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민지

필 콜린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상상 속으로만 만들어 왔던 토이랜드가 생각난다. 그 곳에서 모두 싸우지 않고 다정하게 지내는 장난감들을 바라본다. 이 곳의 시간은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저녁 어스름 무렵이 계속 이어진다. 가끔 어린 목각이 인형들이 나보고 햇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조른다. 그럼 나는 햇살 가득 머금은 분홍색의 조그만 뮤직박스를 가져온다. 그곳에서는 필 콜린스의 음악과 햇살이 동시에 나온다.

잠시 동안 토이랜드를 여행하고 온 나는 다른 음악을 틀었다. 귀 속에서 생동감 넘치는 황홀함이 떠돌았다. 그리곤 어렴풋이 기억나는 지우를 생각했다.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자 그의 모습이 또렷해졌다. 그리곤 그의 미소와 수줍음을 기억할 때면 그가 내 옆에서 살갑게 웃어주는 것만 같았다. 그의 1인 과외 자원봉사를 맡은 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순수함 자체였다. 집 안 곳곳에 놓여있는 야생화와 잡초들의 화분을 보며 계속 물어댔다. 그 때마다 나는 그에게 고마워했다. 나와 관심사가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경상도의 깊은 우림 입구에서 피는, 연한 노란색의 국화를 특히 좋아했다. 나는 그에게 국화꽃 잎 한 송이를 떼어 선물해 주었다. 그는 웃었다.

토이랜드의 어린 광대처럼.

한가로운 화요일 오후다. 나 홀로 집을 보기엔, 집은 너무나 컸다. 내가 서 있지 않은 곳은 어디든 쓸쓸함이 불어왔다. 나 홀로 그 쓸쓸함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오늘은 무기력하게 밀리진 않을 것이다. 부엌 창문을 열었다. 향기로움에 취해 창문턱에 기대었다. 서울 외곽의 고급 주택가가 기세 좋게 펼쳐져 있었다. 군집된 고급 주택들이 산기슭을 따라 다닥다닥 위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가장 초라해 보이는 주택을 바라보았다. 3층짜리 현대식 집이었지만 고풍스러운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한 쪽엔 백일송이 높게 솟아 있었다. 집 주인인 것 같은 아저씨가 마당에서 잔디를 깎고 있었는데, 그는 거칠게 인생을 산 것처럼 느껴지는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싱크대 옆에 있는 아버지 사진과 함께 보았다. 햇빛을 계속 쬐고 있어도 외로움은 좀처럼 증발되지 않았다. 나는 지우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주기를 한참 그렇게 앉아서 기다렸다. 어느덧 따사로운 산풍이 불어왔다. 나는 먹이를 줍느라 노곤한 다람쥐처럼 몸을 굽혔다. 그리곤 예사롭지 않은 꿈을 꾸었다. 내가 마음으로 향한 곳은 토이랜드였지만, 알루미늄 재질처럼 보이는 철책이 사방에 올라선 미로의 시작점에 서 있었다. 얄팍한 꿈이었지만 그래서 더 또렷한 것 같다. 나는 그 미로 속에서 헤매며 열심히 목각이 인형과 브라우니와 어린 광대를 불렀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었다.

그 때였다. 모든 철책들이 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더니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한 줄기 빛만이 얼굴에 가득했다. 그러고선 눈을 떴다. 싱그러운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고인 침을 삼키고 문으로 향했다.

 


-미안해, 평일에 이렇게 불러서. 혼자 집에 있으면 쓸쓸해서.

-괜찮아, 내가 언제든 있어줄게. 헤헤

지우는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초콜릿 스무디를 마셨다. 초콜릿 음료는 내 전문 요리이다. 또한 지우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 중에 하나다.

-오늘은 공부 같은 건 절대 안 할 거야. 나도 공부는 싫어. 우리 무슨 게임 같은 거나 할까?

-게임? 무슨 게임이 있을까. 게임이라면 자신있다.

-그럼, 숨바꼭질할래? 할리갈리할까? 아니면 너가 제일 좋아하는 체스?

지우는 한참동안 고민했다. 그러고선 셋 다 하기로 결정했다. 할리갈리를 할 때엔 그가 내 손을 너무 세게 친 나머지 손등의 실핏줄이 터졌다. 그는 굉장히 놀라 고함을 질렀지만,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동아줄을 목에 댄 사형수처럼, 안절부절 하지 못 했다. 그는 나에게 용케 얼음찜질을 할 수 있게끔 아이스팩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그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마음껏 웃어주었다. 턱 관절이 아파도 그저 웃어 주었다. 그는 조금 진정을 하고 나에게 초콜릿 스무디를 타 달라고 말했다.

