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성향과 환경이야,
통제하기 힘들기에 불가피한 부분도 있겠으나...
사색을 많이 하게 되는 환경이나
내향적 성향의 사람이라면
자주 빠지게 되는 늪임.
결국 사유도 의식수준과 지능이라는
구조적 한계 위에서만 진행되는 것이고,
정신활동이 배열되고 배열하는 패턴, 행간, 동력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조차 일반적으로는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고 봄.
쉽게 말하면 자신이 미쳐가는 줄도 모르고
미쳐가게 된다는 의미임.
사실상 이들이 하는 정신활동은
사유나 철학이라기보단
사고과잉에 따른 정신의 방종, 폭주에 더 가까움.
결국 오히려 망상이라던지
정신증으로 이어질 여지도 큼.
이런 경우 대개 일상의 무대가 현실보다
내적인 시간이 차지하는 비율이 많아져서
자아과잉, 현실왜곡으로 이어지고,
중증에 빠져도 병식(病識)이 없는 경우가 많음.
이런 병리적 정도까진 아니어도
인생에서 큰 늪에 빠져서
본인이 늪에 빠진 줄도 모르고
그 오물을 가지고 놀면서 자신만의 왕국에서 살아갈
그런 여지가 있긴 함.
이런 위험성을 인식하는 것조차 힘든게 일반인듯 싶음.
이해된다. 그럼 의식수준과 지능 자체를 올리는 활동이 선행되고 사유는 뒤따라와야 한다 이건가?
사유가 생산적일수도 있고 비생산적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함. 개인이 배열하는 사유와 의식수준, 지능은 굳이 어떤것이 완벽히 선행되고 전제되어야 한다기 보단, 상호 영향이 있어서 무엇이 선도하든 서로 맞물리며 확장되도록 견인할 수 있다고 생각함.
다만, 바퀴가 헛돌거나 공회전하듯이, 확장도 실체도 힘도 없는 사유가 지속될 수 있다는 거지. 난 사유가 막연한 어떤 언어의 방종적 나열, 형식에 배열이 종속되는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함. 사유는 직관임.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생각을 하는 이 순간에 확신할 수 있는 실재에 대한 직관. 다만 이 실재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차원을 넘어서 비가시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 그 비가시적인 실재, 즉 형이상적 실재와 내 정신이 맞닿고, 그 실재를 정신으로 다루어내면서 내가 할수 있는 범위와 할수 없는 범위를 구분해나가고, 그 실재의 속성과 범위의 윤곽을 재는 것. 막연하고 혼란스러운 비가시저 층위에서 내가 의식의 두 발을 딛고 견고히 서서 버틸수있는 지지대를 찾는 것. 이런게 사유의 기초적 전제
라고 생각함. 이게 된다면, 자아로서 대상화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은 많지 않다고 봄. 즉, 자신이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초월적인 자아의 층위에 의식의 초점이 머무를 수 있다면, 이런 전제 하에 이루어진 사유의 여정은 외계(外界), 내면(의식구조, 지능) 등 모든 부분에서 진일보되는 경험이 될수있다고 생각함
이런 견고한 기초 위에서야 비로소 언어도 논리도 자아가 주체적으로 의식하여 도구로서 사용을 시도해볼 수 있는 의식 차원은 된다는 것이겠지. 근데 인간이 이렇게까지 머리아프고 복잡하게 살아야 할 당위나 이득이 있을까? 난 전혀 없다고 봄. 물론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야 인간에게 동기를 제공할 수 있겠지.
하지만 사실 철학의 끝에도 인간이라는 존재를 궁극적으로 채워 충족시킬 수 있는 건 없다고 봄.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지. 세계가 어떠한 것이라는 진실을 내 영혼으로 움켜줘어도, 그 뿐임. 다만, 인간의 무력함과 부질없음을 더 절감하게 되면 그게 진짜 진리를 찾는 시작점이 될지는 모르지. 뒤에 한 소리는 그냥 알아서 걸러듣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