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수의 제자들과 기타 추종자들은 특정한 범위의 의식, 즉 지구에서 가능했던 의식의 144단계 중에서 각기 다른 단계의 의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36단계에서 96단계 사이에 있었습니다. 당연히,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소식에, 이들은 각자의 의식 단계에 따라 반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입문과정, 즉 예수가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예수의 사명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모든 추종자들은 이 의문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았던 사람은 나 밖에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예수를 아주 오랫동안 따랐으므로, 어떠한 기대감도 갖지 않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추락한 존재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자유의지가 최우선시 되는 행성에서(비정상적인 행성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과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의식의 모든 단계들에서, 일부 사람들은 예수가 죽음으로써, 예수의 사명이 실패했다고 추론했으며, 이것은 예수가 애초부터 사기꾼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속았다고 생각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켜, 자신들을 속였던 예수에게 책임이 있으며, 자신들은 순수한 피해자라고 추론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믿고 있던 종교나 스승(guru)에게 불만을 품게 될 때, 이러한 경우를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은 운동을 떠나게 되며, 예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게 됩니다. 낮은 의식의 단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반응했으며, 남아 있던(나머지) 사람들은 의식의 96단계에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에게 속았다고 추론했던 사람들은 이제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상황(통과의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예수가 일반 범죄자로 처형될 거라거나, 아니면 그동안 예수가 보여주었던 힘(powers)을 사용하지 않고,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했을 거라고는 여기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의식수준에서 이해했던 방식으로, 이것을 설명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가장 흥미롭고, 중대한(결정적인) 반응은 48단계 아래에 있거나, 아니면 베드로처럼 48단계 바로 위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나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실패자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실패자라고 여기는 것은 베드로 자신이 바보가 되어, 예수를 따랐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자만심 때문에, 베드로는 이것(예수가 실패자라는 것)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예수를 따랐던 것이 옳았다고 여겼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비록 예수가 죽임을 당했다 하더라도, 예수가 옳았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를 베드로가 찾아내야 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관점을 예수에게 투사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베드로의 의식수준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전혀 어렵지가 않았습니다.
사탄 의식은 (자신의) 제한된 시각을 이용하여,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야 한다는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 다음, 그러한 이미지에 따라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식이라고 앞에서 말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인식할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분리된 자아들을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분리된 자아를 이용하여, 그리스도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이미지를 그리스도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및 베드로와 같은 다른 사람들은 예수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운동을 추종자들이 넘겨받아 관리해주기를 원했기 때문에, 예수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개념을 이제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실제로 원했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물론 옳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사탄 의식을 지녔던 추종자들이 운동을 관리하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그리스도임을 성취하기 시작한 추종자들이 운동을 관리해주기를 바랐습니다.
당연히, 베드로는 이러한 사실을 알 수가 없었으며, 그는 이 운동에서 자신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작용하고 있는 심리적인 메커니즘을 알 수 있나요? 베드로의 주된 관심사는 자신이 틀렸다고 입증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베드로에게는 예수의 죽음이 커다란 도전과제로서, 자신은 틀릴 수 없다는 깨어지기 쉬운 무오류의 의식(無謬意識 : sense of infallibility)이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위협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가 죽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이제 그 설명은 베드로가 틀렸다고 밝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결부되게 되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베드로는 예수의 죽음에 대해, 외적인 마음으로 만들어낸 설명에 스스로 얽히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예수의 사명에 대한 베드로의 견해가 틀렸다고 밝혀지지 않는 것이 베드로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습니다. 먼저, 보다 높은 의식단계에 있던 추종자들은 주로 직관력을 이용하여 내면으로 들어가, 예수의 진정한 사명에 대해, 아이앰 현존 혹은 상승 마스터들로부터 어떠한 안내를 받고자 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질문했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식수준에 따라, 그러한 안내를 받았습니다. 의식이 높으면 높을수록, 받을 수 있었던 이해도 더욱 더 심오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직관력을 이용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외적인 마음으로 결정했습니다. 이 말은 베드로가 자신보다 타인들이 더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베드로는 자신과 다른 견해들을 위협으로 간주했으며, 이러한 견해들을 억누르려고 했습니다.
이에 따른 명백한 효과는 베드로 및 그의 의식수준과 가까웠던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갖고 있던 사람들과 협력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협력하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놀라울 정도로 아주 짧은 기간 내에, 예수를 추종했던 사람들 사이에 두 개의 주요한 그룹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그룹과 서로 다른 다양한 견해들을 가졌지만, 서로를 용인했던 더 큰 그룹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후자의 사람들은 베드로의 그룹에 속해 있던 사람들과 협력하려고 노력했지만, 베드로의 그룹은 이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다른 견해를 가졌던 사람들을 폭력(violence)은 아니라 하더라도, 힘(force)으로라도 억눌러야 하는 적(敵)으로 여겼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수가 상승나선을 통과하는 33일 동안, 우리는 예수에 의해 홀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예수로부터 시작된 운동이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큰 그룹과 뚜렷한 지도자도 없이, 서로 다른 다양한 견해들을 가진 더 큰 그룹으로 이미 분명하게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치명적인 영향이 있었습니다.
그냥 팔자 흐름 자연 우주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