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냉장고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들어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잠시 안에 있다가 나올 생각이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다리가 저려왔고, 문을 밀었다. 밀고 또 밀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디선가 둔탁하고 거친 소음이 들려왔다.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이 냉장고는 버려진 냉장고였어.
잠깐 생각하는 사이,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갇혔어.
그는 생각했다.
냉장고 안에는 김치, 먹다 남은 삼겹살이 랩에 쌓여 있었고, 멸치볶음이나 감자조림, 나물반찬들이 작은 밀폐용기에 담겨 그의 뒤 쪽 선반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리고 앞 칸에는 토마토 케찹과 마요네즈, 그 밑으로 물이 들어 있는 페트병이 놓여 있었다.
그는 이 냉장고가 밖에서 볼 때랑은 전혀 다른 속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볼 때 이 냉장고는 색이 벗겨져 있었고, 그렇게 크지 않은 냉장고였지만, 냉장고 안은 이 냉장고가 가정집에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깔끔했다. 당장 누군가 문을 열고 음식을 꺼내 먹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냉장고였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이상한 건 크기였다. 밖에서 볼 때에는 170센티 정도 높이에 100센티 정도의 가로 길이를 가진 2단짜리 중형 냉장고였지만, 내부는 상당히 공간이 넓었다. 그에게 그 공간이 크다는 생각을 불러오지 않았다면, 그는 거기에 들어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는 주위를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딱딱한 감촉이 그대로 느껴졌다.
정말 이상해. 이상해.. 모든 게 진짜야.
이게 대체 뭔지, 진짠지 환상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서 몇 일 간은 버틸 수 있겠어. 빠져나갈 궁리나 하자.
그는 자신이 들어오기 전의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주위에는 나무도, 사용하다 버린 건축용 자재나 목재 같은 것도 없었다. 오직 무성하게 자란 긴 녹색의 날카로운 잡초 풀에 냉장고가 가려져 있었을 뿐이었다.
누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내가 들어가자 나오지 못하게 해버렸을까? 바보 같은 생각이야.
그는 생각했다.
아무리 스마트폰이 존재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느 누가 내가 여기에 한 날 한 시에 들어간다는 걸 알 수 있을까? 거기다 냉장고는 수풀에 가려져 있었고, 한쪽 벽 모서리 구석에 처박혀 있었어. 주의 깊게 살펴봐도 찾기 힘들어.
그는 생각했다.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건, 단 하나야. 뭔가가 문을 압박하고 있거나, 가로막고 있다는 거야. 정말 말도 안되지만, 누가 정말로 문을 막아두었든, 우연의 우연으로 뭔가가 떨어지거나, 굴러와 막고 있든 간에 문을 열지 못하는 명백한 사실. 식탁? 식탁 다리가 부러져 냉장고 문 사이에 열지 못하도록 강하게 끼었나? 왜 뜬금없이 식탁이 떠오르지?
하지만 냉장고 주의에는 식탁 같은 것은 없었다.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단지 수풀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계속 생각했다.
어떻든 간에 식탁은 없었어. 그리고 만약 식탁이 있다고 해도, 내가 발로 밀었을 때 충분히 열렸어야지. 내가 그 정도로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발로 밀었을 때 열리지 않는 것을 보면, 뭔가 꽉 끼어 있거나 뭔가가 기막히게 문을 압박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뭐냐는 말이지.
사실 생각해보면 그 뭔가는 중요치 않았다. 무엇이 문을 압박하고 있든 그가 문 밖으로 나가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야 그것들을 치울 수 있을 텐데, 안에서 그것들에 대해 생각해봤자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해보기로 했다.
밖에서 뭔가가 강하게 밀고 있다는 것은 틀린 건가? 그런데 왜 이 빌어먹을 문이 열리지 않는 거냐고. 아무것도 막는 것이 없다면 당연히 열려야지.
그는 주위에 틈새 같은 것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어딘가로부터 공기가 들어오고 있다는 증거야.
하지만 틈새 같은 것은 없었다.
난 지금 무슨 주술에 걸려 있는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정말로 그럴지도 몰라. 진짜로 냉장고 문을 막고 있는 것이 없다면 이것으로 밖에 설명이 안 돼. 그럼 내가 쏟아 부었던 그 힘은 뭐지?
그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잘 생각해야 돼. 난 지금 마법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게 아냐. 아니면 정말로 이 모든 게 환상이든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마저도. 그러면 어렴풋이 알 수 있겠네. 이 모든 게 환상일까? 난 실제로는 없는 존재일까? 아니면 여기 말고 다른 곳에?
