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칠거경(七車經)16) 제9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때에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큰 비구 대중과 함께 여름 안거[夏坐]를 지내셨다. 존자 만자자(滿慈子)17)도 자신의 고향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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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만원자(滿願子) 또는 만축자(滿祝子)라고도 하는데 부루나존자(富樓那尊者)를 번역하여 부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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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 고향 마을의 모든 비구들도 여름 안거 석 달을 마친 다음 옷을 기워 수선하는 일을 마치고 발우를 가지고 고향 마을을 떠나 왕사성(王舍城)으로 향했다. 자꾸 앞으로 나아가 왕사성에 이르러 그곳에 있던 죽림정사에 머물렀다.


이때 시골의 여러 비구들은 세존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비구들아, 어디서 왔으며 어디서 여름 안거를 지냈는가?”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고향 마을에서 왔으며 고향 마을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습니다.”


“그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 중에서 누가 많은 비구들의 칭찬을 받는가? 

즉 제 자신이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며[少欲知足] 남이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칭송해 말하고, 

제 자신이 한가롭게 머물고 또 남이 한가롭게 머무는 것을 칭송하여 말하며, 

제 자신이 정진(精進)하고 남이 정진하는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직접 바른 생각을 하고 남이 바른 생각을 하는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일심(一心)을 지키고 남이 일심 지키는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지혜롭고 남이 지혜로운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번뇌를 다 끊어 없애 남이 번뇌가 다한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고 남이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는 것을 칭찬해 말하는 비구가 누구인가?”


그 고향 마을의 비구들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존자 만자자는 저 고향 마을에서 모든 비구들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제 자신이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고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아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한가롭게 있고 한가롭게 있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정진하고 정진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생각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일심을 지키고 일심을 지키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지혜롭고 지혜로운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번뇌를 다 끊고 번뇌가 다 끊어진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고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는 이를 칭찬해 말합니다.”


이때 존자 사리자(舍梨子)는 대중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께서는 위에서와 같이 저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에게 물으셨고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은 아주 대단하게 현자 만자자(滿慈子)를 칭찬하였다. 

곧 그는 제 자신이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고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아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한가롭게 있고 한가롭게 있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정진하고 정진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생각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일심을 지키고 일심 지키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지혜롭고 지혜로운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번뇌를 다 끊어 없애고 번뇌를 다 끊어 없앤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고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는구나.’


존자 사리자는 다시 이와 같이 생각했다.

‘나는 언제 저 현자 만자자와 한자리에 앉아 그 이치를 조금이라도 물어볼 수 있을까? 그는 혹 나의 질문을 들어주기나 할까?’


그때 세존께서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에 들어 계시다가 석 달을 지낸 뒤 옷을 기워 수선하고 발우를 들고 그곳을 떠나 사위국으로 향하셨다. 차츰차츰 앞으로 나아가 그곳에 이르러 곧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존자 사리자는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과 같이 왕사성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옷을 단속하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국으로 향하였다. 그리하여 점점 앞으로 나아가 사위국에 이르러 승림급고독원에 함께 머물렀다. 


이때 존자 만자자도 고향 마을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고 석 달을 지낸 뒤 옷을 기워 단속하고 발우를 들고 고향 마을을 떠나 사위국으로 향했다. 그리하여 점점 앞으로 나아가 그곳에 이르러 그 또한 승림급고독원에 머물렀다. 


존자 만자자는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여래 앞에서 니사단(尼師檀)을 깔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때 존자 사리자가 다른 비구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어느 분이 현자 만자자입니까?”


비구들이 존자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예, 그 존자는 여래(如來) 앞에 앉아 있습니다. 얼굴은 하얗고 콧대가 앵무새 부리처럼 높은 사람이 바로 그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만자자의 얼굴을 알아보고 곧 기억했다.

존자 만자자는 그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국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돌아와 옷과 발우를 거두고 손발을 씻고 니사단(尼師檀)을 어깨 위에 걸치고 안다숲[安陀林]의 경행(經行)하는 장소로 갔다. 

존자 사리자도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국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돌아와 옷과 발우를 거두고 손발을 씻고 니사단을 어깨 위에 걸치고 안다숲의 경행하는 장소로 갔다.


그때 존자 만자자는 안다숲에 이르러 한 나무 밑에 니사단을 깔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존자 사리자도 안다숲에 이르러 만자자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나무 밑에 니사단을 깔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존자 사리자는 해질 무렵[晡時]에 연좌에서 일어나, 존자 만자자에게 나아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으로 물러 앉아 곧 존자 만자자에게 물었다.

