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부에나 파크의 한 호텔 수영장에서 우연히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한쪽에서는 한국인 부모가, 다른 한쪽에서는 외국(미국인으로 보이는) 부모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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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 사람 또는 한 가족의 행동을 그 사회 전체로 일반화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본 한국 부모의 모습은, 한국에서도 너무나 자주 보던 익숙한 풍경이었기에 굳이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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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모는 아들 셋이 물총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향해 연신 “하지 마!”, “그만 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들과 함께 놀지 않았고, 단지 밖에서 소리만 질렀다. 그들의 관심은 아이들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하는 데 있었지만, 그 방식은 참여가 아닌 통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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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국인 부모는 달랐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수영장에 들어가 직접 놀아주며, 자연스럽게 아이의 행동 반경을 조절했다. 그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아이는 부모와 노는 사이에 이미 통제되고 있었다. 놀이는 훈육이었고, 관계는 교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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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을 보며 나는 꽤 감명을 받았다.
생각해보면, 소리를 지르며 통제하려는 방식보다는 아이와 함께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행동을 조율하는 방식이 훨씬 건강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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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이는 단지 수영장에서의 육아 방식의 차이만이 아니라, 청소년, 그리고 성인이 된 자녀를 대하는 태도에도 연결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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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부모는 자녀를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커도 마찬가지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는 전가의 보도 아래에서, 통제는 끝없이 이어진다. 반면 어떤 문화에서는, 부모는 아이의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로 남는다. 함께 뛰어놀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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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가 진짜로 배워야 할 교육은, 말로 제지하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노는 용기일지 모른다.
공부좆도 안하던 앰생부모가 자식 공부하라고 지랄하는 모습ㅎ 지들은 티비보고 스마트폰하고있고 자식새끼가 공부를하겠나
인정한다. 왜그런지 아냐. 그런 방법이 있고, 실행할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해서다. 부모도, 부모의 부모도 그 방법을 진짜로 배운적이 없어서. 이 국가의 사람들은 지배와 전쟁, 독재와 탄압을, 성장과 침체를 쉼 없이 연속적으로 겪고있다. 항상 무언가와 전쟁중인 국가에게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여유따윈 없다. 그리고 암담한 사실은 지금조차도 자유로운 인식의 성장을 기대할 미래의 여유가 없다. 그렇기에 이 국가는 또 한번 생존을 위해 위험하지만 의도적인 인식 개혁이 필요하다. 이 악순환을 끊을순 없어도 줄여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