그는 앞칸에 놓인 케찹, 통조림, 생수페트병들을 봤다. 그리고 만졌다. 거기에 붙여진 라벨에 쓰여진 조그마한 글씨들을 읽었다.
이 모든 게 환상이라고? 그럼 보고 있는 난, 생각하는 난 뭐지? 이것도 환상? 없는 것? 다른 곳에서 여길 보고 있다는 거야? 그럼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난 어쨌든 여기에, 이 냉장고 안에 존재할 뿐이야. 난 갇혔다고. 하지만 그게 뭐야. 그걸 안다고, 내가 여길 빠져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어떤 생각도 냉장고 문을 가로막고 있는 것에 대해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그는 껍질이 벗겨져 이제는 자그맣게 빨간 딱지가 생긴 자신의 왼쪽 손등을 오른손으로 어루만졌다. 쓰라림을 느꼈고, 잠을 자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잠은 오지 않았고, 왜 자신이 냉장고 문을 열고 들어오게 되었는지 곱씹어봤다.
그는 작가지망생이었다. 그는 글을 쓰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수 많은 작가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경험들을 소설 속에서 멋지게 표현해 내는 것을 보면서 그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풍부한 생각과 이해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부러웠다. 그는, 자신은 세상은 커녕, 다른 사람들의 삶조차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딘가에서 들은 편견, 미디어에서 만들어진 파편과 조각들. 그것들로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가 그렇게 깨달았던 건, 노숙자를 봤을 때였다. 노숙자에게선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정말 아무런 생각도 없어 보이지만.) 왜 저렇게 살아가는지, 저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생각할 수도 없었다. 노숙자가 풍기는 검은 기운처럼 깜깜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왜 난 아무것도 모르는 걸까? 왜, 이런 생각들이 소설에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것들은 필요하다. 저들처럼 되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한편으론 그는 정말로 저들처럼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만나게 되면 기분이 아무리 좋더라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문득문득 자신도 저렇게 되지는 않을까. 노숙자로부터 풍겨오는 검은 기운,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절망의 기운에 전염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는 그들이 뭔가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다.
갇힌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냉장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리고 문을 닫고, 냉장고 안에 웅크려 앉았다. 잠깐 있다가 나가야지. 했지만 냉장고문은 열리지 않게 된 것이다.
그가 잠에서 깨났다.
지금은 낮일까? 밤일까? 날씨는? 바람이 불고 있을까? 비가 내리고 있을까?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푸른 하늘일까. 그래 푸른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난 그 하늘을 정말 좋아하지. 잠에서 깨 그 깨끗한 푸른 하늘을 보고 있으면 내 삶이 어떻게 되어왔든 아무래도 좋았어. 새로운 하루는 언제나 그 때부터 만들어가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 냉장고에 갇혀 있어. 날씨가 어떤지는 몰라. 그리고 지금 날씨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저 여기에 웅크리고 있을 뿐. 여기 갇혀 있는 한 푸른 하늘은 내겐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하늘뿐만이 아니라, 모든 게 다. 시발.
그는 잠깐 몸을 풀었다. 그리고는 다시 문을 밀어보았다.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길은 냉장고 안에 있는 물건들로 향했다. 자잘한 제품 설명들이 보였다. 그는 딸기잼이 들어있는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제품 설명들을 읽어나갔다.
딸기슬라이스가 56.19퍼센트. 딸기슬라이스가 뭐지? 아미드 펙틴은 또 뭐야? 부정, 불량식품 신고는 국번 없이 1399. 1회 제공량은 2작은술. 20그램. 총 약 43그램. 850그램. 그럼 20그램씩 43번 먹을 수 있다는 말인데. 20그램이면 어느 정도일까?
그는 생각했다.
어느 정도일까? 이걸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 있을 거 같네.
슬슬 배가 고파왔다. 음식들은 아직 먹을만해 보였다.
일단 상하기 쉬운 것들부터 먹자. 삼겹살이 제일 먼저 상하겠지? 이걸 제일 나중에, 여기서 나가기 직전에 먹는다면 좋겠는데.
그는 랩을 벗기고 삼겹살을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기름이 다 빠진 삼겹살은 그가 먹기에는 상당히 텁텁했다. 곧 목이 메어왔다. 그는 문 앞에 있는 페트병을 들고, 물을 마셨다.
