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청초하면서도 을씨년스러웠던 작년 겨울 바람은, 다시금 내게 돌아와 옷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렇게 바람이 불고 날이 추워져감과 동시에 우리의 말들은 조금씩 더뎌지지만 따스함이 더욱 깃들어진다.


두꺼운 유화 물감을 칠하듯 묵직하게 무장되있는 외투 밖으로는 움직임이 뚱하지만 그 속의 나체가 간직한 온기를 알고있기에


우리는 멀리 있으면서도 붙어버린 입으로 아무런 말도, 얼어버린 시각으로 아무런 눈길 조차 주지 못하여도 우리는 손을 맞 잡을 수 있다.


또한, 마음 속의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 그 속의 매얼음들은 조금씩 녹여가는 것이 아니라,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를 흩뿌리듯


털어내야 한다는 것 마저 우리는 알고 있었다.





거리의 위의 간판불들은 그 명암이 더욱 강해지고, 머리 위의 먹구름들도 마찬가지로 진하기를 더한다.


항상 되돌아오는 겨울이지만, 우리는 작년과 다르게 조금씩, 혹은 조금 더 바뀌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 저편에 있는 촛불들은 녹지 않았고 벽난로는 닳지 않았으며, 어린 시절 맡던 시너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그렇기에 안중에도 없는 여름을 마음 속으로 닫아버림으로 보이는, 저 저녁하늘 멀리 사라져가는 글라이더가 하나가 애처로웁다.


우리는 각자의 시골의 뒷 켠 으로, 혹은 첨단 통신 장비들의 각편 아래에 옥구슬로 서로를 수놓은 듯 투명화된 벽들 사이로 자취를 감추며


하나 둘씩 안락한 수면을 이루면 나는 이렇게 저녁과 낮의 경계 사이를 모호히 여행하며, 곧 다가올 새벽의 미친 한파寒波기다린다.





손에 쥔 낡은 철봉의 한기가 노뼈를 지나 쇄골로 흘러들어 갈비뼈에 안착함에 몸이 부르르 떨더만 나는 오줌이 마려워 어두운 그늘 속의


음침한 공중변소로 달려가 그 안의 얼어죽은 벌레들의 애달픈 사연과 그 게을러터진 궁둥이들에게 추모했다. 나 또한 따스함에 취하지는 말아야지


생각했지만 어린 시절 딴딴하게 얼어붙은 농구공의 매움을 맛 보았었기에 움찔하여 바로 장롱 밑의 온돌 구석을 떠올리며 소변을 보았다.


이곳 주변을 둘러보면 잡초가 많다. 공터 주위의 잡초는 잡초 답게도 살얼음 낀 대지 위에서도 그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나는 억세게 잡아 뜯어보지만 단단히 얼어붙은 대지는 이 쓸 일 없는 잡초마저 꽉 붙들곤 놓아주지 않는다.


곧 이르면 하루 뒤, 아니면 삼 주 뒤, 아니면 한 달 뒤에라도 눈 덮힐 이 공터를 나는 마음 속, 싸리비로 쓸어 담아 두곤 발걸음을 떼었다.





98년의 겨울 속으로 사라진 저 기러기들, 혹은 80년대 , 70년대, 60년대, 아니면 빙하기의 어떠한 종種이 모닥불을 피우는 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상관이 있는가?. 나는 마지막으로 푸르스름한 상가 건물들을 지나치며 퉁- 하고 울리는 계단의 끝에서 임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