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사경(思經) 제5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일부러 짓는 업이 있으면, 나는 반드시 그가 과보를 받을 텐데 현재 세계에서 받거나 후세에서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일부러 지은 업이 아니면, 나는 그가 반드시 그 과보를 받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 중에는 몸으로 고의로 짓는 세 가지 업(業)이 있으니,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한다. 


입으로 짓는 업이 네 가지가 있고, 

뜻으로 짓는 업이 세 가지가 있다. 그것들은 다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한다.


어떤 것이 몸으로 일부러 짓는 세 가지 업으로서,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인가? 

첫 번째는 산목숨을 죽이는 것[殺生]이니, 지극히 악해 피를 마시고 그것을 해치고자 하며, 중생에서부터 나아가 곤충에 이르기까지도 자애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남이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不與取]이니, 남의 재물에 집착하여 도둑질할 마음으로 그것을 취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삿된 음행[邪淫]이니, 저 아버지가 보호하는 대상이 있고, 혹은 어머니가 보호하는 대상이 있으며, 혹은 부모가 보호하는 대상이 있다. 혹은 자매가 보호하는 대상이 있고, 혹은 형제가 보호하는 대상이 있으며, 혹은 아내의 부모가 보호하는 대상이 있고, 혹은 친족이 보호하는 대상이 있으며, 혹은 같은 성[同姓]이 보호하는 대상이 있고, 혹은 남의 아내라서 채찍의 벌을 받을까 두려워함이 있으며, 또 남의 정혼녀가 있으니, 직접 이러한 여자를 범하는 것이다. 

이것을 몸이 고의로 짓는 세 가지 업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입이 고의로 짓는 네 가지 업으로서,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인가? 

첫 번째는 거짓말[妄言]을 하는 것이다. 그가 대중 가운데 있거나 권속들 가운데 있거나 혹은 왕가(王家)에 있을 때, 만일 그를 불러 ‘네가 아는 것을 정직하게 말하라’고 하면, 그는 모르면서 안다 하고 알면서 모른다 하며,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 하고 본 것을

보지 않았다 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혹은 재물을 위해서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간질하는 말[兩舌]이니, 남을 갈라서게 하려고 하여 여기서 들은 말을 저기에 가서 말하여 이쪽을 부수고자 하고, 저기에서 들은 말을 여기에 와서 말해 저쪽을 부수고자 한다. 단합되어 있는 것을 이간시키고 이간된 사이를 더욱더 이간질하여 파당을 만들고 파당을 즐기며 파당을 찬양해 말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추한 말[麤言]이니, 그가 만일 말을 하면, 말씨가 거칠고 사나우며, 나쁜 소리는 귀에 거슬려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는 말만 하고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말만 하여 남을 괴롭게 하고, 안정을 얻지 못하게 하는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꾸며대는 말[綺語]이니, 그는 시기에 적절하지 않은 말을 하고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며,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법이 아닌 것을 말하며, 그쳐 쉬지 못하게 하는 말만 한다. 또 그쳐 쉬지 않는 것을 찬양하고, 때를 어기고 잘 가르치지 않으며, 또한 좋게 꾸짖지도 않는다. 

이것을 일러 입이 고의로 짓는 네 가지 업이라고 하는데,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뜻[意]이 고의로 짓는 세 가지 업으로서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인가? 

첫 번째는 탐욕[貪伺]이니, 남의 재물이나 모든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엿보고 항상 살피면서 구하고 희망하여 나의 소득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워하고 성내는 것[嫉恚]이니, 마음속에 미움을 품어 생각하기를 ‘저 중생은 꼭 죽여야 하고 꼭 속박해야 하며, 꼭 재물을 거두어야 하고 반드시 파면시켜야 하며, 꼭 배척해 쫓아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삿된 견해[邪見]이니 소견(所見)이 거꾸로 되어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즉 ‘보시도 없고 재(齋)도 없으며, 주설(呪說)도 없고 선업도 악업도 없으며, 선업과 악업의 갚음도 없고, 이 세상[此世]도 저 세상[彼世]도 없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 세상에서는 진인(眞人)이 사는 좋은 곳에 가거나, 이 세상과 저 세상에 잘 가고 잘 향하거나,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거나,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자재하게 노니는 일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뜻이 고의로 짓는 세 가지 업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이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多聞聖弟子]가 몸으로 짓는 선하지 않은 업을 버리고 몸으로 짓는 선한 업을 닦으며, 입과 뜻으로 짓는 선하지 않은 업을 버리고 입과 뜻으로 짓는 선한 업을 닦는다. 


