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惡, evil)을 어떻게 정의한건 간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두순 사건 이나 일본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같은 짓을 저지른 짐승들을 보면서

저 인간은 악하지 않다 라고 내뱉는다면 당신은 잘못되도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이 세상엔 다 같이 잘먹고 잘사는 방법이 있고 다 같이 자멸하는 방법이 있다

본인의 언행을 통하여 사회를 후자 방면으로 끌고 가는 인간들은 악한 것이다.

사회가 생명체고 보통 사람이 그것을 구성하는 세포라면, 악한 인간들은 암세포 같은 존재들이다.
고로 악인들의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면 결국 그 생명체 (=사회)의 목숨은 다한 것이나 다름 없다.

(재밌게도 암세포는 세포 중에서도 매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한다.

악인 비유에 딱 들어 맞는 것이다)


그러면 악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애초에 악이 통하는 이유는 악함 때문이 아니라 강함을 빙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다수 중2병 걸린 찐따들이 위악(僞惡)에 끌리는 이유도 그것이 강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을 말하는 선 (善, good) 으로는 악을 극복해 낼 수 없다.
너무 약하기도 하고 약간의 조롱만으로도 선은 곧 위선이 되어 그 위력을 잃게 된다.


결국엔 악을 정복하기 위해선 또 다른 - 그러나 매우 한정적인 - 악으로 맞서야 한다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 (übermensch)는 그저 나약해 빠진 착한 남자를 뜻하는게 아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집착을 잠시 내려놓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더러워질 준비와 용기가 있는 자를 뜻한다.

현대 의학에선 암세포를 치료할때 방사선 치료를 하는데, 방사능은 당연히 인간 몸에 좋지 않다

일반적인 의미에선 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할땐

방사능이 좋은 목적으로 쓰이게 된다. 때때로는 악이 선한 목적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방사선 치료엔 항상 부작용이 따르듯이, 악을 무찌르기 위해 또 다른 악을 이용하면

내 영혼과 정신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건 맞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의 "심연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나를 들여다본다"는 경구는 되새겨 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다. 

쌍욕과 패드립으로 일관하는 인간들이 난동을 부릴때, "에휴 수준 낮으니까 걍 무시해야지"라고 해버리면

그 집단은 결국 난동꾼들이 장악하게 되버린다. 왜냐면 아무도 맞서서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악인들은 세상을 선-악 축으로 해석하지 않고 강(strong) - 약(weak) 축으로 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도덕적 정신승리는 의미가 없고, 현실적으로 이기는건 악한자가 이긴다.

자발적으로 진흙탕 싸움에 참여하여 악인들을 짓밟아 버리는 안티 히어로가 있다면
한번쯤 지나가면서 감사의 마음을 나눠보자.


그들은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걸 포기해서라도 지키고 싶었던게 있었던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