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에도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결핍을 느낄 때 불행해진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스스로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비교하고, 욕망하고, 끊임없이 ‘더 나은 나’를 상상하기 때문에 쉽게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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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요즘 나는 ‘광고’라는 것에 자주 생각이 머문다. 광고야말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결핍에 시달리게 만드는 대표적인 매개체가 아닌가?
광고의 목적은 분명하다. 누군가에게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하게 만든다'는 말 속에는 이미 함정이 숨어 있다. 상대방이 지금 현재 상태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야, 그 물건이 '갖고 싶은 것'으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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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은 패션, 뷰티, 자동차, 전자기기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장품 광고는 “지금 당신의 피부는 거칠다, 그래서 이 제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동차 광고는 “지금 타는 차로는 당신의 품격을 보여줄 수 없다”고 속삭인다. 심지어 건강기능식품 광고는 “당신은 조용히 병들고 있다”고 공포를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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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무언가를 ‘갈망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 갈망은 현재 자신에 대한 부정감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광고는 사람을 스스로를 싫어하게 만들어야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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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광고는 ‘불행 포르노’다. 포르노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며 현실과의 괴리를 조장하듯, 광고도 인간의 결핍을 자극하며 현재를 초라하게 보이게 하고, 미래의 어떤 이상향을 팔아넘긴다. 마치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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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계를 차면 당신은 성공한 사람이 됩니다.”
“이 차를 타면 여자가 당신에게 반할 겁니다.”
“이 아파트에서 살아야 진짜 삶을 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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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메시지에는 전제가 있다. “당신은 지금 그렇지 않다.”
광고는 이렇게 사람들의 자존감을 잠식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암시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사람들을 끝없는 소비의 루프 속에 가둔다. 결국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기 위한 무언가’를 소비하게 된다. 마치 스펙을 쌓는 것처럼, 외모를 가꾸는 것처럼, ‘행복한 삶’이라는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물건을 모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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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광고는 단순한 소비 유도 수단이 아니다. 삶의 기준과 가치를 조작하는 심리 장치이며, 불행을 시스템화하는 문화 기계다. 우리가 진정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불행 포르노’로부터 스스로를 단절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정말 필요한 것을 구분하고, 남이 정해준 ‘욕망’이 아닌 내가 선택한 욕망을 따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율이자 자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