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타
그녀와 다투기 전부터 난 내가 다툴거라는 것을 알았다. 딱히 내가 그녀와 싸워서 끝장을 봐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마치 내가 아닌 양, 마치 나와는 별개의 존재인 양 움직였을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나의 잘못을 인
정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난 분명히 조종간을 놓친 비행사와 같은 입장이었다. 이것을 임무해태라고 해야 할까 직무 태만이
라고 해야 할까... 조종간을 놓친다면 비행기도, 추락지점에 있는 그녀도, 비행사 본인도 모두 불행해질 수 밖에 없겠지만,
조종수는 애써 방향타를 다시 잡는 수고를 하지는 않은 것이다.
난 내가 나의 통제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뻔히 보고 알고 있었음에도 도무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무엇때문에, 그리
고 어째서 그래야만 하는지 도무지 답을 내리지 못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약간은 이 결과가 실제로 어떠할지 궁금도
하였다. 이 상황의 나에게서 어떠한 말과 어떠한 행동이 나올지, 나 스스로에게 궁금해지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불행중
다행이라면, 잘못을 알긴 한다는 것이다. 나는 조종간을 꼭 잡았어야만 했다. 화는 안으로 삭혔어야 했고, 나는 내 임무에
충실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것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임무에 충실하지 못했기에 스스로에게도 화가 났고, 또
그 터져나오는 분노를 안으로 삭힐 수가 없었기에 내 임무에 충실하지 못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엇이 먼저라 할 것
없이 상황은 순식간에 극단으로 치달아갔다. 마치 정말 비행기라도 탄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파일럿이 비행기를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하듯, 나 또한 나 자신을 충분히 컨트롤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그런 걸로는 도저히 결과를 무마시킬 수가 없다. 그것은 약간
의 쾌락이었다. 마치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몰래먹는 빵이 더 맛있고, 수업시간에 몰래 보던 만화책이 더 재밌는 것 같은 그
런 '미지의 약간 더' 가 그곳에 있던 것이다. 물론 걸리면 혼나고 걸리면 압수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래도 몰래 먹고 그
래도 몰래 본다. 그 '약간의 더'를 쉽게 단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 머저리같은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만화책
을 볼 시간도 빵을 먹을 시간도 충분히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쉬는시간도 있었으며, 점심시간도 있었고, 물론 방과후에
는 그런 시간이 더더욱 많이 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억압된 상황 속에서만 느껴지는 아주 약간의 자유로
움이 그곳엔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그 약간의 자유로움이 놓쳐선 안될 무한한 자유로 느껴졌다는 것이 문제랄까.
이번에도 그렇게 저열하고 쥐꼬리같은 자유를 탐닉했던 것이다. 억압의 해방을 마음껏 누렸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억압이라는 것은 사실 큰 길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작은 돌부리에 불과하여 그것을 걷어차서 누릴 자유와 해방감은 고작
해서 작은 돌멩이 같은 협소한 차원의 자유일 뿐, 결국 내 발이나 안아프면 다행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이 모든 상황에 변명을 해보자면, 난 단지 불안감을 느꼈다. 지금 이대로 이 화를, 이 짜증을, 이 마음을 접어버린다
면 그건 그대로 그녀에 대한 모든 마음을 함께 접는 일이 될 것이라는. 하지만 이제는 느낀다. 옳은 것은 옳았고, 알 수 없
는 것은 적어도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철벽같이 내 스스로를 견디어 냈어야 했다는 것을.
교복 호주머니에 젤리 넣어놓고 수업 시간에 꺼내먹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