저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이와 같이 정진(精進)의 계덕(戒德)을 갖추어 몸이 짓는 깨끗한 업을 성취하고, 입과 뜻이 짓는 깨끗한 업을 성취하여 성냄을 여의고 다툼을 여의며 잠을 없앤다. 

교만한 마음도 없애고 의심을 끊으며, 거만함을 버리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써 어리석음도 없앤다. 

저들의 마음은 자애로움을 구족하여 1방(方)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維)ㆍ상ㆍ하 어느 곳이나 모두 두루하게 된다. 그 마음은 자애로움[慈]7)을 구족하여 맺힘[結]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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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팔리어 원래의 뜻은 우정(friendshi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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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저들은 ‘나는 본래 마음이 좁고 잘 닦지도 못했으나, 지금 나의 이 마음은 한량없고 잘 닦는다’고 생각한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그 마음으로 이처럼 한량없이 잘 닦는다. 만일 본래부터 악한 스승으로 인하여 방일한 행동을 하고 선하지 않은 업을 지었으면, 그는 능히 함께 갈 수가 없고 능히 더러움을 씻을 수가 없으며, 또 서로 따를 수도 없다. 

만일 어린 동남(童男)ㆍ동녀(童女)가 세상에 나자마자 능히 자심해탈(慈心解脫)을 행한다면, 그래도 그가 뒷날 그 몸과 입과 뜻으로 다시 선하지 않은 업을 짓겠느냐?”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스스로 악한 업을 짓지 않았는데 악한 업이 무엇을 말미암아 생기겠습니까?”


“그러므로 남자나 여자는 속가에 있거나 집을 떠나거나, 항상 자심해탈(慈心解脫)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만일 저 남자나 여자가 속가에 있거나 집을 떠났거나 간에, 자심해탈(慈心解脫)을 닦는 자가 있으면, 그는 이 몸을 가지고 저 세상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다만 마음을 따라 이곳을 떠나는 것이다. 

비구는 마땅히 ‘나는 본래 방일하여 선하지 않은 업을 지었다. 이 일체는 금생[今]에서 그 과보를 받는 것이며, 죽은 뒤 다음 세상에서는 받지 않으리라’ 하고 생각하라. 

만일 이와 같이 자심해탈을 수행하여 한량없이 잘 닦는 자가 있으면, 그는 반드시 아나함(阿那含)을 증득하거나, 혹은 다시 그 이상의 경지를 증득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슬픈 마음[悲心]과 기쁜 마음[喜心]과 평정한 마음[捨心]을 함께 갖추면

맺힘[結]도 없고 원한[怨]도 없으며, 성냄[恚]도 없고 다툼[諍]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상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나는 본래 마음이 좁고 잘 닦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마음을 한량없이 잘 닦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그 마음을 이와 같이 한량없이 잘 닦는다.

만일 본래부터 악한 스승으로 인하여 방일한 행동을 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지었다면, 그는 함께 갈 수도 없고 더러움을 씻을 수도 없으며, 다시 서로 따를 수도 없을 것이다. 

만일 어린 동남과 동녀가 세상에 나자마자 능히 사심해탈(捨心解脫)을 수행한다면, 그래도 그가 뒷날 그 몸과 입과 뜻으로 다시 선하지 않은 업을 짓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스스로 악한 업을 짓지 않았는데, 악한 업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겠습니까?”


