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라는 행위는 결국 권위와 숭배를 해체하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이해라는 행위를 엄밀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해란 결국 인간이 해체(미분)하기를 멈추고,
특정 접합면이 주는 지식의 층위적 표면에 만족하여
그 층위에 머무르며 그것이 끝임을 무의식적으로 단정하기로
결정하는 행위이다.
진술상으로는 더 파고들어
해체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을 수 있겠으나,
일반적인 학습과 이해 과정에서 인지 주체의 내적, 무의식적 판단에 대한
메타적 상호작용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인지 주체는 결국 자신이 머물기로 한
해당 층위의 표면적 지식을 '믿기로 결정'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 그것(자체와 더불어 동반되는 당위, 엄밀성 등)은 궁극적으로
해당 개인 또는 동류의 집단의 세계관으로 기능하게 되며,
그들의 최종 권위를 가진 가치 천장이자 무의식적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해체의 주체는 이러한 무형의 가치천장을 추적하고 탐지해서,
다시 발굴자의 사명을 가지고 숭배가 은밀히 이루어지는
인간 내면의 층위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해체작업을 하고,
숭배의 대상을 적나라하게 분해하여 대중에게 내놓는다.
그들의 무형적 숭배 대상을 죽이는 셈이다.
하지만 상술된 일련의 과정들은 사실 외계(外界) 자체에
이미 인간의 인지 과정과 별개로 존재하는 실재들에 대한 작업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이 외계를 상대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벌이는 일종의 정신증적 집단 의식이기도 하다.
외계가 인간에 의해 어떻게 해체되든,
엄밀히 따지면 이는 외계에 대한 인간의 인지 구조에 대한 해체인 것이며,
외계를 구성하고 움직이며 존재하게 하는 세계의 공리(公理)나 권능에 대해서는
인간이 해체를 통해 침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가시세계를 배열하는 형이상학적, 무형적 원리를 이해하여 이용하는 것과,
그 자체를 스스로 창조 또는 파괴하는 일은 다르며
이런 층위는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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