 밤들. 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은 미식과 섹스다.

룸펜 주제에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온갖 산해진미를 찾으러 다니느라 모두 써버렸고, 절반은 모텔비로 낭비했다. 물론 그 둘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블루리본 서베이나 블로그를 뒤적거리며 서울 구석 구석을 돌아다녔다. 매력적인 여성들과 함께. 

몇 년이 지나자 모든 맛집과 카페에 그 여성들과의 추억이 서리게 됐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에게는 훗날에 유럽으로 미식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론리플래닛을 읽으며 바스크 지방의 산 세바스티안 해변에 당도한 나와 그녀를 상상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콘차 해변에서 하루를 보내고, 핀초스를 먹을것이다. 나는 그녀와 뜨거운 사랑을 나눌 것이다. 녹초가 되도록.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스페인의 밤은 끝나지 않는다" 

 

 카투사 입대를 신청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공군에 입대를 해서 2년을 죽은 사람처럼 살았다. 입대 하기 전에 일본인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상병이 되어 이메일로 이별을 통보받았다. 내용은 이러했다. '헤어지자. 이제 당신에게 지치고 지쳐서 아무런 정도 남아있지 않다. 답장은 필요 없다." 

그녀는 군 생활을 하는동안 나의 휴가에 맞춰 3~4개월에 한번씩 서울에 와서 머물렀다. 나는 그녀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도 그것을 알았다.

이틀에 한번씩 일본에서 날아오는 편지, 그 봉투 안에 담겨있는 그녀의 마음도 나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1년동안 일방적인 사랑을 보낸 그녀는 결국 지쳐버렸다. 

 

 상병 진급 후 오랜만에 휴가를 나왔다. 바깥 세상의 공기는 참 달다. 집에 도착하여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저녁이 되어 기타를 매고 집을 나왔다. 홍대 주변의 어딘가에서 노래를 했다. 목이 마르면 술을 사서 마시면서 노래를 했다. 배가 고프면 담배를 피웠다. 새벽 즈음 조금 피곤해져 캐나다에서 왔다는 여성에게 기타를 넘기고 쉬고 있었다. 썩 잘 치지는 않았지만 꽤나 좋은 노래를 불렀다. 술기운에 사고가 느려지고, 그 노래의 제목이 가물가물해서 스무고개 하듯이 노래 제목을 맞추려고 했다. 그 노래의 제목이 기억 한쪽 구석에 있는 캐비넷 안에 들어있는것은 확실한데, 그 열쇠를 찾을 수 없었다. 열쇠 함에는 수백가지의 열쇠들이 뒤엉켜 있고 맞는 열쇠를 식별해 내기에는 시야가 흐릿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그 노래의 제목을 말했고, 캐비넷의 봉인은 순식간에 해제되어버렸다. 패티 스미스의 노래.


 그 이름을 외친 여성이 미소지었다. 나도 씩 웃었다. 어디에서 왔을까. 네덜란드? 촌스러운 클레오 파트라 머리와 스모키 화장. 육덕 진 몸매. 피부는 새하얗고 머리카락은 검푸른 색이었다. 중앙아시아나 러시아쪽 사람 같다.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봤더니 러시아라고 했다. 영어 발음이 끔찍해 알아듣기 힘들었다. 프랑스인들만큼 심했다. 나는 다시 캐나다 여성으로부터 기타를 넘겨받아 노래를 몇곡 더 했다. 시간이 늦어갈수록 사람들은 하나 둘 어딘가로 떠났고 내 옆에는 러시아에서 온 그녀가 혼자 앉아있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잠시 기타를 내려놓고 담배를 피웠다. 그녀도 나에게 한대 달라고 했다. 우리는 담배를 나눠 피웠다. 그녀가 나에게 노래를 한곡 해달라고 부탁했다. 더 이상 노래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거절 할까 싶었지만 가볍게 짧은 곡을 연주했다. 로맨틱한 아일랜드의 노래였다. 노래가 끝나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아침이 거의 다 되어 그녀는 연락처를 남겼고 우리는 첫차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눈을 뜨니 이미 오후가 한참 지났다. 페이스북을 확인하다가 그녀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금방 답장이 왔고 우리는 그날 밤 만나기로 약속했다.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서 서울로 향했다. 그녀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코코트 집에서 가벼운 저녁을 먹고 칵테일을 한잔씩 마셨다. 

이름은 비키. 빅토리아의 줄임말이다. 실제 이름은 훨씬 길다. -D.비키.I-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러시아인은 세 개의 이름을 가진다. 성과 이름 그리고 부칭. 나의 이름을 물었다. 빅토르 박이라고 했다. 그녀가 깔깔 웃자 나는 빅토르 최의 아들이라고 허풍을 떨었다. 비키는 나에게 '네가 빅토르 최의 아들이면 나는 박 비키다" 라고 했다. 우리는 시덥잖은 얘기들을 나누고 근처의 한 바로 이동했다.


