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추석이나 설날마다 한국에서 매번 나오는 갈등이 있다. 내가 이 갈등을 처음 본 것은 초등학생이었을 무렵이었는데,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고쳐지지 않는 것 같다. 바로 이것은 친척간의 호칭 갈등이다. 역시나 이번 설날에도, 저번 추석에도 네이버 뉴스에는 이것에 관한 갈등이 랭킹 뉴스에 올랐고, 또 수백개의 댓글로 사람들이 의미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런 갈등이 TV 프로그램에도 과거에 나온 적이 있는데, 내가 찾아보니 대략 이런 사례였다. https://www.instiz.net/pt/5996899 시동생을 '도련님'이라고 부를 것을 강요받다보니, 결혼하기 이전에는 서로 친했지만 호칭 갈등 때문에 부르기 껄끄럽게 되어 사이가 도리어 멀어졌다는 사례이다. 나는 여자도 아니고 결혼을 하지 않아서 누구를 '도련님'이라고 불러본 적은 없지만, 저런 사례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여러분들도 한국에서 거주하면서 누구나 항상 "저 사람을 어떻게 호칭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아주 흔하지는 않다.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사회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공적인 상황에서 만나지 않는다면 그런 고민이 생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내가 스포츠를 좋아해서 가입한 동호회에 다른 회원이 있을 때, 그 회원을 어떻게 호칭해야 할까? 그 사람이 나보다 어리다면 그나마 쉽다. "이름 + 씨"를 사용하면 간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거의 어머니 아버지뻘 되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 "이름 + 씨"를 사용하자니, 버릇없는 놈이 되는 것 같고, 아버님, 어머님, 사장님, 사모님 같은 호칭을 사용하자니 그 사람을 특정할 수 없고...그래서 한국에서 요즘에 쓰이는 호칭은 인터넷과 같이 '이름 + 님'과 같은 호칭인데, 이것도 까다로운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는 이유로 화내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화를 내는 사람은 그 사람을 특정하기 위해서 내가 도대체 무슨 호칭을 사용해서 어떻게 불러야 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비효율성을 한국에서 나와서 살기 전까지는 몰랐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사나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물론 서양에서 이름을 부르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편하고 효율적이며 수평적 질서에 유리한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서양에서 '이름을 부르는 것의 편리함'을 경험하면서, 여러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호칭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게 되었다. 종교나 문화 질문에 비해서 이것은 실례도 아니어서 물어보기 매우 쉬웠고, 재미있는 결과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일단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국가나 유럽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하지 않으면 성씨로 호칭하고 친하면 이름으로 호칭하는 것이다. 아랍쪽과 페르시아쪽의 경우도, 그리고 아프리카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이들의 이름 체계가 서구권과 거의 같다). 다만 서구권에서는 보다 더 친하면,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애칭으로 부른다. 특히 러시아에서 이것이 두드러지는데, екатерина를 Катя로, Сергей를 Серёжа로, Георгий를 Жора로 부르는 식이다.서양 문화권과 다른 동양 문화권에서의 결과가 더 흥미로웠다. 일본의 경우에는 보다 서양에 많이 가까웠는데, 기본적으로 친하지 않으면 성씨로 호칭하고 친하면 이름으로 호칭한다는 점에서는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에서는 이름 + 君, 이름 + ちゃん 등으로,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나 애칭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랍, 서양, 일본 문화권에서 이게 가능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성씨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특히 middle name까지 사용하는 서구권에서는 middle name까지 함게 사용해서 상대를 호칭하면 성씨가 겹칠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친하지 않은 상대에게 성씨로 호칭하는 기능이 매우 잘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성씨가 매우 많은 베트남, 중국의 경우는 어떨까? 베트남은 한국의 김씨보다도 응우옌이라는 성씨가 많은 국가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이것이 매우 궁금해서 베트남 친구에게 물어보았는데, 재미있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이름의 끝글자를 만능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베트남 이름은 원래 한자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한국 이름과 비슷하게 한자 3음절로 끊어지게 된다. 따라서 성씨가 매우 많이 겹치는 것을 보완하여 상대적으로 겹치지 않는 이름의 끝글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남베트남의 마지막 대통령인 티우 대통령의 이름도 Nguyễn Văn Thiệu인데, 그를 응우옌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전부 티우 대통령이라고 호칭하고 있다.중국의 경우에 이들은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이 매우 많기 때문에, 불특정 3인칭의 호칭이 다른 나라보다 매우 발달해 있었다. 师傅, 哥们, 大哥등의 호칭을 이름에 붙여 쓰는 형태이다. 그리고 성씨로 상대를 호칭하는 수단도 있는데, ‘老 + 성씨(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쓴다)’, ‘小 + 성씨(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쓴다)’등으로 성씨와 다른 글자를 결합해서 상대를 호칭하는 것이 가능했다. 