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첫 번째의 영향은 여성들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금성의 신비 학교에 있었을 때부터, 우리는 남성과 여성 간의 갈등이 추락한 존재들에 의해 획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분명히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 영적인 운동을 펼치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는 여성들도 어떠한 직위를 가질 수 있으며, 직위를 결정하는 것은 성(性)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의식수준이 되는, 그러한 운동이 전개되기를 원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의식의 144단계에서 가장 높은 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주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베드로를 포함하여, 예수와 가까웠던 추종자들에게 말했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러한 처음 33일 동안, 자연발생적으로 여러 개의 모임들이 생겨났으며, 특히 하나의 모임이 두드러졌습니다. 작은 산기슭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였으며, 이들은 각자의 의식수준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토론은 오락가락했으며,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의 사명이 지닌 본질, 가르침을 전파하는 방법, 그리고 운동을 조직화하는 방법들에 대해, 각자가 갖고 있던 비전을 발표했습니다. 모임은 점차적으로 두 개의 주요한 그룹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은 맨 위에 한 사람이 존재하며, 그 하부에 계층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중앙집권적인 운동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지도자로서, 이 자리에 있다면, 이런 식이 되었을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어느 누구도 예수와 같지 않다는 것(예수처럼 높은 의식수준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적은 숫자의 사람들(a small group of people)이 운동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보다 높은 의식을 가졌던 그룹의 사람들은 여기에 반대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직관적인 접촉을 통해, 예수가 우리 모두를 분명히 인도할 수 있으므로, 강한 중앙집권적인 조직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운동을 지지하는 말을 했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은 마그다(Magda)였습니다. 그녀는 빈 무덤 밖에서 예수가 자신에게 나타났을 때, 예수는 상승한 상태의 자신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 영(Spirit)이 운동을 이끌어가는 이미지를 보여주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녀가 보았던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끝나갈 무렵, 베드로가 일어나, 예수가 그러한 모습을 여인에게 보여주었을 리가 없다고 말하며, 마그다에게 이의(異義)를 제기했습니다. 놀랍게도, 베드로의 이러한 견해에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으며, 나는 참석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수와 그녀 사이에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운동을 펼치는 데 있어, 그녀가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문제에 예수가 동의했을 거라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추측했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어섰습니다. 나는 기독교 운동에서 어떤 지도자적인 지위를 갖는 것이 내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영(Spirit)이 말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나는 “베드로,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중앙집권적인 운동을 창시한다고 가정했을 때, 누가 선도적인 위원회(leading council)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모두가 들었던 것처럼, 예수가 여성의 참된 역할에 대해, 그리고 여성들이 영적으로 남성들과 동등하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나도 들은 적이 있어. 우리가 운동을 전개하고자 한다면, 집행 위원회는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동동해야 하며, 내가 보기에는 마그다는 그러한 집행 위원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말했습니다.
나의 마지막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베드로가 내 말을 가로채면서 “당신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거야. 우리는 가부장적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모든 곳에서 남성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예수는 우리에게 세상 속으로 들어가,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만들라고 지시했어. 여성이 이 운동을 주도한다면, 어떻게 이러한 일을 이룰 수가 있겠어?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그야말로 비웃을 것이며, 우리가 여성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가 하는 말을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거야. 여성이 지도자가 된다면, 예수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은 불가능해지며. 운동을 시작도 하기 전에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막달라 마리아의 경우, 그녀가 예수와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는 더 이상 여기에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운동을 계속 펼쳐질 수 있도록 이끌어갈 사람이야. 그리고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야 하는 거야. 당신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이 없었잖아. 반면에, 나는 여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듯이, 예수는 나를 이 운동을 일으켜 세울 반석이라고 불렀어.”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주위를 둘러보았으며, 나는 아무 준비도 없이 “베드로, 나는 세 군데 다른 출처들로부터(from three different sources) 예수가 체포된 후, 네가 예수의 추종자라는 것을 부정했다는 말을 들었어. 나한테는 이것이 네가 예수와 끝까지 함께 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표시로, 그리고 예수와 하나가 되어, 필요하다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겠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여. 네가 예수와 하나라는 것을 세 번이나 부정했으면서, 어떻게 예수를 대변한다고 주장할 수 있나?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베드로가 예수를 대변하는데 적합한 사람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는가? 예수가 영(Spirit)의 힘을 통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지침(가르침)을 전하는 것은 단지 시간 문제에 불과한 것인데, 왜 굳이 우리가 지도체제(leadership structure)를 가져야 한다는 결정을 할 필요가 있나? 예수가 약속했던 것, 즉 상승 마스터들이 우리에게 또 다른 보혜사(comforter), 즉 상승 마스터로서의 예수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을 잊지 마. 