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의의 침묵
-영화 「오래된 정원」을 보고-
소설과 영화「오래된 정원」을 감상하고, 나는 대한민국사를 공부해야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14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근현대사는 거의 배우지 못했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이과를 선택하면서 역사와는 영 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윗세대들이 피 흘리며 쟁취한 민주주의를 등한시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멜로 드라마의 성격을 띄고 있지만, 중간에 삽입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재현한 장면들은 그 때의 역사를 상기시켰다. 그 장면 빼고는 민주화 운동 그 자체에 대해 조명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사회주의 운동권인 현우는 윤희를 소개 받아 시골에 있는 윤희의 집에 숨어 지낸다.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윤희는 첫 만남에서 자신은 운동권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담은 영상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윤희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현우는 윤희와 갈뫼의 시골집에서 행복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동료들이 체포되고 자신만 행복할 수는 없다는 죄책감을 느껴 서울로 가기로 결심한다. 윤희는 뱃속의 아기 때문에 현우에게 가지 말라고 하지만, 현우는 듣지 않는다. 독재 시대의 냉혹한 사회 현실은 개인의 작은 행복마저 앗아갔다. 현우는 서울에 올라가서 곧 체포된다.
윤희는 현우와의 사이에서 난 딸인 은결이를 키우며 미술 교사로 지낸다. 그리고 운동권인 영작과 미경을 알게 된다. 미경은 대학을 그만두고 공장에 취업해 노동 운동을 한다. 윤희는 미경에게, 너 같은 먹물이 노동자로 살 수 있겠냐고 한다. 미경은 그건 언니 생각이라고 말한다. 미경은 노동권의 보장을 외치며 분신자살한다.
영작은 조직으로부터 운동에 앞장서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하지만 감옥에 가면서까지 자신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던 영작은 고민에 빠진다. 윤희는 영작에게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너의 길을 가라고 말한다.
18년 뒤 출소한 현우는 딸인 은결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은결과 만난다. 은결은 현재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영화는 물음을 던진다. 이제부터는 은결의 세대인 나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가 대학 신입생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2011년 2월 경북대학교에 합격을 하고 OT에 가서 처음 과 선배들과 동기들을 만났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과 선배들은 만나자마자 동기들에게 기합을 주며 대학의 똥군기 문화를 전파해주었다. 이에 화가 나서 나는 개강 후 선배들에게 아는 척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부조리한 군대식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동기들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 행사에 전혀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같은 과의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하고 소외되었다. 그리고 대학의 강의도 별로 나에게 감흥을 주지 못했다. 수학과 물리학, 화학, 통계학은 고등학교에서 배우던 것의 연장선에 불과했고 어떤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자주 자체 휴강을 했다. 듣고 싶은 강의를 듣지 못하게 하는 공학인증제(ABEEK)도 나를 괴롭게 했다. 공학인증제는 전공은 물론이고 교양조차도 학과가 정해주는 대로만 듣게 했다. 공대 졸업생은 대학에서 똑같은 강의를 듣고 찍혀나오는, 그 자체로 일종의 공산품이라고 생각했다. 1학년 2학기에 돌연 휴학을 했다. 부모님께서는 용돈을 주지 않으셨고, 나는 용돈을 벌기 위해 모 대형 할인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대형 할인 마트는 노동자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했고 근무 환경 역시 매우 열악했다. 안전 장비가 전혀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때 나는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교육 받은 적도, 충고 받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글쎄,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내 행동은 다를까?
한편, 나는 시를 본격적으로 읽고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인생에 있어서 과연 응용화학과를 졸업하는 것이 필요한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미경과는 달리, 고졸 노동자로 살기가 겁나서 대학으로 돌아왔다.
학교로 돌아와 처음으로 중앙도서관에 갔을 때 나는 안도했다. 이제야 책과 학문의 품으로 돌아온 것을. 그래, 나는 비겁하다. 고작 대학생으로서의 특권만을 누리겠다고. 세상에 뛰어드는 대신 다시 공부를 택했지만, 나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일을 하고자하는 의욕조차 없다. 단지 책을 읽고 시를 쓰는 것을 본업으로 삼고 싶지만,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칠까봐 이 또한 망설여진다. 부모님은 내가 시를 쓰고, 철학과를 복수 전공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시는데 이 또한 걱정이다.
나는 아직도, 세상에 뛰어들지, 그리고 어떻게 뛰어들지 고민하고 있다. 교수님께서 수업 카페에 올리신 ‘오래된 정원’ 강의자료 (2009년도)에서, 회개하는 인텔리겐치아 (뒤늦은 깨달음과 경직성: 혁명이냐 공부냐)라는 구절을 보고 궁금해졌다. 교수님께서는 혁명이냐 공부냐 하는 문제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론을 내리셨는지 듣고 싶다. (혹시 강의 시간에 이야기하셨는데 내가 결석하여 못들은건지도 모르겠다.)
이 글의 제목에 대하여 : 나는 ‘오래된 정원’과 교수님의 강의를 접하고 소감을 시로 썼다. 이 글의 제목은 그 시의 제목을 딴 것이다. (아래 첨부)
부검의의 침묵
부검의
죽은 러시아 희곡을 해부해
사인을 밝혀내는
그의 시에서 자신을 떠돌이라 했지만
실은 그는 1992년부터 국과수의 붙박이였다
부검의는 구소련 시절
러시아 희곡을 공부하기 위해
자유 베를린대에서 유학하던 때
베를린 장벽 붕괴를 맞은 것을 이야기했다
부검의는
유신 정권과
데모에 참가한 경험과
체포와
유치장에 갇혔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부검의의 말이 끝났을 때
강의실은 침묵만이 가득했다
우리는 열렬히 침묵했다
아니, 그 침묵은 우리들의 것도 아니었다
부검의의 아직도 뜨거운 무엇이었다
나는 시인의 달콤한 특권을 누리면서도
늘 세계에 대해서는 침묵해왔다
그러나 이제 침묵만으로는 안 된다
부검의의 침묵에
외침으로 답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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