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갤러리의 한 분께서 철학 입문서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하여 적당한 철학 입문서가 무엇이 있을까 떠올려 보다가 마땅한 것이 생각나지 아니하여 그것을 제가 적어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련의 글을 적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어의 의존명사에 대한 관찰에서 출발하여 정립하게 된 제 고유의 철학 이론이 있습니다. 바로 [터/리/수/법/것]으로 구성되는 목적론입니다. 그것들을 신체의 각 부위와 연관지어서 목적의 구성이 인간 유기체의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저 다섯 요소가 불교의 [색/수/상/행/식]의 오온과 대응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퇴계 선생의 경敬은 터에 해당하고 율곡 선생의 성誠은 것에 해당한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터에 해당하는 것은 조건과 가정 인과관계에 대한 사유입니다. 그것은 가능세계에 대한 구상과 그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에 대한 사유로 전이됩니다.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써 보시한다는 가정 하에 그들이 복덕을 얻는다면 그 양이 얼마나 되겠느냐 하는 식의 이야기인 것이지요. 사람은 비참한 현실에 대비하여 가능세계로서 대덕大德이라는 파라다이그마 하나님의 나라를 그리게 됩니다. 비참한 현실의 존재가 이상세계에 이르는 길이 바로 도道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라는 것입니다. 헤겔의 일자一者는 전체를 하나의 개념으로 포착한 것인데 그것이 것에 해당합니다. 존재를 하나의 것으로 포착하면 그로부터 소외된 자신이 의식이 남습니다. 의지를 하나의 것으로 포착하면 존재가 외화外化되고 목적이 남습니다. 것은 불교 용어로 말하자면 식識입니다. 반야삼매의 공空 가운데에는 그래서 어떤 것이라고 요약된 이전의 철학이론들이 외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이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무지역무득... 공 가운데 든 사람은 아공我空의 상태에서 반야지혜로서 법法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야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으로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는 의미도 가집니다. 정해진 법의 존재가 없다는 것은 역사의 진행경로에 따라 시대정신이 달라진다는 말과도 통하죠. 시대정신을 어떠한 것이라고 포착한 사람은 목적한 세계로 가기 위한 수단을 구상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실행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실행을 하면 세상도 변화하고 자기 자신도 변합니다. 금강경의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와즈라체디까 쁘라갸빠라미따 수뜨라 입니다. 와즈라(번개/금강석)와 같이 집착을 부수어 깨달음으로 이르는 지혜를 설하는 경이라는 뜻이죠. 우리는 시대가 변하였음에도 여전히 [산업화/민주화]의 가치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뗏목을 타고 건넜으면 그 뗏목에 집착하지 말라고요. 뗏목이 바로 법상法相입니다. 법은 수단이고 방법이고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도道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뗏목을 만들어 놓으면 그걸 타고 건널 사람이 있어야겠죠. 또 타고 건넜으면 뗏목은 비게 되는 것입니다. 법공法空을 깨달아야겠죠. 여여如如한 법이라는 것은 시대정신이 변하는 가운데에서도 변치 않는 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구철학의 변증법과 대학 중용의 가르침이 다 통하는 말들입니다. 아마 그에 대한 내용이 다음 글의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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