“현자여, 그대는 사문 구담(瞿曇)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떻습니까? 현자여, 그대는 계행(戒行)을 깨끗하게 하려고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아닙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과 번뇌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道)이다 도가 아니다 하고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가야 할 길을 잘 아는 지견(知見)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道跡)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아까 그대에게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하고 물었을 때에 그대는 곧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대에게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그대는 곧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이다 도가 아니다 하고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그대는 곧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무슨 마음으로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는 것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현자여,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증득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리자가 또 다시 물었다.

“어떻습니까? 현자여,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께서는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는 것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고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께서는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리자가 또 다시 물었다.

“내가 아까 그대에게 ‘현자여,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은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시는 것입니까?’하고 묻자, 현자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은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는 것입니까?’하고 물었을 때, 현자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현자의 대답에 무슨 뜻이 담겨져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알 수 있겠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현자여, 만일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존이신 사문 구담께서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신다면, 그것은 곧 유여(有餘)를 무여(無餘)라고 일컫는 것이며,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존이신 사문 구담께서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신다면 그것은 유여를 무여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현자여, 만일 이 법을 떠나 세존께서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신다면 곧 범부도 마땅히 반열반(般涅槃)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범부가 이 법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현자여, 

다만 계행이 깨끗함으로써 마음의 깨끗함을 얻고 마음이 깨끗함으로써 견해의 깨끗함을 얻으며, 

견해가 깨끗함으로써 의심과 번뇌가 깨끗해짐을 얻고 의심과 번뇌가 깨끗함으로써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이 깨끗해짐을 얻으며,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이 깨끗해짐으로써 도적의 지견이 깨끗해짐을 얻고 도적의 지견이 깨끗해짐으로써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가 깨끗해짐을 얻으며,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가 깨끗해짐으로써 세존이신 사문 구담은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시는 것입니다.


현자여, 

다시 들으십시오. 옛날 구살라왕(拘薩羅王) 바사닉(波斯匿)이 사위국에 있었는데, 바계제(婆鷄帝)18)에 볼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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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또는 사계제(娑鷄帝)ㆍ파기다(婆祇多)라고 부르기도 하며 북구살라국의 도성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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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방법을 써야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하루에 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다시 ‘나는 이제 사위국에서 바계제에 이르는 그 중간에 일곱 수레를 늘어놓아 두리라’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그는 곧 사위국에서 바계제에 이르는 그 중간에 일곱 수레를 늘어놓아 두었습니다. 

그는 일곱 수레를 벌여 둔 뒤에 사위국에서 나와 첫 번째 수레에 이르렀습니다. 첫 번째 수레를 타고 두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첫 번째 수레는 버렸습니다. 

두 번째 수레를 타고 세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두 번째 수레는 버리고, 

세 번째 수레를 타고 네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세 번째 수레는 버렸으며, 

네 번째 수레를 타고 다섯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네 번째 수레는 버리고, 

다섯 번째 수레를 타고 여섯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다섯 번째 수레는 버렸습니다. 

또 여섯 번째 수레를 타고 일곱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여섯 번째 수레는 버리고, 

일곱 번째 수레를 타고는 하루 걸음으로 바계제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바계제에서 볼 일을 다 마치고 대신들에게 둘러싸여 왕의 정전(正殿)에 앉았습니다. 뭇 신하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천왕(天王)께선 하루 동안에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오셨습니까?’


왕이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다.’


‘어떻습니까? 첫 번째 수레를 타고 하루 동안에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오셨습니까?’


‘아니다.’


‘두 번째 수레를 타고, 세 번째 수레를 타고, 나아가 일곱 번째 수레를 타고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오셨습니까?’


‘아니다.’


‘어떻습니까? 현자여, 구살라왕 바사닉은 뭇 신하들이 다시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왕이 뭇 신하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사위국왕이지만 바계제에 볼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무슨 방법을 써야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하루 사이에 갈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제 사위국에서 바계제에 이르는 그 중간에 일곱 대의 수레를 늘어놓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사위국에서 바계제에 이르는 길 중간에 일곱 대의 수레를 늘어놓았다. 일곱 대의 수레를 늘어놓은 다음에 사위국에서 길을 떠나 첫 번째 수레에 이르렀다. 

첫 번째 수레를 타고 두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첫 번째 수레는 버리고, 

두 번째 수레를 타고 세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두 번째 수레는 버리고, 

세 번째 수레를 타고 네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세 번째 수레는 버렸다. 

네 번째 수레를 타고 다섯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네 번째 수레는 버리고, 

다섯 번째 수레를 타고 여섯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다섯 번째 수레는 버렸다. 

