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4일 토요일
[유전] [오전 12:04] 니체를 읽다가 잘못될 경우 미칠 수 있다고 한 내 발언에서 왜 미치게 하는지, 철학한다는 이들 대부분이 니체 이야기가 다른 철학자에 비해 좀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은데 왜 그런가 라는 질문이 있군요.
[유전] [오전 12:06] 질문에 답하기 전에 철학방이니까 니체를 접했으리라 보고 니체는 어떤 주의나 어떤 정신이나 할 게 있을까요? 초인 정신이 있는데 이건 완전히 뜬구름 잡은 이야기죠. 인간을 뛰어넘어 신이 되려고 했을까요?
[유전] [오전 12:06] 철학자가 초인이 된다고 하는게 상상으로 가능한가요?
[유전] [오전 12:07] 짜라투스트라 처럼 도사가 되려고 했을까요?
[유전] [오전 12:07] 니체를 대표하는 어떤 사상이나 주의 정신이 이것이다 라고 할만한게 없다고 봅니다.
[유전] [오전 12:08] 나도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죠
(다른 이의 응답) [오전 12:14] 니체가 말한 초인은 신 같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본인의 삶을 개척하고 도전하는 사람을 초인으로 바라봤습니다 본인이 본인 인생의 주인공인 사람이요
[유전] [오전 12:15] 그거야 당연히 그렇죠. 그런데 그건 누구나 그렇게 하는거 아닌가요?
[유전] [오전 12:17] 니체 당시에 염세주의와 허무주의가 있었고 니체 이후 시기에 분석철학이 대세를 이루었죠. 그럼 니체는 무엇인가? 니체는 다른 철학자와 어떻게 달랐는가?
[유전] [오전 12:18] 그래서 니체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유전] [오전 12:21] 난 니체가 혐오주의라고 봅니다. 비판을 하는데 비판을 넘은 어떤 광기에 집착하여 혐오주의라고까지 할 수 있죠. 신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계속 사과 돌려가면서 깎듯이 하는 돌려까기, 신을 믿고 있는 모두를 까는 모두까기, 하나에만 집중적으로 까는 몰아까기(분석철학) 극도의 비판정신이 혐오주의라고 할 수 있죠.
[유전] [오전 12:23] 그런 니체를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비판정신이 강해지죠. 그래서 그런 비판적 성품이 다른이들에게 스며들고 다른이들 보다 잘 비판할 수 있게 됩니다.
[유전] [오전 12:24]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라는 책 자체는 전체가 불교의 화두와 같습니다.
[유전] [오전 12:25] 한국에서 유명한 없을 무無 자를 두고 사유하는 무자화두죠. 그런데 원래 무자화두는 자기 내면에 대한 마음 내려놓기가 되어야 하는데 니체는 이걸 남들(어떤 대상을) 공격하는데 쓴거죠.
[유전] [오전 12:32] 그래서 니체를 읽다가 잘못되면 혐오주의에 함몰되어 미칠 수 있다고 한거죠. 니체는 선 불교를 한게 아니니까요. 선 불교에는 불교라고 하는 혐오를 벗어나게 되는 방편 부터 시작하니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유전] [오전 12:35] 니체가 한국 선불교식 무자화두를 했다는건 아닙니다.
[유전] [오전 12:35] 니체는 선불교 자체를 몰랐다고 보죠. 화두선이라고 하는 간화선요.
[유전] [오전 12:36] 니체가 화두는 두는데 불교 정신이 없죠. 이건 선불교가 아니죠.
(다른이의 응답) [오전 12:52] 니체가 딱히 못할말을 한건 아니고 군중의 간지러운 부분을 잘 긁어주었지요 어찌저찌 바이럴타서 유명해진걸수도 ㅋㅋ
[유전] [오전 12:53] 마케팅이 잘 먹히긴 했죠. 비난은 가십거리로 좋은 유흥거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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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4)
니체의 위버멘쉬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책을 짧게 편집한 거죠. 20대 초반에 인간적인을 다 읽고 사유적인 확대를 최소 2배 하고 니체식 말장난에 빠져들었죠.
언어유희에 관한 최고의 천재라서 항상 니체에게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죠.
니체가 말년에 광증으로 10년 이상 여동생의 수발을 받다 죽었듯이 니체에 잘못 빠지면 고생할 수 있습니다.
니체에게 영향을 끼친 건 도덕경과 불경인데 원래 불경도 그렇지만 도덕경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데 최고의 경전이죠. 5,001 전체 글자수 자체가 전부 화두입니다.
불경 8만4천 법문이 도덕경 5,001 글자에 다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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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6)
[ㅈㅇ] [오전 6:24] 저는 세상과 현상이 씁쓸하다는데에는 동의해요
[ㅈㅇ] [오전 6:24] 이게 온기를 느끼는 방법인 사람들을 안타깝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유전] [오전 6:26] 내가 서양 철학의 종착지는 염세와 허무밖에 없다고 했죠. 구약에서도 솔로몬이 말년에 인생의 허무를 비통할 정도로 괴로워 했죠. 왕인데도 그런거죠.
