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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할 수 있는 나의 모든 모습을 알아줘, 그리고 어떤 모습도 싫어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같은 건 말이 안 된다.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어떻게 하더라도 우리는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을 보여줄 것이고 보고 싶은 모습만을 볼 것이다. 그러한데 본질이란 게 정말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건 어떤 형태인지 같은 게 뭐가 중요할까? 같은 의문이 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로에게 어떠한 본질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은 중요하다. 그 믿음은 서로의 존재가 단단하게 그곳에 있음을 보장해주고, 상대방에게 내가 중요시 여기는 어떤 가치가 있음을 기대하게 해주고, 그 기대는 관계가 유지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대란 추측의 일종이다. 미약하고 비의도적인 추측. 그렇기에 불확실하다.

즉 우리는 불확실한 기대를 원동력 삼아 타인과 관계를 맺는 셈이 되는데, 이 사실은 때때로 슬프고 무서운 것이 된다. 너는 내게 이런 기대를 하고 있을 것 같다, 라던지 나는 너에게 이런 기대를 하며 관계를 맺고 있었구나, 라던지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이라던지 반대로 기대를 버리고 싶은 마음이나 불확실한 기대 너머에, 정말로 있을 것만 같은 상대의 본질을 알고 싶어지는 마음 같은 것들 때문에…

차라리 본질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그냥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는데, 정말 그렇다면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너머에 너는 정말 있을 것만 같다. 내가 나를 느끼듯 너도 너를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정말 너무나도 당연한 추론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 실은 그렇겠지. 당연히 너는 그 너머에 있을 것이다. 정말 당연하게도…

서로가 서로를 찾아 헤매는 순간이 있다면 만나는 찰나도 존재할까? 내가 너에게 가지는 기대와 실제 너의 본질이 일치한 순간도 존재했을까? 우리가 얘기하고 또 얘기하다 보면 그 순간이 언젠가 존재했다고 밝혀낼 수 있을까? 그 밝혀냄이 쌓이고 쌓여서 언젠가 ‘나는 널 제법 잘 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도 할까? 그런 가능성을 붙잡고 싶다. 요즘의 생각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