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도경(度經) 제3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3도처(度處)가 있으니, 성(姓)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며, 종지[宗]도 다르고 교설[說]도 다르다.
이른바 지혜 있는 자가 잘 받아 꼭 지니고 남을 위해서 설법하지만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어떤 사문 범지는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전생[宿命]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는 견해를 내어 이와 같이 말한다.
또 어떤 사문 범지는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존우(尊祐: 造物主)의 지음을 원인으로 한다’는 견해를 내어 이와 같이 말한다.
또 어떤 사문 범지는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는 견해를 내어 이와 같이 말한다.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전생[宿命]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곧 그에게 가서 ‘여러분, 진실로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라고 물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다 살생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여러분은 다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만일 일체는 다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고 진정 그렇게 본다면 내인(內因) 안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 전혀 욕망도 없고 노력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만일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 진실 되게 알지 못하면 곧 바른 생각을 잊고 바른 지혜도 없을 것이니, 그러면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만일 사문의 법대로 그와 같이 말한다면 곧 이치로써 그 사문 범지들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존우(尊祐:조물주)의 지음을 원인으로 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곧 그에게 가서 ‘여러분, 진실로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존우의 지음을 원인으로 한다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하고 물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모두 살생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존우의 지음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여러분은 다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존우의 지음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만일 일체는 다 존우의 지음을 원인으로 한다고 진정 그렇게 본다면 내인(內因) 안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 전혀 욕망도 없고 노력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만일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 진실하게 알지 못하면 곧 바른 생각을 잊고, 바른 지혜도 없을 것이니, 그러면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만일 사문의 법대로 그와 같이 말한다면 곧 이치로써 그 사문 범지들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곧 그에게 가서 ‘여러분, 진실로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하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모두 살생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여러분은 다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만일 일체는 다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진정 그렇게 본다면 내인(內因) 안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 전혀 욕망도 없고 노력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만일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 진실하게 알지 못하면 곧 바른 생각을 잊고 바른 지혜도 없을 것이니, 그러면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다. 만일 사문의 법대로 그렇게 말한다면 곧 이치로써 그 사문 범지들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법을 너를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沙門) 범지(梵志)나 혹은 하늘[天]ㆍ악마[魔]ㆍ범(梵), 그리고 그 밖의 세간은 아무도 항복받지 못하고, 아무도 더럽히지 못하며, 아무도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법을 너를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ㆍ악마ㆍ범, 그리고 그 밖의 세간은 아무도 능히 항복받거나 능히 더럽히거나 능히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른바 6처법(處法)이 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것으로서 너를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ㆍ악마ㆍ범과 그 밖의 세간은 아무도 능히 항복받거나 더럽히거나 능히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또 6계법(界法)이 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것으로서 너를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ㆍ악마ㆍ범과 그 밖의 세간은 아무도 능히 항복받거나 능히 더럽히거나 능히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것이 6처법으로서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인가?
이른바 안처(眼處)ㆍ이처(耳處)ㆍ비처(鼻處)ㆍ설처(舌處)ㆍ신처(身處)ㆍ의처(意處)가 그것이다. 이것을 6처법으로서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6계법(界法)으로서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인가?
이른바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가 그것이다. 이것을 6계법으로서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6계(界)가 합함으로써 곧 어머니의 태에 나고,
6계로 인하여 곧 6처(處)가 있으며,
6처로 인하여 곧 갱락(更樂:觸)이 있고, 갱락으로 인하여 문득 감각[覺]이 있다.
비구들아, 만일 감각이 있으면
문득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習]을 알며,
괴로움의 소멸[滅]을 알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어떤 것이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태어남의 괴로움ㆍ늙음의 괴로움ㆍ병듦의 괴로움ㆍ죽음의 괴로움ㆍ원수를 만나는 괴로움ㆍ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ㆍ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며, 생략하여 5음(陰)이 왕성해서 생기는 괴로움이다.
이것을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발생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이 애(愛)의 감수작용과 미래 세계의 존재에 대한 낙욕(樂欲)이 함께 어우러져 여기저기에 태어나기를 구한다.
이것을 괴로움의 발생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이 애(愛)의 감수작용과 미래 세계의 존재에 대한 낙욕이 함께 어우러져 여기저기에 태어나기를 구하는 것을 남김없이 끊어 버리고 토하여 다하고 욕심이 없으며 멸하여 그치고 다 없어지기를 구한다.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8정도[支聖道]로서, 바른 견해[正見]에서부터 바른 선정[正定]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여덟 가지이다.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고 한다.
