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란 존재하는가?

신의 존재가 요청당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많다.

형이상학의 거장 임마누엘 칸트또한 신의 존재를 요청하였다.

그는 신을 믿어서 신을 요청한 것이 아니였다.

쇼펜하우어는 신의 존재를 부정했지만, 시간의 선험성마저 부정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관측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현대에 들어서는 이는 생물학적, 병리학적으로 사람이 어떻게 사물을 인지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형이상학과 신앙은 왜 아직도 존재하는 것인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본능이라면, 이는 설명 가능한 것인가?

나는 신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세계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려줄 사람으로서.



비트겐슈타인은 이를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신앙, 종교, 윤리 등 논리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에 대한 중요성은 논할 수 없는 것을 말이다.

인간은 그렇다, 논할 수 없을 수록 그에 대한 가치는 사변적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토대로 삼아 이를 가치화 시킨다.

가치화의 근원은 ‘신‘이 있을 것이다.

중세 유럽은 신을 매개로하여 전쟁을 합리화 하였다.

그것이 윤리에 어긋날 행동이라 할지라도, 신을 위해서라면 가차없이 일을 벌렸다.

‘신‘은 너무나도 가치화된 인간의 본능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신‘에게 있어서 무슨 존재일지 헤아려 보는 것, 이것이 나는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왜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만 신을 바라봐야 하는가?

신이 있다면, 신의 관점에서의 관측된 나는 무엇인가?

끊임없는 질문의 끝은, 초월적 세상의 산물이 ’신’인 것을 나타내는 좋은 계기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은 신이 만든 것이 될 것이다.

공간이 없는 곳에서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신은 없다.

그 이유로는 공간에서 공간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의 간섭이 세상에 있다고 한다면, 이는 명백한 오류다.

신은 죽은 게 아니고 애초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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