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쯤 됐을까. 8월의 태양 아래 한껏 달아오른 쓰레기더미를 뒤진 끝에 비슷한 책 여섯 권이 손에 들어왔다. 세 권에는 한글로 ‘선데이서울’이, 나머지 두 권에는 뜻 모를 한자 네 개가 투박하게 박혀 있었다. 제목을 알 수 없어도 누운 다리를 품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는 표지 디자인이었다.
한 손으로 들기엔 국민학교 3학년짜리의 손아귀론 어림도 없는 부피였다. 책들을 가슴팍에 안고 두 손으로 안은 채 매립장을 빠져 나왔다. 알 수 없이 마음이 바빠졌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들키면 안 되는 이유가 마음 한 구석에 분명한 존재감으로 서 있는 걸 눈치 챘음에도 애써 외면하는 모양새라고 할까.
걸음을 재촉했다. 눈에 띄지 않아야겠기에 듬성듬성 쓰레기 널린 매립장 끝자락에 붙어서 걸었다. 먼지 앉은 스티로폼 박스를 넘으려 보폭을 한껏 늘였다가 착지점을 찾지 못한 오른발이 밀봉된 비닐봉지를 밟았다. 미끄러지면서 상체가 옆으로 고꾸라졌다. 책을 끌어안은 손이 풀리고 책과 몸이 한꺼번에 쓰레기 더미 위로 쏟아졌다. 오물과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책을 주워 모아들고 뛰었다. 넘어지는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꼭대기에서 아빠가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았다.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내달리리라 다짐했다.
처음 발견했던 선데이서울까지 챙겨들고 풀숲 아지트에 다다랐을 땐 격한 숨소리가 매미 울음을 뒤덮을 지경이었다. 아지트는 집을 등진 채 왼쪽으론 매립지가, 정면으론 경미 누나 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돌출부의 경사면에 숨어 있었다. 허리 굽은 소나무 가지가 지붕을 덮고 적당히 무성한 진달래 수풀이 부채꼴로 담벼락을 쳐서 안으로 서너 명이 들어앉을 만한 공간을 형성한 곳. 혼자 무료한 시간을 달래거나 가끔은 경미 누나를 불러들여 오붓한 소꿉장난을 즐기기도 했던 곳이다. 안심하고 여자의 다리를 뉘여 놓을 곳은 여기 말곤 없었다.
숨을 가다듬고 앉아 책장을 넘겼다. 목차와 몇 개의 광고가 지나자 맨 다리를 드러낸 여자들이 여럿 등장했다. 주로 계곡이나 해변 모래사장을 배경으로 다리는 물론 웃통까지 훌렁 드러낸 여자들 화보가 줄을 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들의 맨살. 더러는 허옇고 더러는 구릿빛인 살갗의 목덜미와 어깨, 겨드랑이와 허벅지가, 종아리와 가슴골이 넘겨지는 페이지의 앞과 뒤에서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녀의 가족도 대개는 못 봤지 싶은 가슴팍의 까만 점과 배꼽 옆의 상처와 허벅지의 모기 물린 데가 불온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제목이 한자인 책의 한 페이지엔 엉덩이를 이쪽으로 쭉 들이밀고는 고개 돌려 웃어 보이는 여자도 있었다. 부푼 엉덩이와 허벅다리 경계에 접힌 살 주름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집어 든 최초의 선데이서울에서, 몇몇의 그렇고 그런, 그럼에도 하나같이 침샘을 바짝 마르게 하는 여자들의 반라를 훑어 보낸 후 드디어 모로 누운 그 여자의 다리가 나타났다. 그녀의 다리는 세 번에 걸쳐 접힌 마지막 페이지에 담겨 있었다. 접힌 페이지를 당기는 손가락 끝이 축축해져 있었다. 흡사 굳게 닫힌 입술이 열리면서 끈적한 침이 고여 나올 때처럼 접혀 있던 종이는 ‘쯔아악’ 소리를 내며 펴졌다. 여자의 얼굴과 하복부가 동시에 드러났다. 종이가 펼쳐지는 순서대로 시선이 하복부에서 얼굴 쪽으로 옮겨질 찰나였다. 시선이 한 곳에 끌려 움직일 수 없었다. 여자의 중요한 부위를 간신히 가리고 있는 수영팬티 한복판. 마치 고추가 들어앉아 있는 듯 볼록 솟아오른 지점이었다. 그러나 옷감으로 가려져 있긴 해도 그것은 남자의 고추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득한 기억 속의 다섯살이나 여섯살 무렵 외갓집 뒷동산의 완만하고 긴 능선을 닮아 있었다. 삼촌과 고모들의 학교가 있다는 그 능선 너머의 마을은 내게 늘 미지와 동경의 머나먼 곳이었다. 어린 내가 건너갈 수 없는 어른의 공간. 그 너머의 세계를 감춘 채 완만하지만 분명한 금지를 표현하는 곡선이었다.