비구는 마땅히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아야 하고,
마땅히 괴로움의 발생을 끊어야 하며,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여야 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아야 한다.
만일 비구가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을 끊으며,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으면,
이것이 비구가 일체의 번뇌[漏]가 다하고 모든 결(結:번뇌의 일종)이 이미 풀려, 능히
바른 지혜로써 괴로움의 끝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4) 라운경(羅云經) 제4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을 유행하실 때에 죽림가란다원(竹林迦蘭哆園)에 계셨다.
그때 존자 라운(羅云)도 왕사성 온천림(溫泉林)에서 노닐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에 들어가 걸식하시고, 걸식을 마치신 다음 라운이 머물고 있는 온천림으로 가셨다.
존자 라운은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곧 마중나가 부처님의 옷과 발우를 받고 방석을 깔고 물을 길어다 발을 씻어드렸다. 부처님께서 발을 씻은 뒤 라운의 자리에 앉으셨다.
세존께서는 곧 물그릇을 잡아 물을 조금 쏟고 나서 물으셨다.
“라운아, 너는 지금 내가 이 물그릇을 잡아 물을 조금 남기고 쏟는 것을 보았느냐?”
라운이 대답하였다.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저들의 도가 보잘것없다고 말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른바 저들은 알고 나서도 거짓말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으며, 안으로나 겉으로 부끄러워함이 없기 때문이다. 라운아, 저들은 또한 악이라고는 짓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라운아, 마땅히 이것을 배워 실없이 웃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
세존께서 다시 조금 남은 물그릇을 잡아 모두 쏟아 버린 뒤에 물으셨다.
“라운아, 너는 또 내가 조금 남은 물마저 모두 쏟아 버리는 것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저들의 도가 다 버려졌다고 말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이른바 알고 나서도 거짓말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으며, 안으로나 겉으로 부끄러워함이 없기 때문이다. 라운아, 저들은 또한 악이라고는 짓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라운아, 마땅히 이것을 배워 실없이 웃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
세존께서는 다시 그 빈 물그릇을 잡아 땅에 엎어 놓은 뒤에 물으셨다.
“라운아, 너는 또 내가 빈 물그릇을 땅에 엎어 놓는 것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저들의 도가 엎어졌다고 말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이른바 알고 나서도 거짓말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으며, 안으로나 겉으로 부끄러워함이 없기 때문이다. 라운아, 저들은 또한 악이라고는 짓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라운아, 마땅히 이것을 배워 실없이 웃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
세존께서는 다시 그 엎어진 물그릇을 잡아 위로 향하게 해 놓은 뒤에 물으셨다.
“라운아, 너는 다시 내가 엎어진 물그릇을 잡아 위로 향하게 한 것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저들의 도가 위로 향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이른바 알고 나서도 거짓말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으며, 안으로나 겉으로 부끄러워함이 없기 때문이다. 라운아, 저들은 또한 악을 짓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라운아, 마땅히 이것을 배워 실없이 웃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
라운아, 마치 왕이 가진 큰 코끼리가 싸움터에 들어갈 때에 앞다리ㆍ뒷다리ㆍ꼬리ㆍ허리뼈ㆍ등뼈ㆍ옆구리ㆍ목ㆍ이마ㆍ귀ㆍ어금니 등 일체를 다 사용하면서도 오직 코만은 보호하는 것과 같다. 코끼리 조련사[象師]는 그것을 보고 곧 ‘이 왕의 큰 코끼리는 아직도 일부러 목숨을 아끼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왕의 큰 코끼리는 싸움터에 들어갈 때 앞다리ㆍ뒷다리ㆍ꼬리ㆍ허리뼈ㆍ등뼈ㆍ옆구리ㆍ목ㆍ이마ㆍ귀ㆍ어금니 등 일체를 다 사용하면서도 오직 코만은 보호하기 때문이다.
라운아, 만일 왕의 큰 코끼리가 싸움터에 들어갈 때 앞다리ㆍ뒷다리ㆍ꼬리ㆍ허리뼈ㆍ등뼈ㆍ옆구리ㆍ목ㆍ이마ㆍ귀ㆍ어금니ㆍ코 등 일체를 다 사용하면, 코끼리 조련사는 그것을 본 뒤에 곧 ‘이 왕의 큰 코끼리는 더 이상 목숨을 아끼지 않는구나’라고 이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왕의 큰 코끼리는 싸움터에 들어갈 때 앞다리ㆍ뒷다리ㆍ꼬리ㆍ허리뼈ㆍ등뼈ㆍ옆구리ㆍ목ㆍ이마ㆍ귀ㆍ어금니ㆍ코 등 일체를 다 사용하기 때문이다.
