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간단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인류 문명은 '여유를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과 노동의 목적도 결국에는 여유를 찾아나가기 위한 과정 위에서 존재한다. 사람들에게 왜 노동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답변은 아주 다양하게 나오겠지만, 결국 그 모든 답변들은 여유라는 전제 하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동을 한다는 것도 결국에는 여유 시간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고, 취미 생활을 위해 노동을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비싼 물건을 사기 위해 노동을 한다는 것도 결국 비싼 물건을 사서 즐길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있어야 하고 여행을 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여유 시간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삶과 노동이 여유를 찾아나가기 위한 과정 속에서 존재한다고 해도 나는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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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여유'는 객관적인 소득이나 경제력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내가 예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발칸 반도나 튀르키예에서는 현재 한국에서 젊고 건강한 남성이라면 1개월 안에 쉽게 벌 수 있는 금액인 100~150만원 정도의 금액으로 대여섯명의 일가족이 1개월간 살아가는 경우도 흔하다. 아무리 현지 물가가 한국보다 싸다고 하나, 자동차나 전자제품과 같이 한국보다 비싼 것들도 많기도 하며 부양 인원이 많다는 점에서 그들의 생활 수준은 객관적으로 볼 때 절대로 한국의 평범한 1인 독신 남성 가구보다 여유롭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왜 한국 남성들은 여유를 찾지 못하며 항상 조급해할까? 그리고 왜 한국인들은 여유를 찾아야 할까? 이 두 가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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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남성들이 여유를 찾지 못하며 조급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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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이유가 꽤나 간단하다. 한국 사회에서 어렸을 때부터 받은 교육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는 남성들에게 매우 가혹한 조건을 들이대면서 이것을 충족하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배제해 버리겠다고 위협을 한다. 생각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회의 틀을 깨고 나가는 것이 매우 어렵다. 내가 예전에도 글을 쓴 적이 있지만, 도대체 왜 이슬람 여성들은 자유로운 독일에서 히잡 하나도 벗어던지지 못할까?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왜 자기 의사로 이혼하지 못할까? 그들의 가족 외에는 히잡을 벗어던진다고 해서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데 그들은 굳이 히잡을 쓰고 다니며 이슬람 질서를 독일에서도 철저히 지키는 경우가 많다(물론 안그런 사람도 많음). 이것은 철저히 일가족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슬람 사회의 특성에 기인한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규칙을 어겨서 가족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그 여성에게 거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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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슬람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역사에서 남자가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으며, 징병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탈락하는 것을 매우 수치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죽으러 가는 길에 면제받은 것은 대단히 기뻐해야 할 일 같다. 하지만 전쟁터에 나가지 못했다는 것은 그 당시 사회의 기준에서 제대로 된 남성이 아니라는 일종의 시그널이었고, 그것이 대다수의 남성들에게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남성에서 배제됨을 의미했기 때문에 그들은 죽을 확률이 높더라도 전쟁에 나가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사실상 세계의 전부였던 곳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절대 다수의 한국 남성들도 사회에서 남성들에게 요구하는 조건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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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말도 안되는 가혹한 조건을 '당연히 해야 할 것'으로 강요받고 살아가기 때문에 절대 다수의 남성들이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한국에서 남성들에게 요구하는 조건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것에 가깝고, 소수에게도 매우 힘들며, 그 조건을 여유를 누리며 가볍게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2. 왜 한국인들은 여유를 찾아야 하는가?