그것은 막내 고모의 냄새를 닮은 곡선이라 할 만했다. 설날 밤 윷놀이와 고스톱으로 깊어 가던 안방의 소음을 뒤로 하고 거기서 가장 어렸던 우리 둘이 이불 덮고 누운 문간방이었다. 대문을 등지고 선 가로등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들고 방 안의 사물은 배경의 어둠에 숨었다가 살짝 드러나곤 했다. 무슨 말을 나누었던가. 속닥이는 소리 위로 솜이불이 덮이고, 완벽한 어둠이 닥쳤다. 막내 고모는 소리와 냄새로만 앞에 있었다. 눈 앞의 내 손도 보이지 않았다. 마구 흔들어 보는데도...어? 손 끝에서 밝아오던 어렴풋 곡선. 엄마의 것보다 확연히 작았지만 훨씬 부드러운 촉감에 좋은 냄새를 풍기던 고모의 젖무덤. 키득거리던 막내 고모의 목소리가 귓볼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몇 해 지난 여름 방학. 그때보다 더 얇아진 이불 속으로 파고들던 나를, 완곡하지만 분명하게 밀어내던 막내 고모였다. 이튿날 아침 고모는 수업 받으러 언덕 너머로 가버리고 나는 돌아오지 못할 그 곡선의 감촉과 냄새가 그리워 완만하지만 분명한 곡선으로 누운 언덕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여자의 곡선은 그런 기억들과 그 기억에 들러붙어 왔을 성싶은 흥분을 호출했다. 가슴이 뻐근해 오는 만족감과 이유 모를 은근한 불안감이 피어오르면서 종잡을 수 없이 섞여들었다. 고추가 딱딱해지면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것은 필시 어떤 신호이리라. 허나 무엇을 어찌 하라는 신호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냥 이대로도 좋았다. 이 느낌이 빨리 사그라들지 않길 바라면서 바지에 손을 집어넣어 고추를 만지작거리니 흥분감이 더욱 고조됐다. 점점 더 숨이 가빠 오고 입술에선 가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고추 끝에서도 뭔가 빠져 나올 듯 움찔거리는 기색이 있었지만 시원하게 터져 나오지는 못했다. 급속하게 피로감이 몰려오고 몸이 한쪽으로 스르륵 기울었다. 막내 고모의 냄새와 여자의 완만한 곡선이 머리 속으로 꽉 꽉 차 올랐다. 까무룩 잠이 들 무렵엔 멀리서 경미 누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고추 잡고 흔드는 게 그래 재밌나?
회상 부분에 빼먹은 단락이 있어 수정했습니다.
책들을 가슴팍에 안고 두 손으로 안은 채 --- 이게 좀.
흠..댓글로 보니 정말 이상하네요.
"내 어릴 적 이야기에 상상을 더한 형태."라고 네가 한 말에 은근한 호기심이 생겼어. 것은 두가지야. 하나는 작자와 화자를 어떻게 분리시키는가이고. 하나는 작자와 화자를 어떻게 일치시키는가야. 일단 지금까지 내 감상은 네가 작자와 화자를 확실하게 분리시켜 놓고 있다는 것에 있다. / 외에 네 글이 내게 주는 사소한 걸림들은 네 글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꾹꾹 눌러둔다. 왜냐고? 이어령이가 김승옥이를 여관방에 넣어두고 옆방에 감시자 여직원 둘을 두었지만 결국 김승옥이는 소설을 쓰다가 말고 탈출했고, 뒤에 이어령이가 그 글을 보고 이정도면 완결성은 있다고 해서 당시에 인쇄를 해버린 그 소설의 제목이 지금 내가 기억이 나지 않아. 물론 검색을 하면 그만이지만, 게 중요하지는 안잖아? // 너의 완결을 협박하고
싶은 마음이다.
ㅀ, 이 늙구랭아. 넌 그렇게 대접받고 싶냐?
그램마 먼지야 날아가거라.
먼지 / 그 분리가 일관되게 지켜져야 하는지 적당히 섞여야 하는지 확신이 안 섭니다. 후자 쪽에 가깝지 싶습니다만..아무튼 숙제검사를 앞둔 기분이네요.
그 곡선이 이 곡선이었군요. 어린 소년, 재미있음.
진돗개~, 김승옥의 일화를 예로 든 것은 그때 그가 완결성에 조금 더 다가가려 했다면 더 좋은 글이 되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랬어. /작자와 화자의 분리가 초기에는 쉽지 않으므로 완전한 분리를 향해야 하고 거기에 이르면 자유롭게 넘나드는 경지를 향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뭐 일반적인 생각이겠지. //아무튼 나는 네가 완결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