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아야 소피아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깊은 감탄을 느꼈다. 그 압도적인 돔, 천년을 견뎌온 벽면의 흔적, 종교와 제국이 교차한 공간의 무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감탄했던 이유는 단지 그것이 "오래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공학적으로만 본다면, 우리 동네 다리에 걸린 흔한 현수교 하나가 훨씬 더 정밀하고 뛰어난 구조물일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이 ‘지금 여기에 있고 흔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무심히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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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상상해본다. 만약 2천 년 전의 고대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의 서울 거리를 걷게 된다면, 그는 아야 소피아보다도 더 크게 감탄할 대상들을 매일 마주할 것이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고물차, 신호등, 엘리베이터, 내가 쓰는 낡은 중국산 샤오미 스마트폰이 모든 것들이 그에겐 마법처럼 느껴질 테니까. 누군가의 손 안에서 영상통화가 이뤄지고, 철 덩어리가 불 없이 달리고, 버튼 하나로 방이 밝아지는 세계. 고대인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신전보다 경이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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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그렇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 ‘비일상’이라는 기대감 덕분에 우리는 먼 곳의 평범한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정작 집 근처의 숨겨진 아름다움은 놓치기 일쑤다. 어느 해안 절벽에서 본 노을보다, 집 앞 공원 벤치에서 우연히 마주한 새벽안개가 더 깊은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차이는 ‘장소’보다 ‘마음가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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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벤트도 마찬가지다. 졸업식, 결혼식, 해외여행 같은 특별한 순간들보다, 어쩌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한 장면, 예를 들어 따뜻한 국 한 그릇, 좋아하는 사람과의 짧은 대화, 해 질 무렵 창밖의 빛이 더 귀하고 깊은 울림을 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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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요한 건 우리가 얼마나 특별한 것을 경험하느냐가 아니라, 평범한 것 속에서 얼마나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느냐다. 감탄은 대상의 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에서 온다.
크 좋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