누가 운동을 이끌 것인지를, 우리가 왜 서둘러서,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 거지? 예수가 우리를 안내하도록 기다리는 것이 옳은 게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으며, 베드로의 내면에서 갈등이 일어났다고 나는 말할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의 일부는 내가 말한 내용이 이치에 맞는다고 인식했지만, 그의 또 다른 일부는 만약 이 주장에서 내가 이긴다면, 베드로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지배적인 심리 기제(psychological mechanism)는 자신은 절대로 틀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으므로, 베드로는 내 말에 동의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베드로가 내 주장을 반박할 뭔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뿐만 아니라 그의 오라가 열려 있는 것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루시퍼를 통제하고 있던 정체성의 영역에 존재했던 어둠의 마스터로부터 어떠한 자극이 직접 베드로에게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태도가 갑자기 혼란한 상태에서 확신에 찬 태도로 바뀌었으며, 베드로는 큰 목소리로 “예수가 체포된 후,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 여기에 있는 당신들 모두 어디에 있었는가? (나를 쳐다보며) 당신도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며) 당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잖아. 우리들 가운데 아무도 예수와 끝까지 함께 할 수가 없었으며, 이것은 우리 모두가 예수를 대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줄 뿐이야. 따라서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가 예수를 대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 하지만 예수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므로, 예수를 어느 정도는 대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따라서 각자가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 자신은 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예수의 메시지를 들은 대로 전파할 생각이며, 나와 함께 할 사람들은 나와 함께 하기를 바래. 나는 결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여성이 방해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며, 따라서 나는 남성 주도의 운동을 조직하여, 우리가 들은 대로, 예수의 메시지를 전파하는데, 헌신할 생각이야. 나와 함께 하지 않을 사람들은 각자 제 갈 길로 가서, 각자가 이해하는 대로 메시지를 전파하면 될 것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베드로는 할 말이 없는 것처럼, 입을 다물었지만, 사실은 정체성에 존재하는 자신의 근원과 연결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나의 외적인 마음은 베드로의 주장을 반박하려고 했지만, 직관력을 통해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나는 묵묵히 침묵을 유지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참석하고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특히, 여성이 지도자적인 역할을 하는 운동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베드로의 말에 동의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대다수에게는, 이 문제가 실질적으로 여성이 이끄는 운동을 가부장적인 문화가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시점에서 내 가슴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기독교 운동이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그룹에 의해 갇히게 되는 모습을 갑자기 보게 되었습니다. 운동의 방향이 예수와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관점에 따라 운동의 방향이 결정되는 전통적인 방식을, 베드로가 따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운동이 여러 개의 분파로 쪼개지고, 이러한 분파들 가운데 일부는 예수와 직접 교감하는데 실제로 전념하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나는 이것이 점차적으로 중앙집권적인 교회의 출현으로, 즉 예수와 하나라는 것을 부정했던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의 출현으로 이어지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의 중앙집권적인 교회가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결국 가톨릭교회가 되는 것도 보았습니다. 나는 가톨릭교회가 베드로를 이 교회의 창시자로 여기며, 공식적인 성경이나, 예수의 실질적인 말에 어떠한 근거도 없는, 최초의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집단의식에 기초하여, 나는 이렇게 밖에 전개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물질 우주의 4개 옥타브들에 추락한 존재들, 즉 내적인 안내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 존재들이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이들도 물질적인 결과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들의 의식을 마땅히 표현할 수가 있어야 했습니다. 당시의 의식수준을 감안하면, 예수의 신비적인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사람들의 숫자는 신비적인 형태의 참된 전통이 확립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신비적인 측면은 계속 살아남아, 재현되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승 마스터로서의 예수가 영적으로 중요 인물이 될 2000년이라는 기간(쌍어궁 시대)의 마지막 무렵이 특히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베드로의 의식에 관여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니며, 예수와 직접적으로 교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 운동에서, 베드로로 인해 야기된 이러한 분열은 분수령이 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만약 예수의 의도가 이루어졌더라면, 기독교 운동에서 여성이 상승 마스터인 예수로부터 구술을 받을 수 있는 메신저가 되는 것을 포함하여, 상당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운동이 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운동이 반대에 부딪치게 되겠지만, 그래도 결국 가톨릭교회로 전락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이 운동은 지난 2000년에 걸쳐 우리가 보아왔던 많은 전쟁과 기타 잔혹한 행위들을 겪지 않고도, 서구의 역사를 아주 극적인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을 것입니다. 사회의 모든 측면들에서, 남성과 여성 간에 평등이라는 전통이 2000년에 걸쳐 뿌리를 내렸더라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아주 많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주장을 살펴보면, 이 주장이 예수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꾸짖었을 때의 의식과 정확하게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는 분명히 여성에 대한 평등을 주장하는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가부장적인 사회에 도전하려고 했었습니다. 베드로의 주장은 사회가 가부장적인 사회이므로, 그러한 사회에 대해 우리가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가부장적인 사회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 따르기를 바라는 사탄의 의식입니다.
세상
천국 성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