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를 것 없는 조용한 아침이였다.

 

 

나는 편의점에 들려 눈이 풀려 계산대 뒤에 서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이상하게 여기고 헛기침을 할 때까지

 

 

담배를 고르며 서있다가, H사의 담배를 두 갑 계산하고 나왔다.

 

 

포장지를 뜯어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애견 가게 앞에서 걸음을 잠시 멈췄다. 흰 털로 뒤덮인

 

 

조그만 말티즈, 검은 털로 덮인 푸들, 그리고 두 색이 섞인 잿빛의 고양이들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고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담배가 더이상 들기 힘들 정도로 짧아졌을 무렵에 카페에 도착한 나는 조심스럽게 유리문을 당겨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내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문을 열 정도로 세심한 성격은 전혀 아니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내가 아는 사람들은 나를 괴팍하고 예측하기 힘들다며 은연중에 디스를 하기도 했었지만, 나는 그런

 

 

말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여전히 그들 눈에는 이상한 짓을 별 생각없이 하고 다녔다.

 

 

그런데 어제 밤 일이 나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사실 몇주에 한번, 혹은 몇일에 한번 씩은

 

 

으레 친구들과 술 한잔씩 하며 서로의 고초를 풀기도 하고, 지나갔던 추억들을 되감으며 취기 반 진담 반

 

 

이말 저말 할 법도 하다. 하지만 어제 일은 나로서도 꽤 기분이 나빠지고 눈살이 찌부려졌다.

 

 

사건은 이랬다. 대학때부터 친했던 민철이와 그에게 소개 시켜준 같은 고등학교 출신 재환이와 나는

 

 

서로 취미도 비슷하고, 시간도 몇번 남아서 자주 어울리고 몇시간씩 떠들고는 했다. 재환이는 근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끔은 우리 집에서 신세 한탄을 하며 술에 찌들어 자기도 하고, 내가 그의 집에

 

 

술 몇병을 들고 찾아가서는 정신없이 떠들다가 , 지인들 말로는 내가 술에 취하면 매우 빠르게 말을 뱉어내는

 

 

고약한 취사가 있다고 한다, 자고는 했다.

 

 

어젯밤도 그런 식으로 근처 서점을 들렸다가 술병 몇개를 들고는 재환의 집에 찾아갔더니, 민철이가 먼저

 

 

와서 이미 반쯤 취한 얼굴로 축구를 보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한손에 오징어를 들고는 픽 웃으며 목을 긁어대었다.

 

 

"어. 민식!"

 

 

"축구보고 있었냐?"


 
"축구는 무슨. 그냥 어색해서 티비나 틀어놓은거지 뭐. 술사왔냐?"

 

 

"맥주는 좀 사왔지."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종이컵에 차가운 맥주를 따라 원샷했다.

 

 

 

"요즘 어이가 없는 일이 있었어."

 

 

 

재환은 우리를 두리번거리며 보더니 갑작스레 심각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지난주 토요일에 여자친구와 역 근처 영화관에서 만나

 

 

영화관 근처 파스타가게에서 근사한 런치를 먹고

 

 

그녀와 로맨틱한 영화를 보면서 격정적으로 키스를 했지.

 

 

영화를 보고 나오며, 우리는 두 손을 잡고 모텔로 들어가 서로 사랑을 나누고

 

 

서로 가쁜 숨을 내쉬며 침대에 잠시 누워있었는데

 

 

그녀가 먼저 '재환아. 사실은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라면서 심각한 얼굴로 말하는 거 아니겠어?"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술을 한 잔 따라 벌컥 들이키고는 왠지 영혼이 다친듯한 깊은 한숨을

 

 

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더니 '이제 그만 만나자' 라고 하더라고. 젠장!"

 

 

재환이는 다시 술을 한 잔 벌컥 들이키고는 온 몸을 마치 보이지 않는 상처난 밧줄로

 

 

묶은 듯 꼼짝 앉고는 바닥을 처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