“그러므로 남자나 여자는 집에 있거나 집을 떠났거나 간에 항상 사심해탈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만일 저 남자나 여자가 속가에 있거나 집을 떠났거나 간에 사심해탈을 닦는 자가 있으면, 그는 이 몸을 가지고 저 세상에 가는 것이 아니고, 다만 마음만 따라 이곳을 떠나는 것이다. 비구는 마땅히 ‘나는 원래 방일하여 선하지 않은 업을 지었다. 이 일체는 금생에서 그 과보를 받는 것이며, 이 몸이 죽은 뒤 다음 세상에서는 과보를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라. 

만일 이와 같이 사심해탈을 수행하여 한량없이 잘 닦는 자가 있으면, 그는 반드시 아나함을 증득하거나 혹은 다시 그 이상의 경지를 증득하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6) 가람경(伽藍經) 제6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람원(伽藍園)을 유행하실 때에 큰 비구 대중과 함께 기사자(羇舍子)에 이르러 그 마을의 북쪽에 있는 시섭화림(尸攝惒林)에 계셨다.


그때 기사자 가람에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사문 구담(瞿曇)은 석가 종족의 아들로서 석가 종족을 버리고 출가하여 학도(學道)가 되어 가람원에서 큰 비구 대중들과 함께 이 기사자에 와서 이 마을 북쪽에 있는 시섭화림에 계신다. 

그 사문 구담에게는 큰 명칭이 있어 그 명칭이 시방(十方)에 널리 퍼졌다. 

사문 구담은 여래(如來)ㆍ무소착(無所着)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중우(佛衆祐)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 세상의 하늘[天]ㆍ악마[魔]ㆍ범(梵)ㆍ사문(沙門) 범지(梵志) 등 인간에서 천상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알고[自知] 스스로 깨닫고[自覺] 스스로 증득[自作證]하여 성취하신 자유자재하신 분이시다. 

그가 만일 설법하면 그것은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며 마지막도 또한 훌륭하신 데다 이치마저 분명하고 문채도 있으며, 청정을 구족하고 범행을 나타내신다. 

만일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을 뵙고 그를 존경하고 예배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긴다면 좋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도 마땅히 다 같이 가서 사문 구담을 뵙고 예로써 섬기고 공양하자.”


기사자의 가람에 있던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각각 그 무리들과 권속들을 데리고 기사자에서 나가 북쪽으로 가서 시섭화림에 이르렀다. 그리고 세존을 뵙고 예로써 섬기고 공양하고자 하여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 가람 사람들은 어떤 이들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한 뒤에 한쪽에 물러가 앉고, 어떤 이들은 부처님의 안부를 물은 뒤에 한쪽에 물러가 앉으며, 어떤 이들은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한 뒤에 한쪽에 물러가 앉고, 혹은 멀리서 부처님을 바라본 뒤에 아무 말 없이 앉기도 하였다. 그렇게 가람 사람들이 저마다 앉고 나서 조용해지자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셔서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셨다.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그들을 위해 설법하셔서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신 뒤에 잠자코 계셨다.

그때 가람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설법하셔서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시자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의 옷을 벗어 메고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해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어떤 사문 범지는 가람에 와서 다만 스스로 자기가 아는 것과 본 것만을 자랑하고 남이 아는 것과 본 것에 대해서는 헐뜯었습니다. 

구담이시여, 또 어떤 사문 범지는 가람에 와서 또한 제 자신이 아는 것과 본 것만을 자랑하고 남이 아는 것과 본 것에 대해서는 헐뜯었습니다. 구담이시여, 저희들은 그 말을 듣고 문득 ‘이 사문 범지는 어떤 것을 진실이라 하고, 어떤 것을 거짓이라고 하는가?’ 하는 의혹이 생겼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람 사람들아, 너희들은 의혹을 내지 말라. 왜냐하면 의혹이 생김으로 말미암아 곧 우물쭈물 망설임이 생기기 때문이다. 

