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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속 주장은 선악의 기준을 철저히 '개인의 이익'에 둔다
이는 언뜻 세상을 꿰뚫어 본 현실적인 통찰처럼 들릴 수 있으나, 철학적 논리적으로 깊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선악이란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상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개념이다

나 혼자 있을땐 가해자/피해자가 없으니 선악이란 개념이 존재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 
하지만 사람 대 사람 관계 속에선 선,악은 반드시 생겨나고 객관적인 의미를 가진다

나에게 도움이 되면 선이고, 피해를 주면 악이라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논파된다

첫째, 언어와 개념의 붕괴를 초래하는 논리적 모순이다

'나에게 이득이 되면 선'이라는 논리를 극단적으로 적용해 보자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여 내가 부유해지는 행위는 나에게는 '선'이고 피해자에게는 '악'이 된다
동일한 행위가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선과 악이라는 양립 불가능한 성질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이 경우 '선악'이라는 단어는 사회적 합의나 윤리적 잣대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며, 단순한 '개인적 기호'나 '생존 본능'의 다른 이름으로 전락한다

도덕은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것인데, 이를 철저히 1인칭 시점으로만 환원하는 것은 범주 오류다

둘째, 보편적 도덕 직관은 이익 계산을 초월하여 실재한다

우리에게는 나의 유불리를 떠나 직관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악하다고 인지하는 행위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오직 재미만을 위해 무고한 타인이나 약자를 고문하는 행위'를 상상해 보자
이 행위가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를 명백한 '악'으로 규정한다

만약 이미지의 주장대로라면, 이 행위가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므로 악이 아니거나, 혹은 나에게 묘한 쾌감(도움)을 준다면 선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류는 역사와 문화를 막론하고 이를 악으로 규정해 왔다
이는 도덕이 개인의 이익 계산기를 넘어선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기반 위에 있음을 방증한다

셋째, 객관적 도덕은 보편화 가능한 이성의 법칙으로 증명된다.

객관적 선악은 칸트(Kant)의 '정언명령'을 통해 이성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올바르려면, 그 행위의 바탕이 되는 원칙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법칙으로 적용되어도 모순이 없어야 한다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속이거나 이용해도 된다"는 원칙이 만인에게 보편화된다고 가정해 보자
모두가 서로를 속이는 사회에서는 '신뢰'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므로, 궁극적으로는 누구도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할 수 없는 논리적 파국에 이른다


즉, 이기주의는 그 자체로 자가당착에 빠진다

반면, "나에게 당장 손해가 되더라도 진실을 말하고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은 모두가 따를수록 사회 시스템이 견고해지며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타인을 목적 그 자체로 대우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정당화되는 객관적인 '선'이다

결론

인간은 단순한 생물학적 유불리를 넘어, 이성과 공감을 통해 보편적 원칙을 사유할 수 있는 존재다

나에게 물질적, 심리적 도움이 되더라도 타인을 부당하게 착취하는 행위는 이성적 법칙에 위배되므로 '악'이다

반대로 나에게 당장의 손실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보편적 인류애와 정언명령에 부합하는 행위는 '선'이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권력자의 가스라이팅이 아니라, 인간이 동물적 본능에 끌려다니지 않고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주체로 독립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