[ㅈㅇ] [오전 6:26] 뭔가 근데 제가 안타깝다고 해도 되나 모르겠어요
[ㅈㅇ] [오전 6:27] 막상 그 사람들이 잘 즐기고 현실의 관계를 더 잘 해나갈수도 있고
[유전] [오전 6:28] 니체는 아예 세상 모두를 증오 혐오.
[ㅈㅇ] [오전 6:29] 유튜브에서 팔리는 위로가 위로가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따뜻한 온기를 가진 위로일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전] [오전 6:29]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다 공부를 잘못 배워서 그런거죠
[유전] [오전 6:29] 배우길 그렇게 배웠으니 다른 길이 없는거죠.
[유전] [오전 6:30] 특히 무신론자들은 더 그런거죠. 미래적 희망을 아예 닫고 사는거니까요. 지옥이 무서워서? 천국도 싫어하는 경우가 많죠.
[유전] [오전 6:31] 자기 자신을 아무리 믿고 존중하고 사랑하면 뭐하나요. 미래가 없는데.
[유전] [오전 6:31] 최소한 어떤 희망이라도 있어야죠. 그런데 없어요. 무신론자들은.
[유전] [오전 6:32] 그냥 살다가면 된다고 여기겠지만 말년 되면 그게 너무나 아쉬운 거죠. 미래를 부정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유전] [오전 6:33] 속으로는 죽어서 천국이 있고 그곳에 먼저간 부모와 형제들이 있기를 바랄겁니다. 그런데 마음 속에 그런 희망 자체가 닫혀있죠.
[유전] [오전 6:34] 왜 알 수도 없는 미래를 스스로 닫고 사나요? 물론 나도 그러긴 했죠. 이게 일종의 젊을 때 교만 비슷하긴 해요. 나만 잘하면 되는데 누구에게 의지를 하겠나 이런거죠. 하지만 내세까지 미리 닫아놓고 살 필요가 있을까요? 스스로도 모르면서.
[유전] [오전 6:36] 스스로 닫은거라 어떻게 할 수도 없는거죠. 그리고 그런 믿음을 다른이들도 그렇게 되길 바라며 즉 자신이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남들도 그렇게 믿어주면 아군이 많아진달까 그래서 그런 걸 수시로 강조하며 살죠.
[유전] [오전 6:37] 천국과 같은 미래는 없다고 마치 종교인들이 포교하듯이 알려요. 그래야 자기 자신이 덜 손해보는 느낌이랄까 그런거죠
[유전] [오전 6:38] 종교가 미래를 증명할 수 없듯이 무신론자도 미래를 증명할 수 없는건 마찬가지죠. 그런데 누구는 희망을 갖고 살겠다고 하는데 그 꼴을 안보고 싶어해요.
[유전] [오전 6:39] 그런 마음이 계속 자라고 커지고 고착화 되면 노년에 더 허무해지고 염세가 되고 혐오가 될 수 있죠. 사랑도 없어지고.
[유전] [오전 6:39]
극락에 대한 근거 아미타불의 48대 서원 중 - 무량수경
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에 지옥과 아귀와 축생의 三악도(惡道)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수명이 다한 뒤에 다시 삼악도에 떨어지는 일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중략)
1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제 이름(아미타불)을 다만 열 번만 불러도 제 나라에 태어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유전] [오전 6:45] 최소한 신실한 종교인들은 허무, 염세, 혐오는 없습니다. 사랑과 자비가 가득하죠. 같은 삶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요? 자기 스스로 마음을 닫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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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쓴 위 글을 본 다른 방의 방장과의 대화)
다른 방의 방장 [오전 7:09] 어쩌면 종교라는 것은
다른 방의 방장 [오전 7:09] 나약한 인간의 한줄기의 빛줄기 아닐까요
[유전] [오전 7:10] 누구나 그 빛을 발견하면 그때부터 달라지죠.
[유전] [오전 7:10] 그 빛을 발견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이고 또 그 빛이 진짜냐 가짜냐의 의문은 계속 되죠.
다른 방의 방장 [오전 7:10] 그럼 유전님은
다른 방의 방장 [오전 7:10] 무신론자인가요 유신론자인가요?
[유전] [오전 7:11] 원래 니체를 매우 좋아했던 무신론자였죠. 지금은 유신론자로 바뀌었는데 특정 종교는 없습니다.
다른 방의 방장 [오전 7:11] 옛적부터사람들은
다른 방의 방장 [오전 7:12] 가뭄이생기면 비를 내리게해달라고 신께 빌기도하고
다른 방의 방장 [오전 7:12] 기도를 하곤했죠
다른 방의 방장 [오전 7:12] 태양신있다고 믿기도하며
[유전] [오전 7:12] 그런데 각종 경전을 보다 보니까 특히 불경의 엄청난 분량이 서로 다 이어져서 설법되어 있는 걸 보면 이건 무언가 확실히 있다 이런 확신이 있죠.