-- 이것도 마찬가지로 이유가 간단하다. 우리는 여유가 있어야만 인간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출근 시간이 20분 남았는데, 회사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운전을 할 때 앞 차에게 양보도 하고 보행자에게 양보도 하면서 여유로운 배려를 할 수 있다. 반면에 출근 시간이 10분 남았는데 회사까지는 20분이 걸린다고 하면 객관적으로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날카롭고 공격적으로 변하기 쉽다. 왠지 내가 있는 차선만 차가 빠지지 않는 것 같고, 괜히 보행자는 내 앞에서만 느릿느릿 시간을 끄는 것 같고, 신호등은 내가 갈 때만 빨간불이 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여유롭게 시간이 남았을 때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던 일들이 괜히 큰 짜증의 요인이 된다. 쇼펜하우어가 신체적 건강이 행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몸이 아프게 되면 나 자신의 여유가 없어지고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별것도 아닌 일로 날카롭고 공격적으로 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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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전에 쓴 글에서, 굳이 자기가 좋은 사람일 필요가 없을 때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 것과 같이, 사람은 타고난 성품이나 교육에 의해서 어느 정도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이다. 제아무리 성품이 평소에 좋은 사람이라도 매우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성품이 좋지 않은 사람보다 더 화를 쉽게 내고 공격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상황'은 무엇이 결정할까? 내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여유'가 그 상황을 결정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리고 그 여유라는 것은 사회와 개인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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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는 사람의 성품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여유가 없으면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도 며칠을 굶긴 후에 음식을 매우 비싸게 판다면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돈 욕심이 엄청나고, 큰 돈이 급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말도 안되는 사기에도 쉽게 넘어가게 된다. 이것에 대해서는 내가 예전에 쓴 글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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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는 어떤 상황에서 제일 많을까? 그것은 조급할 때이다. 퇴직금과 모아놓은 돈이 몇억씩이나 되는 대기업, 은행 퇴직자들이 그들의 돈을 허무하게 날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바로 그들이 조급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부양할 사람이 없는 건강한 미니멀리스트 독신 남성이라면 그 돈을 잃어버릴 확률이 매우 적다. 자기의 생활 수준을 확 낮춰버린 후에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일반적으로 부동산 대출금, 자녀 등이 있기 때문에 느긋하게 행동하기 어려우며, 생활 수준을 낮추는 것도 매우 어렵다. 따라서 그들은 서둘러서 투자를 하거나 사업을 벌이다가 한순간에 사기를 당하거나 비이성적 판단을 하게 되어 돈을 날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 판단들은 머리가 좋은 그들이라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전혀 하지 않았을 만한 어처구니없는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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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실수들은 단순히 내가 앞에서 예시를 든 퇴직자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매우 널리 이루어진다.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어서 그들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킨 후에, 한순간에 그들의 인생을 강탈하는 메커니즘은 한국 사회가 일부러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널리 보편화되어 있다. 특히 이것은 남성들에게 매우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군대라는 제도로 2년에 달하는 인생을 강제로 강탈한 후에 동년배의 여성, 면제자들과 경쟁시키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이 문화가 존재하는 한국에서는 실제로 남들과 다른 길을 가기만 하면 매우 가혹한 사회적인 보복(?)이 뒤따른다. 다른 나라라고 해서 나이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나이 차별이 유독 매우 심하다. 이렇게 사회적으로도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다보니 사람들 입장에서는 실제로 위협을 느끼게 되고, 그들의 조급증은 더욱 심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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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전에 쓴 글에서도 나온 내용이지만, 한국에서는 남성들에게 위험 선호자가 되라는 압력이 매우 강하다. 원래 남성이 여성에 비해서 위험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것에 대해서 사회적 압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매우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결혼에서도 여성들이 상향혼 성격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매우 뚜렷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전 문단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시간을 강제로 빼앗기까지 하니 나이에 대한 압력이 강한 한국에서 남성들은 더욱 조급증이 심해질 수 밖에 없고, 더 위험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력에 놓여 있다. 그런데 내가 예전에 쓴 글에서 나오듯이 이제 한국은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위험에 대한 보상을 많이 받기 어려운 저성장 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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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안정적이라고 생각되는 직업에서는 아직도 팽창 사회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을 선호하는 사람이 보상을 받기 매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그만큼 위험 선호자가 되는 것이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성들은 아직도 위험 속에 뛰어들며 당연히 그 결과는 참담한 출산율로 나오게 된다. 아마도 여성들의 상향혼 본능이 서구권처럼 약화되거나 위험에 대한 보상이 팽창 국가인 미국이나 개발도상국처럼 주어지지 않는 한,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미국은 선진국 중에서도 팽창 국가인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이다. 나는 한국인들이 자기들이 북유럽과 다르다는 것은 너무 잘 알면서 자기들이 미국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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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사람을 사회적으로 위협하고, 그리고 조급하게 생각하게 만들어서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킨 후에 그 사람을 빚더미에 올려놓고 착취하는 사악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위협을 무시하고 느긋하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카르마를 돌려받는 것을 기쁘게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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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사람이 여유를 찾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일 효율을 어마어마하게 개선하는 일이다. 둘째,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탕핑을 하자'라는 것은 결코 인생을 포기하고 대충 살자는 의미가 아니다. 욕심을 놓음으로써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이지 않고 배려를 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자는 뜻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그렇게 여유를 찾는 데 있어서 최악의 시스템이므로 한국 사회의 아비투스는 젊은 남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배격해야 할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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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배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적절한 스트레스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노력을 하고 개인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몸에 반드시 필요한 물조차 지나치게 마시면 저나트륨혈증으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독이 되듯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도 지나치다면 우리에게 독이 된다. 한국 사회는 젊은 남성들에게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을 것을 강요한다. 따라서 젊은 남성들 입장에서는 스트레스와 여유 사이에서 어느 정도 줄타기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그것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욕심을 어느 정도 내려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