여섯 번째 수레를 타고 일곱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여섯 번째 수레는 버리고, 

일곱 번째 수레를 타고는 하루 동안에 바계제까지 왔다.’

현자여, 구살라왕 바사닉이 뭇 신하들의 물음에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와 같이 현자여, 

계행이 깨끗함으로써 마음이 깨끗해짐을 얻고 

마음이 깨끗해짐으로써 견해의 깨끗해짐을 얻으며, 

견해가 깨끗해짐으로써 의심의 번뇌를 없애 깨끗해짐을 얻고 

의심의 번뇌를 없애 깨끗해짐으로써 도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이 깨끗해짐을 얻며, 

도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이 깨끗해짐으로써 도적(道跡)의 지견이 깨끗해짐을 얻고 

도적의 지견이 깨끗해짐으로써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가 깨끗해짐을 얻으며,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가 깨끗해짐으로써 

세존께서는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존자 사리자가 존자 만자자에게 물었다.

“현자여, 현자의 이름은 무엇이며 모든 범행인은 무엇이라고 현자를 일컫습니까?”


존자 만자자가 대답했다.

“현자여, 내 아버지19)의 호는 만(滿)이고 내 어머니의 이름은 자(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범행인들은 나를 일컬어 만자자(滿慈子:만자의 아들)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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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고려대장경 원본에는 부(父)자가 없고 송본(宋本)에만 부(父)자가 있다. 여기 의미로 보아 부(父)자가 들어가는 것이 의미에 맞아서 송본을 따라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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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자 사리자가 찬탄하며 말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현자 만자자는 여래의 제자가 되어 행동[作]과 지변(智辯)과 총명(聰明)이 결정되었고,안온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조어(調御)를 성취하였습니다. 큰 변재(辯才)를 성취하였고 감로(甘露)의 깃대를 얻었으며 감로의 세계에 있으면서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니십니다. 현자에게 물으면

그 매우 깊은 뜻을 다 대답해 줄 수 있기 때문에 현자 만자자는 모든 범행인들에게 큰 이익을 얻게 합니다. 그들은 현자 만자자를 만났으므로 수시로 가서 보고 수시로 예배합니다. 나도 이제 또 큰 이익을 얻었으니 수시로 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모든 범행인은 마땅히 옷을 정수리에 동여매고 현자 만자자를 머리 위에 이고 다니듯 공경하여 모심으로써 큰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이제 나도 큰 이익을 얻었으니 수시로 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존자 만자자가 존자 사리자에게 물었다.

“현자의 이름은 무엇이며, 모든 범행인들은 현자를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현자여, 나의 이름[字]은 우바제사(優波鞮舍)이고 내 어머니의 이름은 사리(舍梨)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범행인들은 나를 일컬어 사리자(舍梨子:사리의 아들)라고 부릅니다.”


존자 만자자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나는 지금 세존의 제자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습니다. 두 번째의 높은 이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고 법의 장수[法將:사리자를 찬탄해 부른 말]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으며 법바퀴를 다시 굴리는 제자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습니다. 내가 만일 존자 사리자를 알았다면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다시 당신의 심도 있는 논리에 대해서이겠습니까?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당신은 여래의 제자가 되어 행동과 지변과 총명은 결정되었고,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조어를 성취하였고 큰 변재(辯才)를 얻었으며, 감로의 깃대를 얻었고 감로의 세계에 있으면서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니시는 분입니다. 

존자께서는 매우 깊고 깊은 질문을 하셨기 때문에 사리자여, 모든 범행인들에게 큰 이익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존자 사리자를 만났으므로 수시로 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이제 나도 큰 이익을 얻었으니, 수시로 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모든 범행인들은 마땅히 옷을 정수리에 감고 존자를 머리 위에 이고 다니듯 공경을 다해 모심으로 말미암아

큰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이제 나도 큰 이익을 얻었으니 수시로 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두 현인은 서로 칭찬해 말하고 다시 서로의 훌륭함을 칭찬해 마치고 나서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각각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




10) 누진경(漏盡經)20) 제10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때에 도읍인 검마슬담(劒磨瑟曇)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알거나 봄으로써 모든 번뇌[漏]가 다하게 되니, 알지 못해서도 안 되고 보지 못해서도 안 된다. 


어떤 것을 알거나 봄으로써 모든 번뇌를 다하게 할 수 있다고 하는가? 

바른 생각[正思惟]과 바르지 않은 생각[不正思惟]이 있다. 만일 바르지 않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欲漏)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有漏:生存에 집착하는 번뇌)와 무명루(無明漏:無智의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만일 바르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긴 것이라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긴 것이라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그런데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바른 법을 듣지 못하고 참지식[眞知識:善知識]을 만나지 못하여,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길들여지지[調御]도 못하며 참다운 법을 알지도 못한다.