가람 사람들아, 너희들은 스스로 깨끗한 지혜가 없으면서 후세(後世)가 있다고도 하고 후세가 없다고도 한다. 

가람 사람들아, 너희들은 또한 깨끗한 지혜가 없으면서 한 일이 죄가 된다고도 하고 한 일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도 한다. 


가람 사람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업(業)은 본래부터 있었던 세 가지 인습(因習)이란 것이 있다. 어떤 것을 세 가지라고 하는가? 

가람 사람들아, 이른바 탐욕이 곧 모든 업의 본래부터 있었던 인습이다. 

가람 사람들아, 성냄[恚]과 

어리석음[癡]도 곧 모든 업의 본래부터 있었던 인습이다. 


가람 사람들아, 탐하는 사람은 탐욕에 덮이게 되어 마음으로 싫어하거나 만족할 줄 모른다. 그래서 생물을 죽이거나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혹은 삿된 음행[邪淫]을 행하거나 제 자신이 알고 있으면서 거짓말을 하기도 하며, 혹은 술을 마시기도 한다. 


가람 사람들아, 성내는 사람은 성냄에 덮이게 되어 마음으로 싫어하거나 만족할 줄 모른다. 그래서 생물을 죽이거나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혹은 삿된 음행을 행하거나 제 자신은 알고 있으면서 거짓말을 하기도 하며, 혹은 술을 마시기도 한다. 


가람 사람들아,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음에 덮이게 되어 마음으로 싫어하거나 만족할 줄 모른다. 그래서 생물을 죽이거나 주지 않는 것을 취하기도 하며, 혹은 삿된 음행을 행하거나 제 자신은 알고 있으면서 거짓말을 하기도 하며 혹은 술을 마시기도 한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어 칼과 몽둥이를 버리고,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고 남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으며, 또한 자비스런 마음이 있어 일체 중생은 물론 나아가 곤충까지도 이익되게 한다. 이와 같이 그는 살생에 대해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을 여의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을 끊어, 주는 것만 곧 취하고 주는 것만 즐겨 취한다.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기뻐하여 아낌이 없으며 그러면서도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그는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그런 마음을 깨끗이 씻어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범행이 아닌 것을 여의고, 범행이 아닌 것을 끊어 범행(梵行)을 부지런히 닦고 묘행(妙行)에 열심히 힘쓰며,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음욕을 여의고 음행을 끊는다. 이와 같이 그는 범행이 아닌 그런 마음을 깨끗이 씻어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거짓말을 여의고 거짓말을 끊어 진실하게 말하고 진실한 말을 즐기며 진실한 말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아 일체 중생들에게 믿음을 주고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그는 거짓말을 하는 그런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간하는 말[兩舌]을 여의고 이간하는 말을 끊어 이간하는 말을 하지 않아 남의 화합을 깨뜨리지 않는다. 이쪽에서 들은 것을 저쪽에 말해 이쪽을 파괴하려 하지 않으며, 저쪽에서 들은 것을 이쪽에 말해 저쪽을 파괴하려 하지 않는다. 갈라진 사람들을 화합시키고 화합하면 기뻐하며, 당파를 만들지 않고 당파를 즐기지 않으며 당파를 찬양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그는 이간하는 말을 하는 그런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추한 말을 여의고 추한 말을 끊는다. 