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지위가 되면 그게 좋은 것인가.


니체 철학서를 보고 이를 오용하거나 제멋대로 받아들이거나

니체 철학서의 해석대로 살아가는 자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어.


이들은 자신의 무능이나 자신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굉장히 위축감이나 실패감을 많이 느끼고, 사회적 민감성이 센지 상대적 박탈감도 자주 느낌.


그래서 이들은 이겨야한다는 점에 과도하게 집착함. 요즘 들어 이러한 승리갈구를 '아는 것'으로 하는 자들이 많아졌다고 생각함.


내가 이들이 니체 철학서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고 여기는 까닭은 니체 철학서를 읽지 않은 이가 아니 책이라면 인상을 찌푸리는 이가 니체 철학서를 제멋대로 받아들인 사람이나 이를 정치에 동원하는 사람과 똑같았기 때문임.


철갤에 예전에도 말한 바 있는 그 나르시시즘. 나는 불건강한 나르시시즘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이 불건강한 나르시시즘은 발생원인이 과거의 결핍에 지나치게 빠져 깨어나버린 피해의식으로 인하여 부정감정을 방구석에 있어도 잘 느끼는 바에서 도출된다고 봄. 그래서 이들은 사람 간 비교만 나오면 누가 더 잘났는지 그걸 계속 따짐. 경쟁이란 건 이들에게 외부 사람에 대한 적대감만 일으키는 환경임. 이걸 이들은 본능적인 거라 당연하다고 생각함. 근데 당연하지 않다고 봄. 만약 선과 악이 있다면, 이들이 자신들은 선이라면서 나름의 권선징악 원리에 의하여 악을 행사하는 때가 있는데 이럴 때 주된 이유가 당연하게 경쟁상황에 자신이나 타인을 놓여지게 하면 안되는 건데 상대가 놓여지게 했다는 것임. 그래서 상대가 먼저 잘못했으니까 그 잘못에 대해서 내로남불식으로 되돌려주겠다는 방식으로 나오는 것도 다수 목격함. 이들은 경쟁 없는 환경을 꿈꾸는데, 자기네들이 위축감만 받을 것 같으면 자동으로 상대랑 임의로 경쟁상태에 들어가버리는 것도 봤음. 이들은 여기서 이겨야 불안이 사라져. 조막만한 점이라도 이겨야함. 그래야 정신승리가 가능하고 불안이 사라지거든.


지식습득은 좋은 것이고 아무리 앎은 힘이라지만, 자신의 어떤 무너지면 안되는 정체성 비슷한 것을 지식에 두는 건 스스로에게도 위험하다고 여기고 사회적으로도 좋은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어렵다고 생각함.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의 내면만이 현실이라 밖에서 감각으로 받아온 것들을 동원해서 만든 그 내면적인 것들로 지식을 만들고 이게 허상 즉 이치에 맞지 않는 헛된 망상이될 경우가 있기 때문임. 그 헛된 망상이 자신의 정체성이 되고, 이 정체성은 호응해주는 사람을 꼭 필요로 한다. '꼭 그래야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망상 내용이 망상이라기보단 공상쯤에서 멈추면 다행인데 이들은 그 망상 내용이 왜곡되어서 현실을 뒤집어 놓은 것들이 되기 쉽기 때문에 이들은 자기 빼고 온 세상이 부조리로 보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보기 십상이거든. 그럼 현실은 잘못됐는데 자기는 확신에 차서 자신만이 정답이기에 얘가 얼마나 세상살이가 힘들겠어. 그래서 자신과 똑같은 기구한 처지이거나 동일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꼭 옆에 있어서 서로 에너지 채워줘야 함. 이래서 스스로에게도 위험하며 사회적으로도 좋지 않은 효과를 낸다고 봄.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공부를 못했거나 삶이 기구해서 그런지 자신은 현실적이라는 말로 상황의존 즉 직접 감각한 것만이 진실이고 나머진 의심대상이라는 점에 과하게 들어감.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감각혼란이 주된 관심대상이 되기도 하는 듯. 요사이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확신 갖는 것 그리고 그들만의 집단에서는 정당하고 열광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왜 그런 걸까. 그런 이들이 니체철학에 제멋대로 빠지거나 하는 거겠지.


내가 바보 거를 때 괜히 수능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 그 시험은 지식으로 푸는 시험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바보들이 잘 걸러지거든. 여기서 바보란 정확하게는 지식이 없는 이가 아니라 반'지성'주의자를 뜻함. 예전 1950-1960년대 복음주의 교회에 많았던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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