같은 성씨가 많을지라도 어느 정도 성씨가 상대를 호칭하는 기능이 존재하고, 사석에서 이름을 응용해서 상대를 부르는 것이 상대적으로 한국에 비해서 편하기 때문에 한국보다는 성씨와 이름이 더 기능을 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어떨까?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자. 내가 스포츠 클럽에서 나보다 10살 연상인 사람을 만났다고 하자. 그 사람을 특정해서 부르고자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베트남의 경우에는 이름 끝글자로 부르면 된다. 중국의 경우에는 그 사람의 이름 + 哥们 라고 부르면 된다. 일본의 경우에는 성씨 + さん이라고 부르면 된다. 이외의 문화권에서는 그냥 이름을 부르면 된다. 과연 한국에서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름 + 씨 혹은 님’으로 호칭했다가는 이름을 불렀다는 이유로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난리가 날지도 모른다(원래 ‘님’호칭은 극존칭이지만, 인터넷의 영향으로 요즘은 극존칭의 지위에서 내려온 듯 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호칭이 성씨 + 직급, 직함으로 부르는 방식이다. 이름을 호칭하지도 않고 상대를 특정할 수 있는 수단이 결국 이것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상대가 어느 집단에 속하는지,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 반드시 호칭에서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차별 문제를 낳게 된다. (예시 : https://www.yna.co.kr/view/AKR20170607140600061)
내가 그리고 일본인과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일본에는 상대의 이름 뒤에만 '님'(일본어로 様, 사마라고 한다)이라는 호칭을 붙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친구는 북한의 방송에서 '위대하신 김정은 장군님', '김일성 수령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서 엄청나게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내가 그래서 그 일본인 친구에게 왜 일본에서는 사람 이름 뒤에만 さま 호칭을 붙이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 답변을 듣고 나서 상당히 많은 점을 깨우칠 수 있었다.일본 친구의 답변에 의하면, 직책이나 직업에 '님'을 붙이는 것은 직업 차별에 해당되기 때문에 일본에서 없어졌다고 한다. 과거 메이지 시대만 하더라도 일본에서도 한국과 비슷하게 직책에 'さま'를 붙였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차별이라고 인식되어 없어졌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의 말이 옳았다. 한국에서는 선생, 교수, 의사, 검사, 판사 등등의 직업에는 일반적으로 '님'이라는 호칭을 붙이지만 배달부, 환경미화원, 목수, 미장이 등의 직업에는 '님'이라는 호칭이 붙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은연중에 '님'이라는 호칭으로 한국에서는 직업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상대방을 높여줄 목적으로 사용된 '님'이 결국 차별과 갈등을 낳고 있는 셈이다. 영화관에서 앞사람이 더 잘 보기 위해 일어서게 되면 뒷사람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 결국 모두가 일어나게 되듯이, 처음에 다른 사람을 존경하기 위해 만든 '님'이라는 호칭은 결국 존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게 되어 '님'이라는 호칭이 빠지게 되면 하대로 통하게 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님'이라는 호칭을 사람 이름 뒤에만 사용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말 이런 폐해가 많이 나타난다.
이런 호칭 인플레가 제일 가관인 것이 아마도 병원이 아닌가 싶다. 요즘 병원에서는 의사든 간호원이든 간에 '선생님' 소리 못들으면 살기 힘든 분위기인 모양이다. 이것은 물론 더 이상 의사들에게 당하고 살 수 없다고 결심한 간호원들이 우리도 간호‘원’이 아닌 간호‘사’ 가 되기로 결심하고, 1980년대 초부터 기나긴 투쟁을 벌인 결과 얻어낸 것이다. 이것 때문에 한 십년 전 법률도 모두 바뀌고 해서 이제 우리 나라에는 ‘간호원’이 없어지고 ‘간호사 선생님’ 들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이 간호사들이 정말로 원한 것은 자기 직업의 이름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도 ‘선생님’이란 존칭을 듣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병원에서 닥터든 너스든 모두 ‘선생님’이 되셨다.그런데 나는 얼마 전 공중보건의로 일하다 돌아온 친구 한명으로부터 이상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간호사들에게 '김 선생님' '이 선생님' 이러면 되는 줄 알았는데, 요즘엔 사정이 달라져서 간호원들 가운데에서도 고참한테는 '여사님' 이라고 불러야 된다는 것이다. 그 녀석 얘기론 여사님이라고 안 불러주면 병원 생활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즉 이여사님, 박여사님 이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간호원들이 의사를 상대로 존댓말 전쟁을 벌이는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존칭 인플레도 이 정도면 극에 달한 느낌이다. 이 다음엔 또 어떤 새로운 존칭이 생겨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남보다 더 존경받고자 하는 존대 인플레이션은 경제에서의 인플레이션과 똑같이 닮아 있다. 남들보다 값을 비싸게 받아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서로 경쟁하듯 값을 올리다보면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생겨 모든 사람이 망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존대법과 존칭의 상황이 이와 똑같은 것이다. 서로 겉으로 존경받으려 애쓰지 말고, 반말과 이름부르기를 생활화함으로써 인플레이션 심리를 잡아가두는 실천이 필요한 때다. 우리 사회를 사람들이 서로 친근하게 지내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이 바보같은 풍습을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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