만일 어떤 이의 말에 대하여 그 말씨가 추악하여 그 말소리가 귀에 거슬리면, 대중들은 기뻐하지 않고 대중들은 좋아하지 않아 남으로 하여금 괴롭게 하여 안정을 얻지 못하게 하므로 기어이 이러한 말을 끊어 버린다. 만일 어떤 이의 말이 맑고 온화하고 부드럽고 윤택하여 듣기에 좋고 마음에 들면, 기뻐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며 남으로 하여금 안락하게 하며, 말씨와 말소리가 고르고 분명하여 남으로 하여금 두렵게 하지 않고 남으로 하여금 안정을 얻게 한다. 이와 같이 그는 추한 말을 하는 그런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꾸미는 말을 여의고 꾸미는 말을 끊어 시기에 맞는 적절한 말[時說]만 하고, 진실한 말[眞說]만 하며, 법에 합당한 말[法說]을 하고, 이치에 맞는 말[義說]을 하며, 고통이 사라지는[止息] 말을 하고, 고통이 사라지게 하는 말을 즐거워하며, 하는 일이 때를 거스르지 않아 적절함을 얻게 하고 잘 가르치고 잘 꾸짖는다. 이와 같이 그는 꾸미는 말을 하는 그런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탐욕[貪伺]을 여의고 탐욕을 끊어 마음에 다툼을 품지 않아 남의 재물과 모든 생활 도구를 보고도 탐욕을 일으켜 나의 소득이 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같이 그는 탐욕에 대한 그런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성냄을 여의고 성냄을 끊어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고 남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으며, 또한 자비스러운 마음이 있어 일체 중생은 물론 나아가 곤충에 이르기까지도 이익되게 한다. 이와 같이 그는 미워하고 성냄에 대하여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삿된 견해를 여의고 삿된 견해를 끊어 바른 견해만 행함으로써 뒤바뀌지 않아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보시가 있고 재(齋)가 있으며, 주문[呪說]도 있고 선악의 업에 대한 과보도 있으며, 이 세상[此世]과 저 세상[彼世]이 있고, 아비가 있고 어미가 있으며, 세상에는 참된 사람[眞人]이 있어 좋은 곳에 이르고, 이 세상에서 잘 떠나 저 세상으로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같이 그는 삿된 견해에 대해서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처럼 몸이 짓는 깨끗한 업을 성취하고, 입과 뜻이 짓는 깨끗한 업을 성취한다. 성냄을 여의고 다툼을 여의며, 잠[睡眠]을 없애고 명성에 대한 욕심이나 뽐냄이 없으며, 의심을 끊고 교만을 버리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고 어리석음이 없다. 그의 마음은 자애로움[慈]을 구족하여 1방(方)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維)와 상하 어느 곳이나 모두 두루하게 된다. 그 마음은 자애로움을 구족하여 맺힘[結]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슬픈 마음과 기쁜 마음도 그러하며, 또 그 마음은 평정한 마음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가람 사람들아, 이와 같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문득 네 가지 편안하게 머물 곳[四安隱住處]을 얻는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있고,선악의 업보(業報)가 있다. 나는 이 바른 견해와 서로 호응하는 업을 받아 지니고 구족함을 얻었으니,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좋은 곳에 가게 될 것이고 나아가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한다. 