그런데 오줌은 어떻게 하지?
방금 마시고 가져다 놓은 1.5리터짜리 페트병이 눈에 들어왔다.
뭐 다 방법이야 있겠지.
그는 다시 문을 손으로 밀었다.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건 이제 무의미한 일이야. 괜한 힘만 빼는 짓이고. 힘이 빠지면, 또 뭔가를 먹어야 하겠지. 그러면 음식은 또 줄어들 테고. 가만히 있을 때 보다 음식은 더 빨리 줄겠지. 그러면 그건 내가 여기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 줄이는 셈이 되는 것이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이 생각에 앞으로 더 이상은 문을 여는데 힘을 소모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열리지도 않을 문, 그는 최대한 힘을 아끼기로 하고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가장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냈다. 제품들의 설명들을 읽고, 생각하고, 상상해보는 것.
딸기잼 유리병뿐만이 아니라 다른 제품들의 설명들은 한마디로 신선했다. 평소에는 지나쳤을 그 자잘한 설명들은 그가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케찹의 유통기한과 제조공장, 마가린의 성분, 우유에 포함된 칼슘의 양, 카레의 요리법, 스팸의 주의사항들. 그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하나도 알지 못했다.
난 이런 것들도 모르고 여태껏 잘도 살아왔군. 내가 여기서 나간다면, 저기 쓰여진 카레 요리법 대로 한번 카레를 해보겠어. 지금껏 한번도 카레를 만들어본 적은 없지만, 왠지 저대로 따라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스팸을 먹을 때도 주의사항을 반드시 지켜야겠어.
그 순간, 강렬한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욕구는 답답함으로 변했다. 그는 다시 차근차근, 한자씩 설명들을 읽으면서 마음의 평안함을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아니, 내가 왜 이러지?
그는 안절부절 못하고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는 부수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부수고 싶었다. 그리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난 참아야 돼. 그런다고 내게 도움이 되는 건 하나도 없어. 참아야 돼..
그는 설명 읽기를 멈추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어쩌면, 내가 내 주제를 넘어선 생각을 해서 그런 건지 몰라. 내가 잘못 한 거야. 난 여기 냉장고에 갇혀 있어. 주제넘게 나가서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한 것이 잘못인걸 거야. 그게 내 마음을 더 답답하게 만들고 있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근데, 생각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 수 있는 걸까? 분명 그랬어. 내가 설명들을 읽고, 여기서 나간다는 상상을 하니까 갑자기 답답함이 느껴졌어. 그럼 답답함을 느끼지 않으려면 여기서 나간다는 상상을 하는 것은 금물이군.
그는 그 이후로 더 이상 나가서 뭘 해야겠다는 상상이나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어느 정도 갇혀 있는 상황에서 평온과 초연함을 가져다 주기 시작했다.
그래 당연한 거야. 내가 지금 여기 갇혀 있는 게, 그리고 내가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거야. 난 여기에 순응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어. 괜히 힘을 빼는 것은 정말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짓이야. 이 냉장고가 나에게 중요한 걸 가르쳐 주네. 어쩌면 냉장고는 신일지도 몰라. 난 지금 이 신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어, 내가 여기서 나가고자 하면 냉장고는 날 벌을 줄 거야. 그런 생각 자체가 죄악이야. 그리고 냉장고신은 그걸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시고. 나에게 벌을 내리실 거야. 벌을 받는 건 당연해. 여기서 나가고자 하는 생각은 신에 대한 배신이고, 이단. 죄를 짓지 말자. 여기서 나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절대로.
그는 평온한 상태에서 잠이 들었다.
그의 이마에선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무척 더웠다. 그는 생수 페트병을 들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 꽉 막혀 있는 냉장고 안을 둘러보았다. 순간 두려움이 느껴졌다.
시발, 뭐가 신이야? 난 갇힌 거야. 냉장고, 이 시발 놈이 날 가둔 거야. 이 새낀, 저 위에서 날 내려다 보면서 낄낄대면서 웃고 있겠지. 개 시발!
그는 앞 문을 향해 성난 발길질을 해댔다. 어떻게든 문을 부숴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분노와 악의를 가지고서 냉장고 앞 문을 바라봤다. 어떻게든 그 문을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괜한 힘을 뺀다는 생각에 애써 참아야 했다. 자신의 욕구가 어떤 무언가에 가로막혀 할 수 없다는 것은 상당히 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음을 최대한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괜한 힘을 빼지 않는 것이 현명하고, 합리적인 생각이야. 지금 내게 중요한 건 힘을 최대한 아끼면서 힘을 비축하는 거야. 어떤 분노도, 흥분도 할 필요 없어.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그는 자신을 다독거리면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대체 난 왜 냉장고에 갇힌 기분을 궁금해 했을까?'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경험해 본 것이 아니기도 하고 잘 몰라서.'