라운아, 만일 왕의 큰 코끼리가 싸움터에 들어갈 때 앞다리ㆍ뒷다리ㆍ꼬리ㆍ허리뼈ㆍ등뼈ㆍ옆구리ㆍ목ㆍ이마ㆍ귀ㆍ어금니ㆍ코 등 일체를 다 사용하면 라운아, 나는 이 왕의 큰 코끼리가 싸움터에 들어갈 때에 악을 짓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이와 같아서 라운아, 이른바 이미 알고 나서도 거짓말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으며, 안으로나 겉으로 부끄러워함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라운아, 나는 저들이 또한 악을 짓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라운아, 마땅히 이것을 배워 실없이 웃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
그리고 세존께서는 곧 게송을 설하셨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그것을 바로 법 하나를 범한다고 한다.
뒷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아
악이라고는 짓지 않는 것이 없네.
차라리 불같이 뜨거운
쇠구슬을 삼킬지언정
계율을 범하면서
세상의 신심 있는 보시 받지 않으리.
만일 괴로움을 두려워하여
애념(愛念)하지 않으려면
은밀한 곳에서든 드러난 곳에서든
나쁜 업 짓지 말아야 하네.
만일 선(善)하지 않은 업(業)을
과거에 지었거나 현재에 지었다면
끝내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며
또한 피할 곳도 없으리.
부처님께서 게송을 마치시고, 다시 라운에게 물으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사람이 무엇 때문에 거울을 쓰는가?”
존자 라운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얼굴이 깨끗한지 깨끗하지 않은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 라운아, 만일 네가 장차 신업(身業)을 짓고자 하거든
곧 그 몸으로 지은 업을 관찰해 보되,
‘내가 장차 몸으로 업을 짓는다면 이 몸으로 짓는 업이 깨끗한가, 깨끗하지 않은가?
자기도 위하고 남도 위한 일인가?’ 하고 살펴보도록 하라.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내가 장차 몸으로 업을 짓는다면 저 몸으로 지은 업은 깨끗할 것이다.
그러나 혹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그 일이 선(善)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할 것이다’라고 생각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그 장차 지으려고 하는 몸의 업을 버려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내가 장차 몸으로 업을 짓는다면 저 몸으로 짓는 업은 깨끗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혹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그 일이 선하여 즐거움의 결과를 주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게 할 것이다’라고 생각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장차 지으려고 하는 몸의 업을 수용해야 한다.
라운아, 네가 만일 현재의 몸으로 업을 지으려거든 곧 이 몸으로 짓는 업을 관찰해 보되, ‘만일 내가 현재에 몸으로 업을 지으면, 이 몸으로 짓는 업이 깨끗한 것인가, 깨끗하지 않은 것인가? 자기도 위하고 남도 위하는 일인가?’ 하고 살펴보도록 하라.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내가 현재 이 몸으로 업을 지으면 이 몸으로 짓는 그 업이 깨끗할 것이다. 그러나 혹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그 일이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할 것이다’라고 느껴지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이 현재의 몸으로 짓는 업을 버려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내가 현재의 몸으로 업을 지으면 이 몸으로 짓는 업은 깨끗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혹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그것이 선하여 즐거움의 결과를 주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게 할 것이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이 현재의 몸으로 짓는 업을 수용해야 한다.
라운아, 네가 만일
이미 몸으로 짓는 업을 지었다면
곧 그 몸으로 지은 업을 관찰해 보되,
‘나는 내가 이미 몸으로 업을 지었는데 그 몸으로 지은 업은 이미 과거에 다 멸해졌고 변하여 바뀌었다. 그것이 깨끗한 것이었는가, 깨끗하지 않은 것이었는가?
혹은 자기를 위하고 남을 위함이 되었는가?’라고 살펴보아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나는 이미 몸으로 업을 지었다. 그 몸으로 지은 업은 이미 과거에 다 멸했고 변해 바뀌었으나, 그 몸으로 지은 업은 깨끗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였다’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범행을 닦는 훌륭한 스승[善知識]에게 나아가, 이미 그가 몸으로 지었던 업을 지극한 마음으로 털어놓고 마땅히 그 잘못을 뉘우쳐 말하라. 삼가 덮어두지 말고 다시 잘 바로잡고 단속하라.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나는 이미 몸으로 업을 지었다. 그 몸으로 지은 업은 이미 과거에 다 멸하였고 변해 바뀌었다. 그 몸으로 지었던 업은 깨끗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여 즐거움의 결과를 주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게 한 것이었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밤낮으로 기뻐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입으로 짓는 업[口業]에 대한 것도 이와 같다.
