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여왕 히토미





괴우주(怪宇宙) 신선계에 속한 대마계(代魔界)엔 엄청나게 많은 종족들이 어우러져 살았다.


마족(魔族)의 일족이면서도 거의 마신족(魔辰族) 대우를 받는 도깨비의 일족인 일각마귀(一角魔鬼)의 여왕인 히토미는 다이나마이트 한 늘씬하면서도 풍만한 여체를 갖고 있었다. 히토미는 이마에 높이 솟구친 하나의 뿔이 달린 자신의 아름다운 몸을 자랑스러워했다.


도깨비들이 그런 높은 대우를 받는 것은, 도깨비가 거의 마신족 수준으로 강력하기도 했지만, 황천과 지옥의 간수 중 최상위이자, 괴우주 윤회 시스템에도 꽤 관여하고 있는 인신족(忍辰族)이 자신들을 도깨비라 가끔 칭하곤 하는 데에도 까닭이 있었다. 인신족들은 꽤나 능수능란하게 정치했다.


도깨비는 장난기 많고 선량해서 마족이면서도 독특한 지위를 형성했다. 이들 도깨비들은 남에게 속기 쉬웠지만, 인신족이 대마계 견제 차원에서 도깨비들을 관리해줘서 도깨비가 큰 피해를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일각마귀의 여왕 히토미는 인신족을 고마워했다.


히토미는 도깨비의 운명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도깨비의 미래에 관해 불안을 느끼는 몇 안 되는 일각마귀가 히토미였다. 그렇기에 여왕이 될 수 있었다. 여왕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고 했고 그럴 수 있는 실력이 있었다.


히토미는 철없이 지내는 동족을 가여워했다. 만만해 보이는 상대를 잡아먹으려고 드는 생명의 본질은 그야말로 본질이라서 괴우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생물은 사물을 잡아먹고 사는 것이고, 그 사물이 생물이라고 해서 별다를 것도 없다. 도깨비 군주 히토미는 그럼에도 책무를 느꼈다. 그런 뜻에서 인신족은 히토미에게 구원자나 다름없었다. 아주 의지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현 상태에서 도깨비들이 위험에 처한 것도 아니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히토미는 얼음인간(얼음因間) 눈루샨을 호감을 느끼면서 초대해 눈앞에 두게 되었다. 눈루샨은 창백한 얼굴에 흰 수염을 길렀고, 강력하기 짝 없는 인신족의 전사 중의 전사인 극초인간(極超因間)의 일원이었다. 눈루샨이 호기롭게 말했다.


“히토미! 히토미는 일각마황(一角魔皇) 가오그렘을 섬긴다고 들었소이다.”


“소녀, 그러합니다.”


“나 또한 가오그렘의 동맹자요. 그러니 나 또한 히토미 당신과 교류하고 힘을 합쳐 이 험난한 괴우주를 헤쳐 나가고 싶소이다.”


“제 입술을 닫으려고 하지 마세요. 제 뒤엔 대마계에서 비주류이지만, 강대한 악신족(岳辰族)의 우두머리인 일각마황 가오그렘님이 계시니까요. 그걸 얼음인간 눈루산 님도 알고 계시니 말이 잘 풀리겠군요.”


눈루산이 눈을 치떴다. 히토미가 말을 이었다.


“전 얼음인간 눈루산 님이 왜 거대한 설색(雪色) 선계 전함들을 끌고 이 머나먼 곳까지 와서 위세를 부리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 가장 강력한 인신족 괴우주 선계 해적인 별인간(별因間) 운혜천(運惠天) 님이 혜성검을 치켜들고 있기에 위기감을 느낀 것이 아닌지요. 더 놀라운 걸 말씀드릴까요? 운혜천 님이 거대한 군단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와서, 비주류이면서도 악독한 마신족들을 의적의 뜻으로 대거 소탕하고 있어요. 별인간 운혜천은 선계에 군림하는 뛰어난 지도자이죠. 눈루샨 님께서도 인신족 괴우주 선계 해적이시니 운혜천 님을 견제코자 할 거예요. 이 정도면 제가 무언가를 요구해도 되겠지요.”


확실히 얼음인간 눈루샨은 다양한 종족과 계급으로 이루어진 해적 선단을 이끌고 곳곳을 헤메이면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있었다. 눈루샨이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었다. 눈루샨의 강건한 몸이 음울한 새하얀 빛에 휘감겼다. 눈루샨의 눈빛은 형형했고 무서운 파라탐(Paratam)을 가볍게 내뿜고 있었다. 눈루샨이 말했다.


“내 바라는 바요.”


히토미가 귀를 쫑긋했다. 히토미의 귀는 엘프처럼 긴 편이고 뽀족했다. 눈루샨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눈루샨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히토미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소. 도깨비 군주인 그대를 탁월한 종족인 우리 인신족으로 환골탈태시켜 드리리다.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는 난 장담할 수 없지만, 실패해도 그대가 잃는 것은 없고, 성공하면 그대는 인신족이 되는 거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히토미는 인신족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하지만 신족(辰族)이 된다는 것은 일반 종족들에게는 큰 영예였다. 욕망이 있다면, 무색계나 색계의 주민들조차 신족이 되고 싶어 할 것이 명백했다. 그 정도로 신족은 강력했고 매력적이었다.


