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내가 자주 취하는 행동, 태도, 삶의 궤적 모든 것이
내 안에 깊숙히 숨어있는 나의 존재(본질)에서 파생된 '현상'으로써 '배열'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특정 상황에서 나는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
내 마음에선 왜 계속 분노, 짜증, 공포, 불안이 올라올까, 나는 왜 자꾸 도망칠까, 왜 자꾸 집착하거나 왜 누군가와 싸우는 걸까 무엇인가에 중독되어있는 것일까
이 모든 질문들의 근본적인 원인은내가 그런 행동이나 반응을 일시적으로 '교정' 하거나 억누르고 참거나 타인의 입장을 듣고 '이해' 하고 '깨달음'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는 그런 차원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냥 내 안의 깊숙히 숨겨진 나의 본질, 존재가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현상들이 반복되는 측면도 있다고 봐요.
예를들면, 정말 외관상 깨끗해 보이는 하얀 방에 들어 갔는데 만약에 안보이는 구석 어딘가에 배설물이 숨겨져있다면 당연히 냄새가 나겠죠. 아무리 향수를 뿌리고 창문을 열어뒀다가 다시 닫아도 그 배설물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냄새는 계속 나겠죠.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차원은 이런 차원입니다.
내가 이성으로 깨닫고, 어떤 삶의 방법론으로써 접근하는 혹은 그냥 내가 예수님을 도덕교사 삼아서 이것저것 따라해보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존재가 죽고 존재가 태어나는 차원의 사건이란 거죠.
B: 그런 차원의 존재부터를 증명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제는 그냥 밑도 끝도 없이 궤변이긴한데)
인간 정신조차도 훤원주의로 해석해 버리는 게 '지금의 이성'일진데
인간 본질의 차원을 구분하기 전에 인간 자아자체가 말씀하신데로 '본질적으로' 실존하긴 하는지, 그걸 먼저 정의하고 가야 한다는 겁니다...
과연 인간 정신이 복제 불가능하고 우주의 원리들과는 무관한 형이상학적 존재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신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겠지요...
하지만 지금 제가 글을 쓰면서도 자명하게 받아들이는 관찰자이자 판단자로서의 '자아'가 정말 사유들이 복합되며 만들어지는 허상이 아니라는 걸 먼저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 다음에야, 그러니까 자아가 존재한다는걸 먼저 확인하고나서야 그것이 '죄인'이든, '선함으로 부터 숨어들려는 악인'이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냥 궤변이긴하지만, 답이 온다면 또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A: 근데 이제 그 자아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는 계량화나 가시화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고... 말씀하신 내용과 관련된 부분이 불교에서 제가 알기로 간화선 수행이나 위빠사나 수행으로 알고 있습니다. '화두를 깬다' 라고 하는데, 이건 어떤 논리에 따라 결론으로 귀결해서 지식을 얻는게 아니라 말그대로 정신을 실제로 수행하는 거거든요. 저는 지금은 크리스천이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서 그 화두가 깨졌었는데... 쉽게 비유하자면 나의 정신세계가 처음엔 어둡고 껌껌한 방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처음엔 아무것도 안보이죠. 그런데 그 안에서 점점 시간을 보낼 수록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고 내가 팔을 휘두를때 어둠속에서 분명히 접촉되는, 닿는 실체들이 지각되고 분별된다는거죠. 어떻게 보면 형이상학적인 실체들을 더 뚜렷이 알게 되는거죠. 근데 저같은 경우는 예전에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정말 강박처럼 끝없이 제 머리속을 뒤덮은 적이 있었거든요. 제가 생각을 통제할 수가 없을 정도로요. 저는 이전까지 제 생각이 제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제 자신에게 갖고 있는 저라는 사람의 상(이미지)이 있었거든요. 근데 그때 그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괴로움 속에서 한참을 있다 보니까, 제 머리 속 생각이 제 자신의 의도와 대립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만약 생각이 제 자아 그 자체면 충돌할 수 없잖아요? 생각과 자아가 다르다는 걸 그때 알게 됐습니다. 근데 그 과정이 제가 이성적으로 추론을 한게 아니라 정말 뇌쪽이 뚝 끊기듯이 어떤 감각적인 느낌을 겪었거든요. 제 의식구조가 분리가 된다고 해야할까요? 그 때 이후로 갑자기 제 안의 의식을 바라보는 제 3의 눈이 생긴것같달까요. 프로이트가 묘사한 여러 인간의 감정표상, 언어표상... 심지어 그런 것들을 배열하는 제 안의 의지와 패턴들을 제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계속 그 현상들을 바라보는 눈이 분리가 되어버린거죠. 저는 당시 이게 자아가 아닐까 생각을 해왔습니다. 아마 성경말씀으로 치면 자신의 영과 혼을 분리해서 인식하게 된것이겠죠.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마음자리?가 아닐까 싶고, 정신분석학적으로 묘사하면 해리 증상과 비슷한데, 다른 인격에 무의식적으로 제 자아가 도착(到着)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붕 뜬채로 분리가 되어버린겁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아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을 했었어요. 하지만 제 자아를 인식하고, 제 안의 의식표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고 해서, 당시에 달라지는 건 별로 없더라구요. 내가 있는 곳이 지옥임을 알아도 지옥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바뀌지 않는단거죠. 당시 너무 어리기도 했고, 종교같은건 거의 문외한이었으니...