라운아, 과거의 행으로 인하여 뜻으로 짓는 업[意業]을 지었거든 곧 그 뜻으로 지은 업에 대하여 관찰해 보되, ‘나는 과거의 행으로 인하여 이미 뜻으로 업을 지었는데 그 뜻으로 지은 업은
깨끗한 것인가. 깨끗하지 못한 것인가?
자기도 위하고 남도 위하는 일이었는가?’ 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과거의 행으로 인하여 이미 뜻으로 업을 지었다. 그 뜻으로 지은 업은 이미 과거에 다 멸하였고 변해 바뀌었으나, 그 뜻으로 지은 업은 깨끗했다.
그러나 혹은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지 않아서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였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그 과거에 뜻으로 지은 업을 버려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과거의 행으로 인하여 이미 뜻으로 업을 지었다. 그것은 이미 과거에 다 멸하였고 변해 바뀌었으나, 그 뜻으로 지은 업은 깨끗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여 즐거움의 결과를 주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게 하였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그 과거에 뜻으로 지은 업을 수용해야 한다.
라운아, 미래의 행으로 인하여 마땅히 뜻으로 업을 지으려고 하거든 곧 그 뜻으로 지은 업에 대하여 관찰해 보되 ‘미래의 행으로 인하여 뜻으로 업을 지으려거든 그 뜻으로 지을 업은 깨끗한 것인가, 깨끗하지 못한 것인가?
자기도 위하고 남도 위함이 되겠는가?’ 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미래의 행으로 인하여 장차 뜻으로 업을 짓는다면 그 뜻으로 지을 업은 깨끗한 것이다.
그러나 혹은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할 것이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그 미래에 뜻으로 지을 업을 버려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미래의 행으로 인하여 장차 뜻으로 업을 짓는다면 그 뜻으로 지을 업은 깨끗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혹은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여 즐거움의 결과를 주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게 할 것이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그 미래에 뜻으로 짓고자 하는 업을 수용해야 한다.
라운아, 현재의 행으로 인하여 뜻으로 업을 짓거든 곧 이 뜻으로 짓는 업을 관찰해 보되, ‘현재의 행으로 현재에 뜻으로 업을 지으면 이 뜻으로 짓는 업은 깨끗한가, 깨끗하지 못한가?
자기를 위하고 남도 위함이 되는가?’ 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현재의 행으로 인하여 현재에 뜻으로 업을 지으면 이 뜻으로 짓는 업은 깨끗할 것이다.
그러나 혹은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이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이 현재에 뜻으로 짓는 업을 버려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현재의 행으로 인하여 현재에 뜻으로 업을 지으면, 뜻으로 지은 업은 깨끗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혹은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여 즐거움의 결과를 주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이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현재에 뜻으로 짓는 업을 수용해야 한다.
라운아, 과거에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깨끗이 하고 또 깨끗이 한 사문 범지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깨끗이 하고 또 깨끗이 하였다.
라운아, 미래에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깨끗이 하고 또 깨끗이 할 사문 범지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깨끗이 하고 또 깨끗이 해야 할 것이다.
라운아, 현재에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깨끗이 하고 또 깨끗이 하는 사문 범지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깨끗이 하고 또 깨끗이 한다.
라운아, 너는 마땅히 이러한 것을 배워야 하며 나도 곧 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현재에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깨끗이 하고 또 깨끗이 한다.”
그때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설하셨다.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에 대해
라운(羅云)아, 너는
선한가, 선하지 않는가를
항상 꼭 관찰하여라.
이미 알면서도 하는 거짓말
라운아, 그런 말 하지 말라.
원래 남을 좇아 살거니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으리.
사문의 법을 뒤엎고
허황되어 진실이 없는 것
이른바 거짓을 말해
그 입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말하지 않는 것은
바르게 깨친 이의 아들이며
이것은 사문의 법이라
라운아, 마땅히 배워야 한다.
가는 곳마다 풍성하고 즐겁고
편하고 조용하여 두려움 없네.
라운아, 저런 경지에 이르려거든
남을 해치는 일 하지 말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라운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가는 곳마다 풍성하고 즐겁고 편하고 조용하여 두려움 없네. 나무 라운 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