눈루샨의 몸에선 냉기가 흘러 나왔다. 그 속엔 절대 온도 보다 차가운 기운이 가득 휘돌아 그것이 무엇이든 얼려서 축소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 그 자체로서 벼려졌다. 얼음인간 눈루샨은 냉동인간(冷凍因間) 세밀리어의 의붓 남동생으로서 위세가 대단했다. 눈루샨은 두꺼운 갑옷과 망토를 거대한 몸에 걸치고 있어 위맹스러웠다.


눈루샨이 히토미에게 다가가 히토미의 뿔에 검지손가락 끝을 대었다.


막대한 정보가 흘러들어왔다. 인신족의 힘 안에서 히토미는, 별인간 운혜천이나 얼음인간 눈루샨이나, 해적 놀음을 인신족의 이익 체계 속에서 짜고 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운혜천이나 눈루샨을 비롯한 여러 인신족 해적들은 종족을 저버린 게 아니었다. 그들은 인신족을 위해 복무하는 이들이었다. 이 비밀을 남에게 알리는데 있어 히토미는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는 걸 느꼈다. 이것이 인신족의 특징이요 의리인 것인가 하고 히토미는 생각했다. 또한 그에 따른 대가도 히토미의 뇌리에 새겨졌다. 만약 인신족의 도덕적 인공지능의 궤도에 어긋나는 일탈을 저지르면, 인신족으로부터 인민재판을 당하게 되고 인신족에게서 벗어나 다시 윤회의 길로 추방당하고 마는 것이다. 인신족은 고도로 슬기롭고 사랑이 넘치는 종족이었고 이제 히토미도 그러하므로 이를 숙지했다.


히토미가 정신을 차렸다. 일각마귀의 여왕 히토미의 뿔은 이제 귀 양 옆에 솟아 오른 두 우윳빛 뿔이 추가되어 있었다. 히토미가 즐기는, 여자 닌자인 쿠노이치를 닮은 복색도 새로 인신족이 된 자신에게 그대로 잘 어울렸다. 두 우윳빛 뿔 사이에 차크라가 감돌았다. 그렇듯 몸에 밀착하지 않은 곳에 파라탐 차크라가 떠서 존재하기에, 인신족은 파라탐을 쓸 수 있는 최상위 신족들 중에서도 실로 막강한 것이다.


히토미의 머리 속에 착상이 떠올랐다.


“이제 난 둔갑인간(遁甲因間) 히토미다!”


순간 깨달음의 폭포가 히토미의 마음속에 몰아쳤다. 히토미는 도깨비 전체를 아우르는 수학적 파동을 느꼈다. 이것으로 이제 히토미는 도깨비 모두의 지도자였다. 인신족에서도 정식 극초인간 칭호를 받았으니 권능으로서도 권력으로서도 히토미는 인신족 지도자인 것이다.


눈루샨이 말했다.


“그대를 끌어들인 것은 나의 업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둔갑인간님.”


“옳으십니다, 얼음인간님.”


“자, 그럼 별인간 운혜천님을 만나러 가십시다. 난 그와 담판을 질 문제가 있어요.”


얼음인간 눈루샨과 둔갑인간 히토미는 별인간 운혜천의 진영으로 갔다.


운혜천은 혜성검(彗星劍)을 들고 있었다. 운혜천의 혜성검은 바늘을 닮았고 바늘귀에 해당되는 부분을 운혜천이 잡았다. 운혜천은 눈루샨과 히토미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신족들 사이에서 말이란 빛이었으며 양자 얽힘이었고 파라탐의 운용이었으며 괴우주를 둘러 싼 수학 공식의 어우러짐이었다. 그렇듯 무서운 속도로 말들이 오가는 것이다.


운혜천이 말했다.


“얼음인간 눈루샨님은 히토미님을 둔갑인간으로 각성시킨 업적을 내세워, 나의 해적 군단의 지휘권을 달라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별인간 운혜천님. 운혜천님도 알다시피 인신족이 되려면 고도의 현세에서의 자질과 합당한 윤회에서의 카르마가 필요한데 그런 이를 발굴하기가 결코 쉽지 않지 않습니까.”


“현세에서의 자질. 말씀 잘 했소이다.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요. 얼음인간 눈루샨!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에게 도전하겠소.”


운혜천이 혜성검을 눈루샨에게 겨누었다.


눈루샨이 카타르를 양손에 꼈다. 눈루샨의 카타르는 무기인간(武器因間) 이주라가 만들고 냉동인간 세밀리어가 강화시킨, 눈루샨의 애병이었다. 물론 운혜천의 애병인 혜성검도 무기인간 이주라가 만들었고, 우주인간 운수천(運首天)이 강화했다.


파라탐의 광풍이 휘몰아쳤다. 둔갑인간 히토미는 두 인신족 극초인간의 싸움이 해석되는 걸 느끼고 놀랐다. 도깨비이기만 했다면 두 존재의 싸움은 결코 느끼지 못 했을 것이다.


싸움은 한 순간에 끝났다.


눈루샨이 패배를 인정했다.


별인간 운혜천이 말했다.


“눈루샨, 만약 나중에 우리 인신족이 큰 전쟁을 일으킬 때가 온다면, 그때 내가 맡을 군단인 4군단에 들어오시오.”


“존명.”


둔갑인간 히토미는 자신의 자리를 알았다. 히토미는 도깨비 여왕으로서, 대마계에 사는 모든 도깨비들의 정점에 올랐고, 훗날 아후라제국과 최강제국이 싸울 때 대마계에 머물면서 도깨비들을 다스리고 인신족을 지켜내는 데 이바지했다.



[2014.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