다른 방의 방장 [오전 7:12] 설명되지않는 현상에 대한 해답을 찾기위해 세상의 원리와 인간의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기위한 시도가 아니였을까요
[유전] [오전 7:13] 누구나 그런 존재의 이유를 갈망하죠. 그런데 무신론자는 일찍 포기하고 유신론자는 모르면서 세뇌되어 갈망하죠. 그래서 서로 비방을 하죠. ㅎ
[유전] [오전 7:15] 이 "나약한 인간의 한줄기 빛"을 어떤 형태로 어떻게 잡을 것인가가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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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7)
[유전] [오전 7:04] 10명이 들어가서 1명이 살아남는다는 문(門)
[유전] [오전 7:04]
도덕경 50장 - "영생편(필자 유전이 붙인 소제목)"
나옴(出은 태어남이고 들어가는(入) 것은 죽는 것이다.
장수하는 자들이 열에 셋이고, 요절하는 자들이 열에 셋이며,
잘 살다가 갑자기 죽는 자도 열에 셋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삶에 대한 집착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래는 위 10명에서 하나 남은 영혼의 영생자)
도를 잘 닦는다는 나머지 사람에게 들어보니,
산을 다녀도 호랑이나 코뿔소를 만나지 않고,
전쟁터에서도 무기에 다치지 않는다고 한다.
코뿔소가 들이받을 곳이 없기 때문이며,
호랑이가 할퀼 곳이 없기 때문이며,
무기가 찌를 곳이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죽음에 이르게 할 여지를 없앴기 때문이다.
[유전] [오전 7:05] 도덕경이 무슨 자연철학이나 떠들어 놓은 책인 줄 아는 이들이 많아서 올려 봤음.
[유전] [오전 7:07] "요절하는 자들이 열에 셋이며, 잘 살다가 갑자기 죽는 자도 열에 셋이다."
10명 중에 6명이 요절하거나 급사하는 공부니까 함부로 하면 안됨.
[유전] [오전 7:09] 니체도 도덕경 연구하다가 말년에 10년동안 광증을 앓고 여동생이 수발들다 죽었는데 이미 광증 때 부터 죽은 걸로 봐야 함
[유전] [오전 7:10]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이미 죽은 자
[심연] [오전 7:11] 죽은것도 산것도 아닌 고통이죠.
[유전] [오전 7:12] 조금 전에 현피 뜨네 마네로 (카톡) 채팅하던데 그렇게 용기들이 있으면 도덕경 공부 시도해 보기 바람. 살아남으면 정말 최강자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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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도덕경 14장 - 한반도 예언)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보려해도 볼 수 없으니 이름하여 이(夷)라한다.
들으려해도 들리지 않으니 이름하여 희(希)라한다.
손에 쥐려해도 얻지 못하니 이름하여 미(微)라한다.
此三者, 不可致詰, 故混而爲一
세가지를 발자국 따라 이어라. 따지고자(詰 따질 힐) 이르(詰 이를 치)는 것이 아니니 고로 합쳐서 하나로(爲一)하라.
(위 세 가지를 합치라고 했으니 그 해당 자구는 이희미(夷希微)인데 그것을 하나의 의미로 풀면 "동방의 명사수 이(夷)를 바라보며(希) 숨겨(微)놓는다"가 되겠다.)
도덕경 80장 (제타위키 번역) 한반도에 곧 다가올 미래의 모습
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을 적게 하라.
수십 수백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가 있어도 쓰지 않게 하고,
백성이 죽음을 무겁게 여기고 멀리 이사하지 않게 하면,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탈 곳이 없고,
갑옷과 병기가 있어도 쓸 일이 없다.
백성이 다시 끈을 묶어 쓰게 하면,
달게 먹고,
아름답게 입고,
편히 머물고,
즐겁게 산다.
이웃 나라가 서로 보이고,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은 늙어 죽도록
서로 왔다 갔다 하지 않는다.
도덕경 81장(마지막 장)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않다.
참한 이는 말을 잘하지 못하고,
말 잘하는 이는 참하지 않다.
아는 이는 넓지 않고,
넓은 이는 알지 못한다.
성인은 쌓지 않으니,
이미 다른 이를 위하기 때문에 자기는 더 가지며,
이미 다른 이에게 주기 때문에 자기는 더 많다.
하늘의 도는 해롭지 않고 이로우며,
성인의 도는 싸우지 않고 이룬다.
본문 에러난 것 수정했음.
불교신지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본문의 기본교리를 아예 모르고 그저 자기가 믿는 살아있는 부처라는 자의 말에 속아 그것이 전부인 줄 아는데, 니처럼 얄팍한 체험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인양 떠들고 있는 자들이 인도 힌두교에도 지금 수 억명이 있고 중국 도교 산속에도 수 억명이 있다. 그런 자들은 불교가 아니다. 04.16 22:5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