바르지 않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바르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고 생각해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고 생각해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은 바른 법을 얻어 듣고 참지식을 만나며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길들여지고 참다운 법을 알게 된다.


바르지 않게 생각하는 자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바르게 생각하는 자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도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참다운 법을 이미 알아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마땅히 생각해야 할 법만 곧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해야 할 법만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누(漏)와 번뇌와 걱정과 슬픔을 끊는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유루(有漏)는 견해[見]를 좇아 끊고 

유루는 보호[護]를 좇아 끊으며 

유루는 떠남[離]을 좇아 끊고 

유루는 수용[用]을 좇아 끊으며 

유루는 참음[忍]을 좇아 끊고 

유루는 없앰[除]을 좇아 끊으며 

유루는 생각[思惟]을 좇아 끊는다.


유루는 견해를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바른 법을 듣지 못하고 

참지식을 만나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가르침을 받지 못하며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하고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곧 이러한 생각을 낸다.

‘나에게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나에게 과거의 세상이 없었는가? 나에게 무슨 원인으로 인해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나에게 어떠한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나에게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나에게 미래의 세상이 없을 것인가? 나에게 무슨 원인으로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나에게 어떠한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또 스스로 의심한다.

‘내 몸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이것은 무엇인가? 이제 이 중생들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장차는 어디로 갈 것인가? 본래 무슨 인연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장차는 무슨 인연으로 존재하게 될 것인가?’

그는 이와 같이 바르지 않게 생각하여 여섯 가지 견해[見]가 생겨나는데,

 이 견해가 생김에 따라 나에 대하여 나[神]라는 것이 있다는 견해를 내고 

이 견해가 생겨 나에 대하여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견해를 내며, 

이 견해가 생겨 나로 말미암아 나라고 인식하는 견해를 내고 

이 견해가 생겨 나로 말미암아 나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견해를 내며, 

이 견해가 생겨 나가 아닌 것을 나라고 인식하는 견해를 내고 

이 견해가 생겨 이것은 바로 나라고 하는 견해를 낸다. 

이 나라는 것은 능히 말하고 능히 알고 능히 행동하며 능히 행동하게 하고 능히 일어나게 하며 가서 태어나는 곳마다 선악의 과보를 받는다. 그것은 반드시 어디로부터 온 곳도 없고 꼭 있는 것도 아니며 꼭 있어야 할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것을 견해의 폐단이라고 하는데, 

이런 견해에 흔들리고 이런 견해의 번뇌[見結]에 결박을 당한다.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이 때문에 곧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받는다.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은 바른 법을 듣고 참지식을 만나며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참다운 법을 알아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사실 그대로 알아 마치면 3결(結)이 모두 끊어지는데, 신견결(身見結)과 계취결(戒取結)과 의결(疑結)이 다 끊어진다. 

이 3결이 이미 다 끊어져서 사라지면 수다원(須陀洹)을 얻어 악법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정각(正覺)에 나아가 마지막에는 7유(有)21)를 받고 천상과 인간에 일곱 번 오가기를 마치면 곧 괴로움의 끝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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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여기에서 유(有)란 생사의 과보를 말한다. 또는 과보를 받을 원인[因]을 말하기도 하는데, 지옥유(地獄有)ㆍ방생유(旁生有)ㆍ아귀유(餓鬼有)ㆍ천유(天有)ㆍ인유(人有)ㆍ업유(業有)ㆍ중유(中有)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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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이는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만일 알거나 보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존재에 집착하는 번뇌는 견해[見]를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한다.


유루는 보호[護]를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가 눈으로 물질을 보고 안근(眼根)을 보호하는 자는 바른 생각으로써 깨끗하지 않은 것이라고 관찰하기 때문이다. 안근을 보호하지 않는 자는 바르지 않은 생각으로써 깨끗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일 보호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보호하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법을 알아 의근(意根)을 보호하는 자는 바른 생각으로써 깨끗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며 의근을 보호하지 않는 자는 바르지 않은 생각으로써 깨끗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만일 보호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보호하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보호를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한다.