'그 경험을 왜?'
'그 경험은 나에게 도움이 되니까.'
'무슨 도움?'
'소설을 쓰는데.'
'소설을 쓰는데 그 경험이 필요해?'
'다른 위대한 작가들을 봐. 그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난 그런 게 없어. 하나도. 너무나도 평범하지.'
'만약, 내가 작가지망생이 아니었더라도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그야 모르지. 하지만 굳이 냉장고에 들어갈 이유가 뭐가 있지? 굳이 그렇게 갇혀버린 느낌을 내가 느껴야 하는 이유는 뭐지? 그저 냉장고는 음식들을 신선하고, 오래 보관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며 문 열기를 반복하고, 음식들을 꺼냈다, 집어넣었다를 하고 있었겠지. 누가 그 안에 들어가려고 하겠어? 어떤 미친놈이?'
그는 거기서 생각을 멈췄다.
그래, 나였군. 그 미친놈이.
그는 생각했다.
냉장고에 갇혀 있다 보니 내가 질문하고, 내가 답변하고. 이중인격자, 정신분열증 환자 같군.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분명 상상이 아니야. 현실이야.
오줌이 마렵기 시작했다. 그는 1.5리터 생수 페트병을 바라봤다. 거기엔 아직 물이 반쯤 들어 있었다.
그냥 쌀까.
그는 생각했다.
아니야. 그러면 오줌이 굳어서 이 안은 냄새가 진동할 거야. 그 냄새를 괴롭게 맡을 필요는 없어. 그리고 또 누군가가 문을 열었을 때 그 냄새가 난다면, 난 상당히 쪽이 팔릴 거야. 하지만 페트병은 아니야.
그는 오줌을 담을 병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당한 병은 보이지 않았다. 암모니아 냄새가 냉장고에 진동하지 않게 뚜껑으로 꽉 밀페를 할 수 있는 병은 생수 페트병 하나뿐이었다
저것 하나면 몇 일은 버틸 수 있을 거 같은데. 만약 그 때까지 구조되지 못한다면 그 이후엔?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참고 있을 수 만은 또 없어. 그냥 쌀 수도 없고. 정말 기분 더럽군.
그는 자신의 옆 쪽에 있는 나물이나, 김치,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을 담아 놓은 플라스틱 용기들을 바라 보았다.
그래, 이렇게 하자.
그는 플라스틱 용기의 반찬들을 다른 플라스틱 용기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김치며, 나물이며 모두 뒤섞인 채로 한 개의 플라스틱 용기를 가득 채웠다. 그런 용기가 세 개가 되었고, 텅 빈 용기는 두 개가 되었다. 그는 텅 빈 용기에 생수를 쏟아 부었다. 페트병의 생수는 두 번째 용기를 다 채우고도 남았다. 더 이상 물이 들어갈 공간은 없었다. 그는 남은 물을 담을 용기는 또 없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더 이상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남은 건 마셔버리자.
그는 남은 물을 마셨고, 페트병에 오줌을 누웠다. 다 누고 나서, 그는 오줌이 들어있는 페트병을 바라보았다.
만약, 오줌을 물로 변환하는 장치가 여기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오줌은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오고, 다시 내 몸에서 다시 오줌으로 나가겠지? 그리고 그걸 다시 먹고. 다시 싸고. 상당히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네.
그는 꽉 막힌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에 갇혀 있는 게, 또 이게 지금 내 현실이란 게 더 기괴해.
그는 오줌이 담긴 페트병을 자신의 등 뒤에 놓았다.
갇힌 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지만, 그는 플라스틱용기의 빈 공간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꽤 시간이 흘렀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는 아주 조금씩만 음식을 먹었고, 빈 공간이 많다는 건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은 굶주림의 최저선을 가리키는 게이지 역할을 했다. 빈 공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리고 플라스틱 용기들이 텅 비게 되면 그 때부터는 굶주림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빈 공간이 커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어떤 두려움도, 위기감도 느껴지질 않았다.
나에겐 아직 음식이 남아 있잖아? 저 정도면 충분해.
