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입니다. 

즉, 세상의 한계는 나의 한계입니다.

이는 내가 알고있는 것은, 내가 몸담고 있는 세상의 일부입니다.

나의 지성 그리고 감성과 이성으로 인하어 내 세상에 들어온 정보는 내 세상의 한계를 명확히 구분짓습니다.

우리는 세상안에 있는 일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침묵은, 세상 안, 정확히는 간섭세계의 논제에 대해서, 즉 세상 속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을 지닙니다. 

이 말은 세상 안에 알 수 있는 논제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제가 말 하고자 하는 세상의 한계는, 말 할 수 있는 영역에 한합니다. 

즉, 세상 밖의 것은 논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의 존재는 세상 밖의 존재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논의 하는가?” 라는 질문은 사변적 특성을 기인하여 알 수 없을 뿐이지 그 존재의 유무를 지나 그 논제가 이미 세상 안에 있음을 뜻합니다.

단순한 예시로, ’추측‘은 세상 밖의 논제를 세상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인식론적 트리거입니다.

그렇기에 ‘나‘의 존재와 나의 생각의 한계는 창조하는 것 이전에 세상 밖에 있는 것을 세상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정확히는 제가 정의한 세계에 따르면, 외세계의 간섭세계의 논제는 이미 세상 안에 있을 뿐, 외세계의 한계는 즉, 세계의 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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