 우리는 몇 시간 얘기를 나누고 바로 사귀기로 결정했다. 그녀의 진심이 신뢰가 가지는 않았지만 난 군인이었고 아무렴 좋았다. 우리는 아마 보드카토닉과 블랙 러시안을 마셨던것 같다. 그녀는 나보다 네 살정도 어렸고 갓 성인이 되었는데, 중국과 여러나라를 떠돌며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인해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녀의 고향은 러시아의 본토도 아닌 사할린이었다. 말로만 듣던 사할린의 사진을 그녀가 보여주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쁘게 표현하면 정말 깡촌 촌구석이었고, 좋게 표현하면 대 자연속에서 사는 것이었다. 친구들중에 한국계의 성씨를 가진 까레이스키들도 보였다) 그녀는 나에게 일종의 징표로 줄 만한것을 찾았는데,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갑을 한참 뒤지더니 결국 1루블짜리 동전을 찾아서 나에게 줬다. 지폐는 갖고있지 않았다. 바를 나와 우리는 자연스럽게 모텔로 이동했다. 


 맥주 몇 캔을 더 사서 모텔방에 들어왔다. 러시아인들은 대체로 지독한 술고래다. 우리는 조금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그녀는 황당하게도 에쎄를 피웠다. 이해를 할수 가 없었다. 이런 저런 농담을 나눴다. 라이터를 러시아어에서 '자지깔까' 라고 부른다던지 하는.

나는 맑스에 미쳐있었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맑스보다 더 좋아하는걸 찾았는데, 그게 섹스였다는 얘기를 했다. 그녀는 깔깔거리더니 음담패설을 시작했다. 어느새 우리는 엉겨붙어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남김없이 서로를 침으로 적셨다. 검지 손가락과 중지를 움직여 그녀의 브라 후크를 풀었다. 옷을 벗기려 하자 비키는 불을 끄라며 난리를 쳤다. 아쉬웠지만 그녀가 하라는 대로 하고 다시 우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육덕진 몸매에 풍만한 가슴이 보기 좋았다. 최소한 D컵 이상일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역시나 그녀는 D컵이었다) 그녀는 예상대로 화끈하고 또 시끄러웠다. 절정이 올 때마다 매번 있는대로 소리를 지르며 내 등을 손톱으로 긁어댔는데 나중에 부대에 복귀해서 만져보니 날갯죽지 양쪽에 서너줄로 딱지가 앉아있었다. 슬라브인은 라틴이나 게르만 등 다른 서양인과는 또 다른 몸냄새가 났다. 난 그게 양고기 냄새 같다고 생각했다. 난 그 냄새가 좋았다. 그렇게 일을 치루고 누워있는데 슬슬 잠이 쏟아졌다. 내 눈 위에 모래를 뿌리는 것처럼.


 비키는 나의 잠을 깨우기 위해 온갖 심술을 부렸다. 괴로웠다. 술기운에 잠이 한없이 쏟아졌다. 그녀는 억지로 내 잠을 깨우다가 입으로 나를 깨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술이 내 입에서, 턱으로, 목으로, 배꼽으로, 그리고 더 밑으로 내려갔다. 잠을 청하려던 나는 그 힘에 굴복할 수 없었고 반 강제적으로 다시 한번 사랑을 나누게 됐다. 그리고 다시 잠을 자려고 하면 그녀는 날 또 괴롭히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미칠 지경이었다. 나의 몸이 더이상 안따라주는 상황까지 왔는데도 그녀는 기어코 어떻게든 다시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만들었고 나는 그녀의 압도적인 힘에 끌려다니기 시작했다. 그녀의 성에 찰때까지 나는 양처럼 길들여졌고.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잠에 들 수 있었다.


 정오 쯤 되어 눈을 뜨니 근육통이 아주 심했다. 격렬한 스포츠를 하고 난 후의 기분이다. 우리는 대충 씻고 모텔을 나와 우동을 먹었다. 나는 고기우동을 먹었고 그녀는 카레우동을 먹었는데. 우리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와 이별을 했다. 난 곧 부대로 복귀했다. 


부대에 복귀하자 마자 그녀로부터 연락이 끊겼다. 페이스북을 확인 해보니 하루에 한명 꼴로 남자를 만나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왠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전우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네가 따먹혔다며 나를 놀려댔다. 다시 지루하고 답답한 생활이 시작 되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갈 수록 외로웠다. 살 냄새가 그리웠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희희덕 거리고 있는 사진을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다 뭔가 딸랑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동전을 떨어뜨린 모양이다. 집어들었더니 1루블 짜리 동전이 손 안에 남아있었다. 난 그녀에게 1루블 짜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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