가람 사람들아, 이와 같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첫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이다.


다시 가람 사람들아,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으며, 선악의 업보도 없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이 나는 현재 세계에서 이것 때문에 남의 비방을 받지 않는다. 다만 바른 지혜를 가진 사람은 칭찬할 것이고, 정진하는 사람과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그게 사실이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가람 사람들아, 이와 같아서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두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이다.


다시 가람 사람들아, ‘만일 지어야 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악한 것은 짓지 않아야 할 것이니 나는 악을 짓는 일은 생각지도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스스로 악을 짓지 않았는데 무엇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생기겠는가?’라고 말한다. 

가람 사람들아, 이와 같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세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이다.


다시 가람 사람들아, ‘만일 지어야 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악한 것은 짓지 않아야 한다. 나는 세상에서 두려워하는 것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을 다 범하지 않는다. 항상 모든 세상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 내 마음은 중생과 더불어 다투지 않고 혼탁해지지[濁] 않아 기쁘고 즐겁다’고 말한다. 

가람 사람들아, 이와 같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네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다. 이것이 이른바 네 가지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이다.”


가람 사람들이 세존께 여쭈었다.

“그렇다면 구담이시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네 가지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겠습니다. 네 가지란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있고, 선악의 업보가 있다. 나는 이 바른 견해와 서로 호응하는 업을 받아 지니고 구족함을 얻었으니,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좋은 곳에 가게 될 것이고, 나아가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구담이시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첫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구담이시여,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으며, 선악의 업보도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현재 세상에서 이것 때문에 남의 비방을 받지 않는다. 다만 바른 지혜를 가진 사람은 칭찬할 것이고, 정진하는 사람과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그게 사실이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구담이시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두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구담이시여, ‘만일 지어야 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악한 일은 짓지 않아야 하니, 나는 악을 짓는 일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스스로 악한 일을 짓지 않았는데 무엇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생기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구담이시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세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구담이시여, ‘만일 지어야 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악한 일은 짓지 않아야 한다. 나는 세상에서 두려워하는 것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다 범하지 않는다. 항상 모든 세상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 내 마음은 중생과 더불어 다투지 않고 혼탁해지지 않아 기쁘고 즐겁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구담이시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네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담이시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네 가지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저희들은 이미 알았습니다. 선서(善逝)시여, 저희들은 이미 이해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다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스님께 귀의합니다. 오직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제가 우바새(優婆塞)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가람


사람들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7) 가미니경(伽彌尼經)가(伽)의 음은 거(巨)와 라(羅)의 반절임 제7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난타원(那難陁園)을 유행하실 때에 장촌나림(牆村㮈林)에 계셨다.


그때 아사라천(阿私羅天)의 아들이 있었는데, 가미니(伽彌尼)라고 이름하였다. 얼굴 모양이 준수하였고 안색은 밝고 빛났다. 그는 먼동이 틀 무렵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예배한 다음 물러나 한쪽에 있었다.


아사라천의 아들인 가미니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범지(梵志)는 스스로 잘난 체하면서 약간의 하늘을 섬겼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어떤 중생이 목숨을 마치면 그는 능히 자재하게 좋은 곳으로 오가면서 천상에 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니, 원하건대 세존이시여, 중생으로 하여금 목숨을 마치거든 좋은 곳에 이르게 하거나 천상에 나게 해 주십시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미니여, 내가 이제 너에게 묻겠으니 아는 대로 대답하라. 가미니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마을에 살고 있는 어떤 남녀가 게을러서 정진하지 않고 도리어 악한 법을 행하여, 열 가지 착하지 못한 업도[不善業道]인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성취했다고 하자. 

그들이 목숨을 마칠 때 만일 여러 사람이 와서 저마다 합장하고 그들을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며 축원하면서 ‘너희들 남녀는 게을러서 정진하지 않고 도리어 악한 법을 행하여 열 가지 착하지 못한 업도인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다 성취했으니, 너희들은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틀림없이 좋은 곳에 가게 되거나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가미니여, 저 남녀들은 게을러 정진하지 않고 도리어 악한 법을 행하여 열 가지 착하지 못한 업도인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취했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합장하고 그를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며 축원했다고 해서 그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좋은 곳에 가게 되거나 천상에 태어날 수 있겠느냐?”


가미니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가미니여, 왜냐하면 저 남녀들은 게을러 정진하지 않고 도리어 악한 법을 행하여, 열 가지 착하지 못한 업도인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취했는데도, 

만일 여러 사람이 저마다 합장하고 그를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여 축원했다고 해서 그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좋은 곳에 이르거나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가미니여, 그것은 마치 이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깊은 못이 있는데 거기에 어떤 사람이 아주 무거운 돌을 그 물 속에 던져 넣었다고 하자. 만일 여러 사람이 와서 저마다 합장하고 그것을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며 축원하면서 ‘제발 돌아[石], 물 위로 떠올라다오’라고 이와 같이 말하면 가미니여,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저 아주 무거운 돌이 어찌 여러 사람이 저마다 합장하고 칭찬하고 찬탄하며 축원했다고 해서 이것을 인연하여 물 위로 떠오를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가미니여, 저 남녀들은 게을러 정진하지 않고 도리어 악한 법을 행하며, 열 가지 착하지 못한 업도인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취했는데도 만일 여러 사람이 저마다 합장하고 그를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며 축원했다고 해서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좋은 곳에 가게 되거나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른바 이 열 가지 착하지 못한 업도는 악한 업[黑]을 지으면 악한 과보가 있어 저절로 밑으로 내려가 반드시 악한 곳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가미니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마을에 살고 있는 어떤 남녀가 정진하여 부지런히 닦고 그러면서 묘한 법을 행하며, 열 가지 착한

업도를 성취하여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사음과 거짓말과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의고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끊어버려서 바른 견해를 얻었다고 하자. 

