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독일에서 만난 조선족 여성은 북한을 여행한 뒤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북한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야. 그들은 모두 그들의 지도자를 지지해.” 그리고 잠시 후, 덧붙였다.
“외부에서 간섭하는 게 오히려 건방진 일 아니야?”
예컨대, 한국의 징병제는 유럽인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제도다. 내가 그것을 설명하면,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반응한다.
“그런 제도를 도입하면 당장 거리에서 시위가 벌어질 텐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특히 장애를 가진 사람들까지 강제로 차출해 군 관련 업무를 시키는 ‘공익근무요원 제도’는, 서구 기준으로 보자면 사실상 강제노동에 가깝다. 어떤 경우에는 국제 사회의 제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임병장 김일병 시절인 10년전만 해도 군대란 이런 곳이었다.
1. 사생활은 존재하지 않았고
2. 휴대폰은 사용할 수 없었으며
3. 훈련 중 부상을 당하면 거의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었고
4. 지급되는 월급은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쳤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들 하지만, 자유가 없다는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확신한다. 한국에서는 대규모 병역거부 시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한국인은 억압을 억압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라면 당연히 해야지.’
‘나라가 있으니 네가 있는 거야.’
이런 말들은 억압된 상태에 스스로 순응하면서, 그 억압을 오히려 미덕처럼 여기는 내면화된 복종의 언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나는,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북한 주민들은 언젠가 들고일어날 거야.”
그런데 이 말은 유럽인이 한국 병역제도를 보고 “한국 남자들도 곧 병역 거부 시위를 벌이겠지?”라고 말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왜 북한 주민들은 억압을 받으면서도 반기를 들지 않을까?”
→ “왜 한국 남성들은 병역제도에 저항하지 않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체제나 정권의 폭력성만을 묻는 것이 아니다.
그 폭력성을 어떻게 정당화하고 내면화하느냐의 문제다.
북한 주민들이 김씨 정권을 지지한다고 해서, 그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한 것일까? 한국인들이 병역의무를 수용한다고 해서, 그들이 ‘억압받지 않는 것’일까?
억압은 반드시 총과 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억압은 때로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라는 이상으로, ‘도리’라는 감성으로, 사람의 머릿속에 조용히 뿌리를 내린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자유인’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타인의 억압을 조롱하기 전에 지금 우리가 복종하고 있는 것이 정말 자발적인 것인가? 그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억압을 억압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현대판 독재국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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