-브라우니도 먹고 싶지 않아? 엄마가 해 주고 나가셨거든. 진짜 맛있다.

그와 거실에 앉아 보드라운 브라우니를 먹었다. 나지막한 패널들의 목소리가 티비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그 화면에 몰두한 지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발코니의 후광에 비친 그의 옆모습은 반할 정도로 멋있었다. 그와 함께 한 3개월 동안, 그의 한결같은 매력에 빠져버리게 된 것일까? 그에게 오히려 과외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가 되어 버렸다. 아직 사랑이란 것을 시작해 보진 않았지만, 알갱이 같은 두근거림이 계속 심장에서 퍼져 나왔다. 왠지, 지금, 이 사람과 스타트라인을 밟게 될 것만 같았다.

 


존 메이어의 음색이 노을과 만나 집 안을 떠돌았다. 필 콜린스의 노래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지우가 먹다 남긴 브라우니 조각을 바라보았다. 지우는 소파에 누워 노을빛에 그을린 채 자고 있었다. 나는 순간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갑작스러워 오히려 당당했다. 입을 맞추면 그가 분명히 깰 테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을래. 백일홍과 국화, 알로에가 응원을 해 주었다. 필 콜린스가 음반 표지에서 나에게 힘을 내라고 웃어주었다. 나는 머뭇 머뭇대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분명히 모자란 사람이지만,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나도 모자란 면이 있기에, 서로 그러한 점들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최고의 선택인가? 나는, 막 저물어가는 태양빛의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접촉면이 아주 미세하게, 입김으로 닿았다고 해도 믿을 만큼.

그는 계속 잠을 잤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분명히 내가 입을 맞추었을 때 순수한 미소가 입에 고였었는데. 그에게 비친 것은 이제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태양빛의 마지막 여명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와 함께 새로운 여명을 쬐었다. 그의 팔을 베었다. 그는 몸을 비틀었을 뿐 여전히 깨지 않았다. 나는 좋은 꿈을 꾸라고 말해주었다. 눈으로 말해주었다.

 


그 날 밤, 엄마와 나는 말없이 식사했다. 식탁 한 가운데서 흘러나오는 밀랍 양초의 흔들거리는 불빛이 우리 모녀의 그림자를 떨리게 했다. 나는 자반 고등어 몇 점을 먹다 말았다. 식탁 주변엔 매가리 없는 기운이 감돌았고, 나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등어 옆에 있는 채 썬 오이를 몇 개 집어 먹었다. 엄마는 넋이 나가거나 정말 지루하거나 둘 중 하나의 의미를 지닌 표정으로 밥풀을 깨작깨작 씹고 있었다.

-그래, 오늘 하루는 어땠어. 엄마는 죽을 듯이 일하고 난 뒤 지금 처음으로 밥 먹는데.

-뭐 그냥 그랬어요. 평소와 다름없는 평일이었죠. .

엄마는 굳이 저렇게 불편한 뉘앙스를 지닌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오늘 엄마가 뭐라 그랬어, 씽크대에 남아있는 음식물 찌꺼기가 온 집안에 풍겨서 머리가 아프잖아. 제 때 버려야지. 삼일 전에 먹은 음식을 엄마가 오늘 기억해야 하겠니?

-미안해요, 하루 종일 넋이 나간 숲짐승처럼 집 안만 돌아다녔더니..

엄마에겐 그것은 핑계 중에서도 가장 하찮은 핑계로 들렸나 보다. 아직 내게 남아있는 소녀의 서정적인 정신을 마구 짓밟고 올라서기라도 하듯 툭 쏘아 붙였다.

-그게 핑계야? 너같이 젊은 애가 일 분 일 초라도 허투루 보내면 안 될 판에 하루 종일 넋을 놓고 있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곧 있으면 고등학교 입학 시험도 봐야 하고, 너 다닐 학원도 알아봐야 하는데 말이야,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잖아. 너 스스로가!

엄마는 히스테릭을 부리면서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그 때문에 두껍게 칠한 눈썹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졌고, 바른 파운데이션 가루가 밥풀 위로 살짝 떨어졌다. 나는 그 광경을 우스움이 아닌 불안함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런 히스테릭함을 어머니에게서 항상 느껴온 나라고 해도, 항상 마주할 때마다 무서운 레퀴엠을 들은 듯 울렁거리는 소화기관들은 어떻게 다룰 수 없나 보다.

-잘 먹었습니다. 맛있었어요.

나는 항상 엄마한테 대든 적이 없었다. 그저 소원하고 원만하게 관계를 풀어가려고 애썼다. 하지만 당신은 바깥세상에서 받은 편견과 차별과 스트레스를 피붙이에게 모조리 풀어버렸다.

