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이야기의 줄거리와는 관계가 없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이 예수를 어떻게 여기고 있느냐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물론,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글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용어상의 모순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든지, 아니면 해석을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내 말의 요지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했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실제로 서기관 및 바리새인들과 동일한 사고방식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개 유대교의 경전을 글자 그대로 해석했으며, 이것을 토대로 예수가 하는 말 속에서, 예수를 반대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꼬투리를 잡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리스도임(Christhood)은 이원성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의식상태이지만, 이원성을 충분히 뛰어넘어, 그 너머를 보는 것은 어떠한 과정으로 시간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임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본보기가 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더 높은 의식상태를 향해, 예수가 진보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로 들어갔을 때, 예수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그리스도 의식에 도달해 있었지만, 그는 다음 3년 동안에도 계속해서 진보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복음서, 사도행전, 서간, 묵시록의 27개의 신약의 경전들)이 직선적인 시간표를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성경 속에 숨겨진 의미를 읽을 수 있다면, 성경을 재구성할 수 있으며, 그러면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임에서, 예수가 진보를 이루어감에 따라, 예수가 하는 말은 그리스도임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처음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저했습니다. 이 말은 그가 처음 2년간은 “나는(I AM)”이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해에, 그는 “나는(I AM)”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특정한 문구들을 말했지만, 예수는 그러한 문구들을 자기 자신과 관련되는 말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러한 문구들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낮은 단계의 그리스도임은 이원론적인 환상과 비-이원론적인 실체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분별력에 기초해서, 어떠한 말들이 지니고 있는 진동을 읽고, 그러한 말들이 타당한 것인지를 식별할 수가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 세계의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이 단계에 이미 도달해 있습니다. 단계가 더 높아지게 되면, 아이앰 현존을 위한 열린 문이 되며, 그 다음에는 상승 마스터를 위한 열린 문이 될 것입니다. 이 보다 단계가 더 높아지게 되면, 그리스도 마음과 하나가 되게 되며, 그리스도 마음이란 나누어지지 않은, 하나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지구와 같은 행성에서는 상승하지 못한 사람이 나머지 사람들보다 높은 수준의 의식을 성취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개인적인 그리스도임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임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분리된 존재(추락한 존재들이 지니고 있는 주된 환상)라는 환상을 더 많이 극복할 수가 있게 되며, 자기 자신을 보편적인 그리스도 마음과 하나라고 여기게 됩니다. 이 단계는 다소 정신분열적인 단계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정상적이지 않은 행성에 육화해 있다는 사실과 여러분이 근본적인 현실로써 하나됨이라는 것을 체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간에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성의 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이러한 양극단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게 되며, 이것이 예수에게도 쉬운 단계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도달하고 있는 지점은 보편적인 그리스도 마음과 하나라는 것을 체험하기 시작할 때, 이제 여러분은 자신이 하지 않는 말, 혹은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닌 말을 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이러한 말은 상승 마스터가 여러분을 통해서 하는 말이거나, 아니면 그리스도 마음과 하나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여러분이 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말들 가운데 하나, 즉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는 말을 예로 들어봅시다.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이 말을 “만약 여러분이 기독교의 신도가 아니라면(최소한, 세례를 받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없다.”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오직 기독교인들만이 구원받게 될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 번 살펴보세요. 하지만 엄연한 사실은 천국에는 기독교인이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에는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혹은 불교도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마음은 보편적인 것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 마음이 하나됨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지구에서 만들어지는 이름표들은 서로를 나누고, 구별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분열을 초래하는 이러한 용어는 오직 이원성 의식으로부터만 나올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용어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할 목적으로, 언제나 추락한 존재들에 의해 정의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을까요? 이원성 의식과 분리라는 환상으로 인해 만들어진 모든 분리를 극복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분리라는 환상을 극복해야만, 하나됨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분리라는 환상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하나가 되는 상태로 들어감으로써, 그렇게 할 수가 있으며,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 유일한 방법은 창조주와 창조주의 창조물 간에 하나가 되기 위해 정의해놓은, 보편적인 그리스도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그리스도”라는 말이 보편적인 개념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추락한 존재들이 이 말을 강탈하여, 분리를 조장하는데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라는 용어는 분리되지 않은 하나이며, 분리될 수도 없는 보편적인 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러한 보편적인 마음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의 근원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과도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바로 하나가 되는 유일한 근원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위와 같은 말(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을 했을 때, 말을 하고 있던 존재는 개인적인, 분리된 존재로서의 예수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보편적인 그리스도 마음과 하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마음이 예수를 통해 이러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진실로 보편적인 그리스도 마음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그리스도 마음과 하나가 되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그리스도 마음은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예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또한, 외적인 특정한 종교의 신자가 되는 것과도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외적인 교회(그리스도임이 아니라, 이원성에 기초한)의 신자가 된다고 해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환생해야 되는 것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고, 영적인 지식을 다른 데서 찾으려고 하거나, 아니면 기독교에 대해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많은 무신론자들, 즉 지난 20년에 걸쳐, 나타난 공격적인 무신론자들을 살펴보세요. 그들이 왜 기독교에 대해 화를 내고, 기독교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지를 스스로 자문해보세요. 설명하자면, 과거 생들에서, 이러한 사람들은 기독교 문화 속에 육화하여, 만약 선(善)한 기독교인이 된다면, 그 생이 끝나면, 천국으로 들어가게 될 거라는 주장을 믿었습니다. 죽고 난 후, 이들은 상승할 자격을 얻었던 것이 아니라, 다시 육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매우 화가 났으며, 따라서 기독교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열망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슬픈 사실은 이러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의식을 끌어올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또 다른 사례, 즉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라는 문구를 살펴봅시다. 이제, 내가 이 책에서 여러분에게 이야기했던 것에 기초하면, 예수가 아브라함의 시대 훨씬 이전부터, 육화해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예수가 이 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또다시 보편적인 그리스도 마음이 한 말이며, 그리고 보편적인 그리스도 마음에 대해서, 한 말입니다. 이 말은 이 마음이 시간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시간은 이원성 의식이 만들어낸 산물이며, 또다시 삶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라는 환상은 오로지 그리스도 마음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가 제자들에게 세상 속으로 들어가, 모든 사람들을 예수의 제자가 되게 하라고 말하고 있는 문구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또다시, 기독교인들은 이 문구를 예수가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모든 사람들을 기독교의 - 언제나 “그들의(their)” 특정한 기독교 교회로 여겨지는 - 신자가 되도록 만들기를 예수가 원했다는 의미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문구도 또다시 보편적인 그리스도 마음이 말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에게 이 마음과 하나가 되는 길을 걸어가고, 그 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의미였습니다. 외적인 종교의 신자가 된다고 해서, 그리스도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사실, 그렇게 함으로써 대개는 그리스도 마음이 지닌 보편성과 차단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신자가 아닌 사람들을 심판하는데, 여러분이 어떻게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결속시켜주는 이 마음과 하나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 올 자가 없느니라.”라는 말에도 우여곡절이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는 상승 마스터가 되어, 행성의 그리스도(Planetary Christ)로서, 특정한 영적인 공직을 갖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이 영적인 공직을 거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상승한 상태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보면,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지구에서 상승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상승 마스터로서의 예수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상승하지 않았던 기간에는, 이러한 공직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예수가 자기 자신에 대해 그러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