B: 뚜렷이 알고 보인다고 그것이 실체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직관 조차도 믿을 수 없을 때가 많고 실제로도 여러부분에서 직관에 기초한 가정들은 여러번 깨졌습니다. 게다가 그것이 정신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하죠... 환원론으론 모두 신경의 작용일 뿐입니다...(굉장히 단순화되었고 또 유치하지만 딱히 틀린말이 아니라면 그냥 넘어가죠) 그 가운데서 정신의 작용들이 어느 하나라도 우리가 이해하는바 데로의 실체가 있긴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착각'이면 어떡하냐는 겁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게 객관적으로 궤변이라 생각합니다)
A: 그쵸. 당연히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증명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비가시적인 것일 지라도, 그 층위의 존재들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경험하고, 공감하는 동질성의 열매로 확인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너진똑님도 말씀하셨지만, 자기가 거듭났는지 성령을 받았는지 이 세상 누구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보이지 않는 그 층위를 같이 바라보고 경험한 사람들은, 비슷한 이야기와 표현, 열매를 나타낸다는 거죠. 당연히 사람의 정신적인 부분이 관여되기 때문에, 오류도 많고 이를 객관적 증거로 제시하는 건 무리가 있겠죠. ㅎㅎㅎㅎ 그러니 과학이 아니라 종교의 영역이겠죠. 크리스천으로써 이야기하자면, 저는 그 직관 속에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더 큰 확신을 느끼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위험한 부분도 있고, 균형을 잡아가야 겠지만, 성경이라는 나침반과 항상 함께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나의 불완전성이나 생각, 감정과 뚜렷이 구별되고 절대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그 사랑을 확신을 하니까요. 일반 사람들에겐 궤변으로 들릴 수 있고 증명 못하는 부분인 건 어쩔 수 없다고 봐요 정말 눈에 보이는 이적, 싸인, 증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보이실 수 있는 것은 십자가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16:4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잖아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확실한 건 성경에서 말씀하는 크리스천들은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참 궤변같고 증명되지 않는,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근데 보이는 것을 믿고 사는 사람보다 더 큰 확신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죠. 히브리서에서 말씀하듯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요. 이해하려고 하시기보다, 죄인인 우리를 위해 확증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내 삶에 진실이 되는 날을 기다려보시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낙이 없고, 심령이 가난하고, 의에 굶주리고, 정말 구세주가 절실한 사람들을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이니... 자신이 예수님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더 알게 되시면 꼭 믿음을 받게 되실거라 생각합니다
B: 아닙니다. 신앙이 인간 본질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고 있고, 그것이 어떻게 인간 자아를 충족시키고 완성시켜가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을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그 존재 자체로 축복이고,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이자 행복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리'이려면, 모두에게 동일하게 재현되야 합니다. 적어도 제가 생각하는 진리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선 형이상학적 존재를 인간 정신이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능동적 허무주의에 도달한 인간이 궁극적으로 성경과 기독교만을 진리라고 밖에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논리적인 압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두에게 영적인 충만함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 음... 그 논리 자체에 '죄'가 들어가니까요. 구원을 받는 기독교의 핵심은 바로 복음이잖아요.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그 죄값인 고통과 죽음을 대신 당하셨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받았다. 또한 죽음을 이기시고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그 분의 완전한 의를 증명하셨다.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예수님과 연합하여 함께 죽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내 안에 거듭난 씨, 속사람이 생겼고 예수님에 붙은 가지로써 그 분이 주신 능력과 사랑으로 세상에 복음을 전하며 죽는 날까지 경주를 해나간다" 근데 이 유일한 구원을 담은 복음, 모두가 진리로써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이 복음의 내용이 온갖 영적인 개념들로 가득 차있으니까요. 죄라는 것만 봐도 누구는 죄가 허상, 즉 인간의 유전자로 인해 만들어진 심리적, 사회적 산물인지, 실제로 존재하는지 각자 생각과 인식이 다 다르죠. 예수님이 당신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말하면 화부터 내는 사람이 태반이잖아요. 이런 영적인 실존들이 가득한 복음의 명제를 어떻게 세상의 논리로 납득할 수 있을까요? 위에 써놓으신 말씀처럼 착각인지 아닌지 사람마다 생각이 다다른데 말이죠. 의심하지 말라거나 이성을 버려라 이런 요지로 말씀드린 건 결코 아니니 오해마시길... 뭐가 됐든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 해보고 의심도 해보고 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의 저도 그래왔구요. 모든 것이 다 합력해서 선을 이룰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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