그는 남은 음식들을 보면서 안락함을 느꼈다. 안락함은 그 자신이 냉장고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었던 것이다.
난 음식들이 있고 없고에 연연하지 않아. 난 물질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방법을 찾아냈고, 이제는 자유로워. 내가 추구해야 하는 건 자유로운 정신. 그것 하나면 돼.
하지만 그가 조금이라도 갑갑해 하면서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생각이 불쑥 올라오면 ‘자유’라는라벨이 붙어 있는 마취제는 어김없이 풀렸다. 그러면 다시 꽉 막힌 현실이 기괴한 괴물처럼 그 앞에 드러났다. 그는 마취제를 맞았다가, 풀리고, 마취제를 맞았다가, 다시 풀리는 과정을 되풀이 했다. 이게 그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현실은 적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게 읽을거리를 주고, 거기서 견딜 수 있게 해준 사물들에게서 증오가 생겨나고, 혐오가 일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더 이상 자신에게 호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나가고 싶어하는 바람을 자극하는, 자신이 냉장고 안에 있는 것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로 바뀌어 있었다.
개새끼들.
그는 딸기잼 통과 그 옆에 있는 케찹, 카레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저 새끼들은 서로 낄낄대고 있을 거야. 날 조롱하고, 멸시하고, 비웃고 있겠지. 때린다고, 부숴버린다고 해결은 안되겠지. 기분은 나아질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아니야.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그 어두운 공간 안에서 증오와 분노, 혐오들을 없애고, 뭔가를 발견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뭔가는 뭔지 그도 잘 몰랐다.
하지만 그 뭔가는 분명 있어. 있는 거 같아. 초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초연함과 같은. 이 안에서조차 깨지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 그리고 나를 평안하게 하는 것. 그런데, 정말 그런 게 있을까?
그는 그런 것들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다른 할 일 같은 것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마리아나 해구가 떠올랐다. 그는 그 해구에 끌렸고, 자신은 그 곳을 탐사한다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래. 물고기들. 물고기들이 보이는 구나. 저기 물고기 떼들이 지나가네. 빛을 받아서 반짝반짝 하는 게 정말 아름답다. 상어다. 무서울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무섭군. 이 안에 있어서 그런가. 물고기 떼들이 빠르게 흩어지네, 상어는 굉장히 빠른데? 이건 무슨 소리지? 그래. 다큐멘터리에서 듣던 그 소리. 고래 소리다. 그런데 고래는 어디 있지? 그런데 난 왜 여기에 왔을까? 뭘 찾으러.
탐사선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둠뿐이었다. 그는 그 어두운 심해를 바라보며,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난 뭘 찾으려고? 아무것도 없잖아? 보이지도 않아. 만약 뭐가 있다고 해도 어둠 때문에 보이지 않을 걸.
그 때, 희미한 불빛 하나가 어두운 심해를 밝히고 있었다. 그것은 점점 더 밝아지면서 그의 탐사선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그 불빛을 잠시 동안 넉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거대한 초롱아귀가 입을 쫙 벌리며 탐사선 유리창에 부딪혔다. 초롱아귀의 들쑥날쑥한 날카로운 이빨들이 보였다. 검은 눈동자가 없는 흰자위만 있는 초롱아귀는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확히 그가 있는 방향으로 계속 유리창을 부딪혔다.
저 놈은 내가 여기 있는 걸 아는 구나. 저 놈은 유리창을 깰 수 있을까? 일부러 나를 찾아왔을까? 아니면 우연일까? 난 저 놈을 보러 온 게 아니야.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겠어.
그는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방은 고요했다. 탐사선 안은 작은 황색 전구가 밝히고 있었지만, 탐사선 너머 깊은 바다에는 오로지 침묵과 어둠뿐이었다.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고,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안이 너무 밝아서 밖이 보이지 않는 걸까?
그는 잠깐 스위치를 내려보려고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난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 난 왜 내려가는 걸까.
탐사선의 탐조등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탐사선의 탐조등은 꺼진 지 오래고, 탐사선 안 레이더 계기판의 불빛만 반짝였다. 해구의 심연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는 그렇게 한 없이 내려갔다. 불안 같은 것은 없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조차 없었다. 그는 오직 밑으로 밑으로 자신을, 탐사선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는 성공할 수 있을까? 그는 밑바닥에 탐사선을 안착할 수 있을까? 그가 찾고자 했던 걸 찾을 수 있을까?