그들이 목숨을 마칠 때 만일 여러 사람이 와서 저마다 합장하고 그들을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고 축원하면서 ‘너희 남녀들은 정진하여 부지런히 닦고 그러면서 묘한 법을 행하며, 열 가지 착한 업도를 성취하여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과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여의고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끊어 바른 견해를 얻었다. 너희들은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틀림없이 나쁜 곳으로 가거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가미니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저 남녀들은 정진하여 부지런히 닦고 그러면서 묘한 법을 행하며, 열 가지 착한 업도를 성취하여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고, 주지 않는 것은 취하지 않으며, 삿된 음행과 거짓말과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여의고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끊어 바른 견해를 얻었다. 그런데 어찌 여러 사람이 각각 합장하고 그들을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며 축원했다고 해서, 이것을 인연으로 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나쁜 곳으로 가거나 지옥에 태어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가미니여, 저 남녀들은 정진하여 부지런히 닦고 그러면서 묘한 법을 행하며, 열 가지 착한 업도를 성취하여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과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여의고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다 끊어 바른 견해를 얻었다. 

그런데 만일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합장하고 그들을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며 축원했다고 해서, 그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나쁜 곳으로 가거나 지옥에 태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가미니여, 이른바 이 열 가지 착한 업도는 착한 업[白]을 지으면 착한 과보가 있어 저절로 위로 올라가 반드시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가미니여, 그것은 마치 이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깊은 못이 있는데, 거기서 어떤 사람이 소유(酥油)병을 물에 던져 부수면 부서진 병

조각은 밑으로 가라앉고 소유는 위로 떠오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가미니여, 저 남녀들은 정진하여 부지런히 닦고 그러면서 묘한 법을 행하며, 열 가지 착한 업도를 성취하여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과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여의고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다 끊어 바른 견해를 얻었다. 

그들이 목숨을 마칠 때에는 이른바 몸의 추한 빛깔과 4대(大)는 부모에게서 생겼고, 옷과 밥으로 자라났으며 앉고 눕고 안마하며 목욕하고 굳세게 견뎌낸 것은 다 부서지는 법이다. 

이것은 없어져 다하는 법이며, 떠나고 흩어지는 법이다. 저 목숨이 끝난 뒤에는 혹은 까마귀와 새가 쪼아 먹기도 하고 혹은 호랑이와 승냥이가 먹어 치우기도 하며, 혹은 태우거나 묻혀 모두 티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의 심(心)ㆍ의(意)ㆍ식(識)은 항상 믿음에 훈습되고, 정진과 지식[多聞]과 보시와 지혜에 훈습되었으므로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저절로 위로 올라가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된다.


가미니여, 저 생물을 죽인 사람은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는 데 있어서, 동산으로 가는 길[園觀之道]과 위로 오르는 길[昇進之道]과 좋은 곳으로 가는 길[善處之道]이 있다. 가미니여,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과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죄다 여의고 바른 견해를 얻는 데 있어서도 동산으로 가는 길과 위로 오르는 길과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이 있다. 가미니여, 다시 동산으로 가는 길과 위로 오르는 길과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이 있다. 


가미니여, 어떤 것이 또한 동산으로 가는 길과 위로 오르는 길과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인가? 

이른바 8정도[支聖道]이다. 바른 견해에서부터 나아가 바른 선정[定]에 이르기까지의 이것을 여덟 가지라고 한다. 가미니여, 이것을 또한 동산으로 가는 길과 위로 오르는 길과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가미니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