어머니의 해방감과 만족감은 곧 나에게 또 다른 구속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살짝 엄마의 눈을 응시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엄마는 또 무엇이 불편한가, 내 눈을 살짝 느낄 수 있을 만큼만 피했다.

난 내 방으로 올라가 내 옷 냄새를 맡았다. 향수 냄새가 사라지고 어렴풋하게 살 냄새가 풍겨왔다. 냄새를 맡는 상태로 방 안 전체를 훑었다. 매일 들어오는 방이지만 오늘따라 뭔가 낯설게 느껴졌다. 바닥에 흩어진 양말 뭉치하며 풀다 만 선물 꾸러미에 지우에게서 온 편지 더미가 책상 한 구석에 민둥산처럼 쌓여 있었다. 난 여전히 나인데, 공간은 변하지 않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듯 했다. 나의 순수함은 하루하루가 갈수록 내 머릿속에서 멀어져갔다. 창문 너머로 가로등 불빛이 괴상한 선을 그리며 산을 수놓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코를 바깥으로 들이밀었다. 여태껏 맡아본 적 없는 무의미한 가을 냄새였다. 파리한 나무들이 뿜는 산소가 폐 속으로 가득 들어와 가슴을 빵빵하게 부풀게 했다. 그 공기의 정화, 순환을 다시 바깥으로 뱉어내니, 그다지 추운 날씨가 아님에도 짙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내 마음 속 고독의 증기가 하늘로 홀홀히 날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땐 맡을 수 없었던 그 무엇인가의 냄새가 후각세포를 흔들어댔다. 그것이 무엇일까? 방문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무엇일까.. 무엇일까..

 


 


 


 


4.윤태

-, 진짜 이놈만 잡았으면 펜타킬인데 말이야, 봤냐, 이 자식 집 안가고 부쉬에서 뭐하지? 궁 쏴봐.

옆 자리에서 친구가 허심탄회한 은어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난 그저 빈자리에서 다리를 올리고 의자에 기대어 앉아 물끄러미 그가 하는 게임 화면과 친구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친구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또 다른 친구와 투닥거리기도 하고, 박장대소도 하며 게임에 몰입해 있었다. 나는 그러한 위선적인 장면이 너무 싫었다. 또한 멍청하고 아둔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 장면이 너무 싫었다. 일시적인 소모일 뿐인 그 비생산적인 행동을 친구로서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양심의 가책이 들었다. 그래서 몰래 옆으로 다가가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눌러버렸다.

-, 지금 뭐하는거야, 왜 꺼! 이 자식이 돌았나.

-게임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 볼링이나 치러 가자. 임마, 이게 뭐냐 두 시간째.

친구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어이없어하는 표정일 거라고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왜 어이 없는거지? 나도 어이가 없어서 그 표정을 따라했다.

-미친놈이, 내가 내 돈내고 게임한다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야. 볼링은 니 여자친구랑 치러 가 이 자식아, 지금 한창 중요한 판이었단 말이야, 그렇지 않냐? 얘 왜이래?

그의 옆에 앉은 좀 뚱하게 생긴 다른 친구가 나를 영혼없이 바라보며 동의했다.

-윤태야, 그렇게 병신같이 서있지 말고 걍 꺼져. 이런 싸이코패스는 내 살다 살다 처음본다 야.

나는 순간 깊은 모멸감을 느꼈다. 그러고서는 과거의 스크린이 친구들의 조롱과 함께 뒤섞여 내 눈앞으로 지나갔다. 스크린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인 올리비아 뉴튼 존의 let me be there의 노래와 함께 모순된 상태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나는 그 속에서 영화같은 장면을 보았다. 나의 불우한 어린 시절과, 친구들의 희죽거림이 뭉크의 절규처럼 기이한 형상으로 휘어졌다. 나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맹한 놈에게 주먹을 갈겼다. 그는 내가 예전에 때려 죽인 강아지처럼 픽 쓰러져 머리를 감쌌다. 나는 주변에 있는 흉기라 할 수 있는 것들을 들어 내가 힘이 빠져 쓰러지기 직전까지 두 놈을 연신 패버렸다. 한 놈은 생사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맞아 움직이지 않았고, 다른 한 놈은 뺨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나지막이 신음소리를 냈다.

아마 눈물은 피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았겠지만, 오열도 했을 것이다. 피시방 주인은 이미 경찰에 신고했는지 밖에 나가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고, 피시방에 있던 사람들 전부 나와 내 친구들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승리감과 후련함에 한참을 서 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피시방 주인이 역시 나를 말렸다.

-잠깐 기다려 봐, 학생.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친구를 저렇게 때리고 그러면 쓰나? 피가 저리 나는데, 지금 가버리면 나중에 정말 큰일 나는 수가 있어. 여기서 해결하고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