그는 분명한 사실을 하나 알아냈다. 자신은 필연적으로 죽는다는 것.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지금 자신은 죽음의 탐사를,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냉장고에 갇힌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짧은 단편 소설로 쓰면 괜찮겠어.
그는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 자신이 마치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처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음식은 점점 사라져만 갔다. 이야기에 골몰하면 할수록 냉장고에서 갇혀 있는 시간들은 사라져 갔고, 사물들도 더 이상 그에게 어떤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았고, 존재하지 않기 시작했다.
"쾅! 쾅!"
냉장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사람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았다.
"여기요!"
그는 소리쳤다. 그리고 냉장고 앞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 안에 사람 있어요! 저 좀 꺼내줘요!"
그는 소리치며 계속 냉장고 앞문을 두드렸다.
“냉장고가 말을 하네?”
“냉장고가 말하는 게 아니라, 제가 말하고 있어요.”
“아니, 거긴 왜 들어 간 거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밖에 있는 사람이 말했다.
“아무 말도 못하는 걸 보니 도피를 한 거로군. 뭔가 죄를 지었어.”
“아닙니다. 전 죄를 짓지도, 여기에 숨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야. 당신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당신 말은 믿을 수 없어. 누군가를 죽였지? 그렇지? 그래서 당신은 거기 숨었다가 갇히게 된 거야. 그렇지 않고선 당신이 거기에 스스로 들어갈 이유는 하나도 없어.”
“아니라니까요. 정말 아닙니다!”
“아니, 내 말이 맞아. 당신은 누군가를 죽였고, 거기에 갇혀 있는 거야. 당신은 살인자야. 당신이 아무리 살인자가 아니라고 해도, 난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어. 뭔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을 보여봐.”
“제발 좀. 내 말 좀 들어주세요. 전 누군가를 죽여서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단지 호기심일 뿐이었어요. 전 작가지망생이고, 여기에 들어오면 어떤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밖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낄낄 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이봐요!”
그는 소리치면서 냉장고 앞 문을 두드리기 때리기 시작했다.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제발요…”
그는 때리기를 멈췄다. 낄낄 대는 소리도 멈추었다. 밖에 있던 사람은 가버린 것이다.
"우우, 히히."
얼마 후 다시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의 주인공은 냉장고문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도 냉장고 문을 때리며 소리쳤다.
“저기요, 문 좀 열어주세요! 저기요!”
"냉.장.고야, 잘.못.했.어, 안.했어? 이.런.짓 하.지 말랬지? 왜 그.랬.어? 넌. 좀. 맞.아야. 돼. 그.래.야 정.신.을 차.리.지. 더 당해.봐야. 한.다.고."
말을 툭툭 끊어 말하던 이는 다시 냉장고 문을 쾅쾅 때리기 시작했다.
미친놈일까? 욕구불만으로 가득한 비정상적인 사람? 사이코? 괴물?
그가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하는 사이에도 어딘가 모자란듯한 사람은 괴성과 말도 안 되는 말들을 냉장고에 퍼붓고 있었고, 냉장고 앞 문을 때리고 있었다.
저 사람은 아니야. 저 사람은 미친 사람이야. 문 열 줄도 모를 거야. 시발.
몇 일이 지났을까. 플라스틱 용기들은 모두 텅 비어 있었다. 그 후로 몇 일이 더 지났는지 모른다. 더 이상 버틴다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몰랐다. 다가오는 것은 죽음뿐. 하지만 그는 누군가가 구조해 주길 바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쓸 단편에 대해 생각했다. 또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고개를 푹 숙여 웅크려 있던 그가 고개를 들고 중얼거렸다.
“방금 단편 하나를 완성했어"
지석은 잠에서 깨 눈을 떴다. 목이 말라왔다. 지석은 물 한컵을 마시려고 냉장고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그 안에는 누군가 웅크린 채로 앉아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자신, 지석이었다.
어떤가요..? 아무도 반응이 없네..ㅜ.ㅜ
일단 문갤에서 읽기엔 너무 길다. 근데 그 길다는게 첫부분을 읽으면 아........ㅈㄹ 재미없겠다....문장도 고딩틱하고...이 생각밖에 안듦. 실제로 읽고싶지도 않아서 안읽었음. 도움됐으면한다.
오. 나도 목말라졌어. 상황은 별로 리얼하진 않은데 묘하게 사실적이다.
좋은 소설이라고까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진짜 갇혀본 사람같은 느낌은 있었음
갑자기 갇힌 상황을 왜 만드는지. (시간 버리면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나) 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