유루는 떠남[離]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가 사나운 코끼리를 보면 곧 마땅히 멀리 떠나가야 하며, 사나운 말ㆍ사나운 소ㆍ사나운 개ㆍ독사ㆍ험한 길ㆍ개천ㆍ구덩이ㆍ은밀한 곳ㆍ강ㆍ깊은 샘ㆍ산ㆍ바위ㆍ나쁜 스승ㆍ나쁜 벗ㆍ나쁜 이도(異道)ㆍ나쁜 마을ㆍ나쁜 처소를 보아도 꼭 멀리 떠나야 한다. 만일 범행을 닦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거처하면서 의심이 없는 사람을 의심을 일으키게 하거든, 비구는 마땅히 나쁜 스승ㆍ나쁜 벗ㆍ나쁜 이도ㆍ나쁜 마을ㆍ나쁜 처소를 떠나야 한다. 만일 범행을 닦는 모든 이가 그들과 함께 거처하면서 의심이 없는 사람에게 의심을 일으키게 하거든, 마땅히 다 멀리 떠나야 한다. 만일 여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길 것이며, 여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유루는 떠남을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한다.


유루는 씀[用]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비구가 의복을 입는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며,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겉치레를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모기ㆍ등에ㆍ바람ㆍ비ㆍ추위ㆍ더움 때문이며, 부끄러움 때문이다. 

만일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며,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살찌기를 바라거나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몸을 오랫동안 보전하여 번뇌와 걱정과 슬픔을 없애기 위해서이며, 범행을 실천하기 위해서이며, 묵은 병을 고치고 새로운 병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며, 오래 살고 안온하고 병이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거처할 곳ㆍ방사(房舍)ㆍ평상ㆍ요ㆍ침구를 쓴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며,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겉치레를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피로할 때 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며,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기 위해서이다. 

만일 약을 쓴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며,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살찌고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병들고 괴로운 것을 없애기 위해서이며,목숨을 거두어 잡기 위해서이며, 안온하고 병이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그것들을 쓰지 않으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그것을 쓰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씀을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한다.


유루는 참음[忍]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는 정진하여 악하고 불선함을 끊고 선한 법을 닦기 때문에 항상 생각을 일으킴이 있고, 마음을 통일하여 정근하며, 몸ㆍ가죽ㆍ살ㆍ힘줄ㆍ뼈ㆍ피ㆍ골수가 다 마르도록 정진을 버리지 않고 구하던 바를 다 얻고서야 정진을 버린다. 비구는 또 마땅히 굶주림ㆍ목마름ㆍ추위ㆍ더위ㆍ모기ㆍ등에ㆍ파리ㆍ벼룩ㆍ이 따위를 견디고 참아내야 하고, 바람이나 햇볕의 핍박을 받고 욕설과 매질을 당해도 능히 그것을 참으며, 몸이 온갖 병에 걸려 몹시 고통스럽거나 목숨이 끊어질 듯한 온갖 불쾌한 것들도 다 능히 견디고 참아내야 한다. 만일 그것을 참아내지 못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길 것이고, 그것을 참아내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유루는 참음을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한다.


유루는 없앰[除]을 좇아 끊는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에게 탐욕의 마음이 생겼을 때 그것을 끊어 없애거나 버려 여의지 못하거나, 성냄의 마음과 해치려는 마음이 생겼을 때 끊어 없애거나 버려 여의지 못할 경우, 만일 그것을 없애지 않으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길 것이고, 그것을 없애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유루는 없앰을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한다.


유루는 생각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가 첫 번째 염각지(念覺支)22)를 생각하여, 떠남을 의지하고 욕심 없음을 의지하며 멸해 다함을 의지하면 곧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법[出要法]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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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불도를 수행함에 있어서 늘 잘 생각하여 정(定)ㆍ혜(慧)가 고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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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법각지(擇法覺支)ㆍ

정진각지(精進覺支)ㆍ

희각지(喜覺支)ㆍ

식각지(息覺支)ㆍ

정각지(定覺支)도 마찬가지이며, 

또 일곱째 사각지(舍覺支)를 생각하여, 

떠남을 의지하고 욕심 없음을 의지하며 멸해 다함을 의지하면, 곧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경지로 나아간다. 만일 생각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생각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사유를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비구로 하여금 유루에 대하여 견해를 좇아 끊을 것은 곧 견해로써 끊게 하고 

유루에 대하여 보호를 좇아 끊을 것은 곧 보호로써 끊게 하며,

유루에 대하여 떠남을 좇아 끊을 것은 곧 떠남으로써 끊게 하고 

유루에 대하여 씀을 좇아 끊을 것은 씀으로써 끊게 하며 

유루에 대하여 참음을 좇아 끊을 것은 곧 참음으로써 끊게 하고 

유루에 대하여 없앰을 좇아 끊을 것은 곧 없앰으로써 끊게 하며 

유루에 대하여 사유를 좇아 끊을 것은 곧 사유로써 끊게 한다면, 

이것을 비구가 모든 누(漏)가 다 끊어지고 모든 맺힘[結]이 이미 풀려 능히 바른 지혜로써 괴로움의 끝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