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Fragment-->

간암이었다. 아직은 어린 그가 죽고 나서 눈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 살아생전 그의 느끼한 얼굴에 쓴 외로움이 묻어 있던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살아가더라도,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동혁아.”

그와 함께 대학 내 호숫가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솔방울이 머리 위로 툭 툭 떨어지는 날이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솔방울이 호수 쪽으로 굴러 떨어지는 걸 지켜보았다.

그렇더라, 그렇더라.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외로움은 먼 무지개처럼 낯설게 느껴지지. 하지만 결국엔 그들은 내 곁을 떠나버리게 되더라. 결국엔 외로움이란 내 발치 앞에 흐르는 강물에 비친 무지개처럼, 너무 선명하게 느껴져 버리더라.”

그가 그렇게 진지한 적은 처음이었다. 꿈의 풍경처럼 아련해서 난 자고 있을 진짜 내 본체를 마음속으로 떠올렸다. 잘 자고 있냐? 하지만, 의식의 회로는 너무나도 또렷하고 현실적이었다. 결국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나무 사이에 걸린 노을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무에 가려 흩어져버리는 노을의 번진 빛을 계속 보기 위해 찬찬히 일어섰다. 선배도 나를 따라 같이 일어서서 내가 보고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선배를 돌아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맥주 값 내세요.”

그는 낙엽이 막 썩어갈 무렵인 늦겨울에 파주 용미리에 묻혔다. 나는 입춘 쯤에 백일홍 두 송이만 들고 언덕 중턱에 있는 자그만 무덤을 찾아갔다. 무덤은 시들어버린 잡초들로 무성했다. 백송만이 홀로 푸르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무덤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무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누구도 울어준 흔적이 없었다. 나는 적당히 그 흔적을 만들어서, 한참을 눈물을 참았다. 인연이 깊지도, 뜻이 있지도 않았는데, 너무 서러워서 하늘이 어스름해질 때까지 무덤 옆을 지켰다. 정말 희한한 사실이었음에도, 나는 급격하게 그의 인생에 나를 투영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잘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